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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동 유적(慶州 光明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05:31 판 (dkamaster 600-0209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광명동 유적(慶州 光明洞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경주 광명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광명동 76-1, 383-3, 산81-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돌널무덤, 화덕 자리,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가로줄무늬 토기, 돌도끼, 슴베 돌살촉, 항아리 모양 토기, 손잡이 달린 토기, 간 돌도끼, 홈자귀, 간 돌살촉, 반달 돌칼, 숫돌, 간 돌검, 돌끌, 가락바퀴, 둥근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 검단리식 토기 단계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신영애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광명동 76-1, 383-3, 산81-1 일원에 위치한다. 단독 주택 건립에 앞서 2006년 신라문화유산연구원(광명동 76-1)에서 조사하여 집자리 5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2007년 국도 4호선 확장 공사로 성림문화재연구원(광명동 383-3)이 조사하여 집자리 12기, 구덩이 2기를 확인하였다. 2012~2013년 울산-포항 복선전철 사업으로 울산문화재연구원(광명동 산81-1)이 조사하여 집자리 38기, 구덩이 8기, 도랑(溝) 1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및 초기 철기 시대, 통일 신라 시대, 고려~조선 시대 유구도 확인되었다. 광명동 76-1 유적과 383-3 유적은 인접하여 위치하며, 광명동 산 81-1 유적은 500m 떨어져 있다. 유적은 경주 분지의 서쪽 관문이며 영천에서 경주를 지나는 길목에 해당하는 산지 끝 자락과 좁은 충적지에 입지한다.

광명동 76-1 유적의 집자리는 조사지 경계에 위치한다. 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이다. 2호는 화덕 자리가 3개로 시설없이 불탄 흔적이 확인되었고, 벽 아래 기둥 구멍이 반원형으로 확인되었다. 3호는 길이 4.2m, 너비 3.75m이고, 상부에서 집자리 폐기 상황을 보여주는 돌더미(積石)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붉은 간 토기, 가로줄무늬 토기(橫線文土器), 돌도끼(石斧),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등이 출토되었다.

광명동 383-3 유적(취락 유적)의 집자리는 좁은 범위에 밀집하여 분포하며, 장축 방향은 동서 또는 남북 방향이다. 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으로 분류되며, 길이 2.6~7.55m, 너비 2.5~5.2m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이 있다. 화덕 자리는 없거나 별다른 시설없이 바닥을 파고 1~2개를 설치하였는데, 중앙에서 짧은 벽 쪽으로 약간 치우쳐 위치한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확인되며, 주 기둥 구멍(主柱穴) 배치는 4주식(柱式) 또는 6주식이다. 벽 도랑은 1·2호에서만 ‘ㄱ’, ‘ㄷ’자 모양으로 확인되었다. 바닥은 불을 피워 다지거나 그대로를 사용하였다. 집자리 가운데에는 화재로 폐기된 것이 많은데, 3호는 화재 이후에 집자리 내부에 돌을 던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 붉은 간 토기 등이다. 확인된 무늬는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낟알무늬가 있다. 석기류는 간 돌도끼, 홈자귀(有溝石斧), 간 돌살촉, 반달 돌칼,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형태가 원형과 타원형이고, 지름은 각각 0.5m, 0.68m이다. 정확한 성격과 용도는 알 수 없지만, 집자리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집자리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광명동 산81-1 유적의 집자리는 남쪽 비탈면에 분포한다. 후대 훼손으로 집자리의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1기를 제외하면 모두 등고선과 나란하다. 규모는 길이 2.24~8.67m로 다양하며, 깊이는 26호가 1m로 가장 깊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중앙에서 한쪽 짧은 벽에 치우쳐 위치한다. 화덕은 대부분 구덩식(竪穴式) 1개를 설치하였으며, 27호는 2개, 29호는 3개가 확인되었다. 이외에 평지식(平地式) 화덕 자리도 일부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이 확인된 집자리는 전체 집자리의 절반 정도이다. 그 중 주 기둥 구멍(主柱穴)이 규칙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13기로, 4주식, 6주식, 8주식, 10주식 등이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비탈면 위쪽 벽을 중심으로 ‘ㅡ’, ‘ㄱ’, ‘ㄷ’자 모양으로 설치하였다. 21·31호는 벽 도랑을 이중으로 설치하였다. 27호는 벽에서 0.6~0.85m 떨어져 벽 도랑이 있고, 내부에는 기둥 구멍이 촘촘하게 확인되었다. 유물은 손잡이 달린 토기, 붉은 간 토기, 낟알무늬 토기, 간 돌검, 반달 돌칼, 돌도끼, 돌끌(石鑿), 가락바퀴,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대부분 비탈면 위쪽에 집중 분포하며, 비탈면 아래쪽은 유실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 도랑은 남쪽 비탈면에 위치하며,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하다. 크기는 길이 13m, 너비 0.7~1.2m, 깊이 0.5m이다.

돌널무덤은 남쪽 비탈면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형태는 장방형이며,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길이 0.96m, 너비 0.55m, 깊이 0.12m의 구덩이를 파고 길이 0.2~0.3m의 깬돌(割石)을 쌓아 만들었으며, 바닥에는 0.2~0.6m의 깬돌을 깔았다. 돌널은 길이 0.7m, 너비 0.22m, 깊이 0.18m이다.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초기 철기 시대의 집자리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뒤섞여 분포하며, 돌덧널무덤(石槨墓)도 청동기 시대 돌널무덤과 가까운 지점에 위치한다. 출토 유물은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굽다리 토기(豆形土器), 간 돌도끼, 반달 돌칼, 간 돌창(磨製石槍) 등이다.

유적 연대는 집자리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통해 검단리식 토기 단계로 추정되며, 초기 철기 시대 유구는 둥근 덧띠 토기 단계에 해당한다. 광명동 383-3 유적의 집자리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호 2480±60BP(보정 연대 기원전 635년), 3호 2650±60 BP(보정연대 기원전 840년), 8호 276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85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은 서로 인접해 분포하는 구릉지와 평지 마을의 비교를 통해 입지에 따른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집자리의 독특한 폐기 과정을 알려주는 자료가 확인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