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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그늘 유적[岩陰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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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동의어 바위 그늘, 암음유적
시대 신석기
관련 정보
유적 부산 금곡동 율리 조개더미, 제주 북촌리 유적, 청도 오진리 바위그늘 유적
키워드 동굴 유적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구자진




용어 정보
동의어 바위그늘, 암음유적



설명

바위 그늘 유적은 선사 시대 사람들이 자연에 존재하던 바위 그늘을 주거 또는 그 외의 용도로 사용했던 장소를 말한다. 바위 그늘은 동굴유적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으로 구석기 시대를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유럽, 중국, 일본에서 다수의 바위 그늘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신석기 시대 바위 그늘 유적으로는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단양 상시 유적, 정선 고성리 유적, 영월 방절리 유적·삼옥리 유적, 철원 군탄리 유적, 청도 오진리 유적, 장성 오복리 유적, 제주 북촌리 유적 등이 있다.

바위 그늘에는 자연적으로 절벽에 그늘이 드리워진 것, 석회암 지대의 층리면이나 절벽의 갈라진 틈에 지하수가 스며들어 용해되거나 절벽이 무너진 것, 풍화(風化) 작용에 의해 바위가 움푹 파인 것, 강이나 바다의 파식(波蝕) 작용에 의해 바위가 패여서 형성된 것 등이 있다. 간혹 용암이 흐르다가 그 끝부분이 함몰된 채로 굳어 조그마한 바위 그늘이 형성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바위 그늘 유적의 대다수는 석회암 동굴의 앞부분이 자연적으로 떨어져 나가 생긴 것이다. 이런 유형은 단양 상시 바위 그늘처럼 일련의 연속된 석회암 동굴과 같이 분포하는 경우도 있어 넓은 의미로는 동굴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

선사 시대 사람들은 남쪽으로 입구가 트인 바위 그늘을 선호하였는데, 햇빛이 잘 들어오면서도 북풍(北風)은 피할 수 있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유물 역시 바위 그늘의 내부나 앞쪽 넓게 트인 곳에 주로 분포한다. 우리나라 바위 그늘 유적은 그 분포나 출토 유물의 특징, 화석화 과정 등이 대체로 동굴 유적의 경우와 같다. 또한 유기물이 잘 보존되어 있고 다양한 자연·문화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환경과 생업에 관한 막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바위 그늘은 인간이 캠프와 같이 단기적으로 이용한 공간이 아니라 장기간 거주할 수 있었던 공간으로, 무덤과 제사 유적도 출토된다는 점에서 동굴 유적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이미지

참고문헌

  • 구자진. (2023). 신석기시대의 동굴과 바위그늘 유적 연구. 한강고고, 16. 7-44.
  • 신숙정. (2004). 우리나라 신석기·청동기시대의 동굴 및 바위그늘 유적 연구: 성과와 의의. 연세대학교박물관(편저),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동굴유적과 문화: 연세대학교 박물관 추계학술세미나 자료집(pp.51-66). https://www.riss.kr/link?id=M15306145
  • 홍시환, 석동일. (1997). 한국의 동굴. 대원사. https://www.riss.kr/link?id=M9854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