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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토기 가마(靑銅器時代土器窯)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13:24 판 (dkamaster 600-2953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청동기 시대 토기 가마
기본 정보
동의어 토기요
시대 청동기 시대
지역 한반도
관련 정보
유적 천안 백석동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 55지구, 합천 영창리 유적, 보령 관창리 유적 B구역, 순천 대곡리 도롱유적, 거창 대야리 유적, 진주 대평리 유적, 광주 신창동 유적, 김해 대성동 유적, 사천 봉계리 유적
키워드 한뎃가마, 산화염 소성, 소결면, 토기소성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강병학



설명

토기 가마는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부터 출현한다. 사전적 의미는 ‘점토질(粘土質) 바탕흙으로 성형한 위에 유약을 입히지 않은 토기를 굽는 가마’로 정의된다.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櫛文土器)청동기~초기 철기 시대 민무늬 토기는 600~800℃의 저화도(低火度)의 한뎃가마(露天窯)에서 구워졌다. 빗살무늬 토기와 민무늬 토기는 바탕흙이 정선되지 않아 모래 등 이물질이 많이 섞였고, 산화염 소성(酸化焰燒成)으로 구웠기 때문에 빛깔은 적갈·황갈색을 띠며 물을 흡수하는 성향이 많다. 산화염 소성은 일반적으로 지붕이나 벽체 등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고 개방된 상태에서 소성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발굴 조사된 사례를 통해 볼 때 진흙에 짚을 썰어 넣은 것을 발라 만든 상부 구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 토기 가마가 조사된 유적은 천안 백석동, 부여 송국리 55지구, 보령 관창리 B구역, 순천 대곡리 도롱·한실, 거창 대야리, 합천 영창리, 진주 대평리, 광주 신창동, 김해 대성동, 사천 봉계리 등이 있다. 이 중 백석동 유적에서 조사된 가마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구멍무늬 토기(孔列文土器)가 출토되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것이고, 송국리·관창리·주암댐 수몰 지구·대야리 것은 외반 구연 항아리(外反口緣壺)가 출토하는 송국리 문화 단계의 것이다. 영창리 유적에서는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가, 신창동·대성동·봉계리 유적에서는 삼각 덧띠 토띠(三角形粘土帶土器)가 출토되어 늦은 시기의 것이다. 이 중 이른 시기와 송국리 문화 단계의 가마 평면 형태는 대부분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길이 1~5m, 너비 1~3m 내외이다. 진주 대평리 유적에서 조사된 도랑 모양의 가마는 길이 6m, 너비 0.6m, 깊이 0.7m 내외이다. 덧띠 토기가 출토되는 늦은 시기의 가마는 도랑 모양(溝狀)의 굴가마와 유사한 형태로, 규모는 길이 10~15m, 너비 2~6m 내외이며, 약간의 경사도가 있다.

지금까지 보고된 토기 가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가마 안에서 다량의 불탄 점토와 토기 편, 목탄, 니질 점토(泥質粘土), 재(灰), 불탄 돌 등이 확인되고, 바닥면은 화기(火氣)로 인한 소결면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부에서 불탄 점토 덩어리가 출토된 가마들은 상부 시설이 있었던 실내 가마(室窯)였을 가능성도 제시되었다. 이러한 유구들은 기존에 야외 화덕 자리, 폐기장, 석기 제작장, 의례용 구덩이 등으로 추정되었는데 가마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가마로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민속적인 예를 보더라도 토기는 농한기(農閑期)나 건기(乾期)에 주로 만들고 굽는 것이 보편적이어서 일년 내내 토기를 소성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마로 이용된 구덩이들은 토기를 굽지 않을 때에는 야외 화덕이나 석기 제작장, 폐기장 등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윈난성의 전통적인 토기 소성 방법은 아래에 마른 풀이나 나무 연료를 깔고 그 위에 토기를 놓은 후 토기 위에 짚과 같은 초본류(草本類)를 덮고 그 위에 다시 짚이나 초본류를 섞은 진흙을 피복재(被覆材)로 이용하여 상부를 덮는데, 천정 부근에 구멍을 몇 곳 뚫어서 공기를 통하게 하는 소성 방식이 현재까지도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가마도 이와 유사하게 소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