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 제작 방법(土器製作方法)
| 기본 정보 | |
|---|---|
| 시대 | 신석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진주 평거동 유적 |
| 키워드 | 토기 가마, 토기 발생, 바탕흙, 테쌓기, 섞음재, 서리기, 손빚기, 도치 성형, 정치 성형, 정면 기법, 갈기, 조흔, 무늬 시문, 토기 소성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24 |
| 집필자 | 김은영 |
설명
신석기 시대 토기의 제작 방법은 유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민족지 자료의 활용과 더불어 발굴 조사 자료의 축적과 과학적 분석 방법의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구체적으로 해명되고 있다. 토기 제작에는 각 집단의 전통과 처해 있는 환경이 반영되는 만큼, 토기 제작 방법 연구는 신석기 시대의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움직임과 교류 관계를 해명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 토기 제작은 진흙[粘土] 채취와 바탕흙[胎土] 준비→형태 만들기[成形]와 면 다듬기[整面]→무늬 새기기[施文]→말리기[乾燥]→굽기[燒成]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토기 제작의 첫 번째 공정은 점성과 순도가 적당한 진흙을 구해서 바탕흙을 만드는 작업이다. 주로 집자리 주변에서 채취한 진흙은 불순물과 기포를 제거하거나 섞음재를 첨가하는 등 일정한 가공을 거쳐 토기 제작에 적합한 바탕흙이 된다. 섞음재는 혼화재(混和材)라고도 하는데, 모래·석면(石綿)·활석(滑石)·조개껍질·토기 가루 등의 무기물과 풀·씨앗 등의 유기물이 있으며, 지역과 시기에 따라 사용되는 섞음재가 달랐다. 섞음재는 진흙과 물리・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토기가 빨리 마르게 하고 구울 때 적게 수축하게 하여 균열과 파손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공정은 준비된 바탕흙으로 토기 모양을 만드는 작업이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성형 방법에는 손빚기, 서리기, 테쌓기가 있다. 손빚기는 수날법(手捺法)이라고도 하는데, 적당량의 바탕흙을 손으로 주물러 만든 것으로 기형을 조정하거나 토기 표면을 정리하지 않아 울퉁불퉁한 것이 많다. 토기의 바닥 부분이나 크기가 작은 그릇 등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서리기는 권상법(捲上法)이라고도 한다. 엿가락처럼 길게 만든 점토 띠를 나선형(螺旋形)으로 말아 올려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방법이다. 테쌓기는 윤적법(輪積法)이라고도 하며, 바탕흙을 일정한 굵기로 빚어서 토기의 크기에 맞게 고리를 만든 다음 하나씩 쌓아 올려 그릇 형태를 만드는 방법이다. 서리기와 테쌓기는 신석기 시대 토기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성형 방법으로, 실제 유물에서 점토 띠를 접합한 흔적은 쉽게 관찰되지만 서리기로 쌓은 것인지 테쌓기로 쌓은 것인지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
토기 모양을 만들 때는 받침대를 사용하는데, 편평한 바닥 토기의 바닥 면에 나뭇잎흔이 찍혀 있기도 한다. 이는 땅바닥이나 토기 제작용 받침대에 나뭇잎을 깔고 그 위에서 토기를 성형한 흔적이다. 홈이 파인 받침대 위에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는 뾰족 바닥 토기도 있다. 이처럼 토기의 바닥부터 만들어 올리는 방법을 정치 성형(定置成形)이라고 한다. 한편, 바닥이 둥글거나 뾰족한 토기 중 크기가 크거나 바닥에까지 무늬를 새긴 토기는 엎어 놓고 아가리부터 거꾸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빗살무늬 토기의 도치 성형(倒置成形)이라고 한다.
세 번째 공정은 토기의 표면을 다듬는 면 다듬기 과정이다. 울퉁불퉁한 부분을 고르고 토기의 세부 모양을 바로잡고자 손으로 물손질을 하거나 도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도구를 이용한 정면 방법으로는 매끈한 도구로 토기 표면을 문지르거나 방사륵(放射肋)이 있는 조개껍질이나 나무판으로 긁어서 정리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매끈한 조약돌 같은 것으로 토기 표면을 문지르거나 가는 것을 갈기[磨硏]라고 하며 죽변리식 토기와 오산리식 토기, 덧무늬[隆起文] 토기 등에서 종종 관찰된다. 갈기는 주로 무늬를 새기기 전에 하지만, 무늬를 새긴 후에 생긴 점토 덩어리를 찌부러뜨리거나 깨끗하게 만들려고 진행하기도 한다. 방사륵이 있는 조개껍질이나 나무판으로 토기 표면을 정리하면 여러 개의 평행한 선이 생기는데 이것을 조흔(條痕)이라고 한다. 조흔은 주로 토기의 안쪽 면에서 관찰되지만, 겉면에 규칙적인 방향으로 정면이 이루어지면 무늬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영선동식 토기와 시도식 토기에 자주 보이며, 특히 제주도에서는 후기 이후 토기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네 번째 공정은 무늬 새기기나 채색과 같은 기면(器面) 장식 과정이다. 집단에 따라 각기 다른 도구와 방법을 사용하여 다양한 구성과 형태로 무늬를 새기므로, 토기의 무늬는 신석기 시대 토기 편년의 기본 요소가 된다. 무늬 외에 토기 겉면을 장식하는 방법으로는 채색(彩色)이 있다. 신석기 시대에는 주로 철(Fe) 성분의 붉은색 안료를 칠하며, 안료를 접착하고 토기 겉면에 광택을 내고자 채색 후에 가는 경우가 많다. 토기 전체를 칠하기도 하고 무늬 사이의 빈 공간에 칠하기도 하였으며, 안료로 무늬를 만들기도 하였다. 한반도 동북 지역의 타래무늬 토기와 번개무늬 토기, 중동부 지역의 죽변리식 토기와 남부 지역의 덧무늬 토기, 수가리 Ⅰ식 토기에서 자주 보인다.
토기 제작의 마지막 공정은 말리기와 굽기 작업이다. 장식된 토기는 균열을 최소화하도록 바람이 잘 통하고 그늘진 곳에서 말린다. 토기는 굽기 즉, 소성(燒成) 과정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열의 영향으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며 불에 넣어도 타지 않고 물을 넣어도 원래의 진흙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토기가 대부분 붉은색이나 황갈색을 띠는 것으로 보아 소성 시 공기와 접촉할 수 있는 한뎃가마[露天窯]에서 소성했거나 밀폐하지 않은 가마에서 소성했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토기의 소성 온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1,000℃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민족지 자료를 근거로 토기 제작에는 주로 여성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진흙을 채취하고 토기 소성에 필요한 연료를 마련하는 일에는 마을 공동체 전체가 참여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토기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요구되다 보니,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토기 제작 과정이나 사용 중에 균열이 생겼다고 해서 바로 폐기하지 않았다. 신석기 시대 토기에서는 수리한 흔적이 종종 확인되기도 하는데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건조와 소성 과정이나 사용 중에 금이 생긴 토기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묶어서 재사용한 흔적이다.
이미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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