대곡리 유적(順天 大谷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순천 대곡리 유적, 대곡리 도롱·한실 주거지, 주암댐 수몰 지역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곡리 577~587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주거유적 |
| 키워드 | 송국리식 집자리, 토기 가마, 붉은 간 토기, 가지무늬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규정 |
설명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곡리 577~587 일원에 위치한다. 주암댐 수몰 지역으로 1986년부터 1989년 까지 모두 3차에 걸쳐 국립광주박물관과 서울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집자리 74기, 구덩이(竪穴) 50기와 그 밖에 삼국 시대 집자리, 토기 가마(土器窯) 터 등이 확인되었다.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이 북상하면서 형성된 강안의 충적 대지상에 위치하는데 강에 의해 동서로 양분된다. 강의 서쪽은 도롱 부락이 자리하여 동쪽으로는 강과 접하여 있고, 서쪽으로는 높은 산구릉이 형성되어 있으며 남북으로는 보성강과 평행하게 낮은 구릉이 뻗어 내리고 있어 충적 대지를 감싸고 있다. 유적은 도롱 지구와 한실 지구로 나누어지며 인접한 대곡리 575 일원에는 대곡리 고인돌군이 위치한다.
도롱지구는 1·2차 조사에서 서울대학교박물관이 집자리 26기와 구덩이 22기, 원삼국 시대 이후의 집자리 25기, 토기 가마 1기를 확인하였다. 집자리 26기 가운데 평면 형태 원형이 3기, 말각 방형 또는 장방형이 23기이다. 원형 집자리는 모두 점토의 밀도가 높은 황색사질 점토층에 존재한다. 면적은 7.5~38㎡까지 다양한데 20㎡ 이상의 집자리는 5기(18·29·33·34·51호)로 대형에 속한다. 장축 방향은 북서-남동이 대부분이며 바닥은 사질 점토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화덕 자리는 4기(5·17·37·49호)에서 확인되는데 집자리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중앙부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 집자리는 2기(29·51호)이다. 구덩이는 모두 22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 원형, 타원형 등 다양하게 나타나며 2·5·7호처럼 소성 점토와 토기 편이 함께 섞여서 출토되기도 하며 9호처럼 내부에서 간 돌검과 간 돌살촉이 출토되거나 유물이 전혀 출토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집자리 38기와 구덩이 28기, 토기 가마 1기를 조사하였다. 집자리는 12기가 중앙부 바닥면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원형계 집자리고 24기는 타원형 구덩이가 없는 장방형계 집자리다. 원형계 집자리 중 2기는 타원형 구덩이와 4개의 기둥 구멍만 확인되었다. 구덩이는 28기가 조사되었는데, 이들 소형 유구는 집자리와 인접되어 있으며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집자리에 딸린 부속 시설로 추정된다.
도롱 지구에 대한 3차 조사에서는 집자리 8기와 삼국 시대 집자리 22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형태 원형(타원형 포함) 4기(2·5·7·27호), 방형 3기(12·19·21호)이다. 원형과 방형 19호에서는 집자리 바닥의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가장 크기가 큰 원형인 2호에서는 타원형 구덩이를 중심으로 그 외곽에 방형으로 4개의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한실 지구에서는 집자리 2기와 원삼국 시대 집자리 10기, 저장 시설(貯藏施設) 1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형태 말각 방형이며 북쪽 부분에 돌출부를 가지고 있다. 내부에서는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 석기,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도롱과 한실 지구의 집자리는 층위를 달리하며 축조되었는데,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원형과 방형의 집자리를 이른 시기로 보고 타원형 구덩이가 없는 것을 늦은 시기로 보고 있다. 즉 원형계 집자리는 가운데 타원형 구덩이를 가진 것이 대부분이며 장방형계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중복 관계에 따라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원형계와 타원형 구덩이가 없는 장방형계의 전환 과정에서 어느 정도 공존성은 인정되나 원형에서 장방형으로 이행되어 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