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산리 중동 유적(完州 葛山里中洞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완주 갈산리 중동 유적, 완주 중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갈산리 664-13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움무덤, 집자리, 구덩이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송종열 |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갈마리 542에 위치한다. 임실 제2 농공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쪽의 고덕산(해발 625m)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가지구릉(해발 240m 내외)에 위치한다. 주변으로 해발 300m 내외의 구릉이 발달하고, 서편으로 대덕천이 남북으로 흘러 임실천으로 합류한다. 유구는 해발 240~230m의 가지구릉 정상부와 능선, 사면에 걸쳐 분포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를 비롯하여 구석기 시대 문화층, 원삼국 시대 집자리와 구덩이,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 조선 시대 움무덤(土壙墓)과 회곽묘(灰槨墓)가 다수 확인되었다.
완주군 이서면 갈산리 664-13 일원에 위치한다. 전북 혁신 도시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2009~2011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동서 방향으로 걸게 뻗은 해발 38m 내외의 구릉 남사면부에 위치한다. 유적 남쪽에 위치한 곡간부를 따라 1㎞ 정도 내려가면 완주 금평리 (신풍) 유적, 완주 덕동 유적, 완주 원장동 유적 등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이 대규모 군집을 이루고 있다. 조사 결과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 5기, 구덩이 4기, 유물 포함층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모두 장방형이고 장단비는 1:1.19~1:1.32로 대동소이하다. 또한 규모는 36.54㎡로 1호가 가장 크고 다음으로 5호가 32.33㎡로 그 뒤를 따른다. 그 외 2~4호는 소형으로, 4호가 5.44㎡로 가장 작다. 바닥만 남아있는 4호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깊이 0.66~1.28m로 깊다. 특히 2·3호의 경우에는 면적에 비해 잔존 깊이가 깊은 편이다. 내부 시설은 2호의 외부로 이어지는 도랑, 5호의 기둥 구멍(柱孔)을 제외하고 별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도랑은 집자리 바닥에 비해 높게 남아 있어 배수 기능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구덩이는 4기가 조사되었으며, 2~4호 집자리 주변에 분포한다. 형태는 원형과 타원형을 띤다. 크기는 길이 1.5~2.8m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출토 유물은 집자리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비슷하다.
유물은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긴 목 검은 간 토기(黑陶長頸壺), 굽다리 토기(豆形土器), 조합식 쇠뿔 손잡이 긴 목 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 뚜껑, 돌살촉, 청동 제품, 민무늬 토기 편 등이 다량 확인되었다.
집자리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1호 집자리에서 2250±40 BP, 2360±50 BP, 2호 집자리에서 2260±40 BP, 5호에서 2190±40 BP, 2360±40 BP 등의 값이 산출되었다.
갈산리 중동 유적은 전주 정문동 유적(중동A유적)과 더불어 생활 유적으로, 주변에 분포하는 신풍·덕동·원장동·갈동 유적 등의 대규모 무덤군을 조성한 집단들의 취락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지역 초기 철기 시대 무덤과 취락상을 복원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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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호남문화재연구원. (2013). 전주 중동 유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