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곡리 유적(浦項 草谷里遺蹟)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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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어 | 포항 초곡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초곡리 39-1, 1843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기둥 건물터, 도랑, 돌널무덤, 구덩이, 둘레 도랑, 목책 열, 구멍무늬 토기, 역삼동 유형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배군열 |
설명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초곡리 39-1, 1843 일원에 위치한다. 농공단지 조성으로 1998년 조사하여(초곡리 39-1), 집자리 17기와 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1기, 도랑(溝) 3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초곡지구 도시 개발 사업 계획으로 2012년 조사하여(초곡리 1843), C구역에서 집자리 55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구덩이(竪穴) 4기, 둘레 도랑(周溝) 1기, 도랑 5기, 목책 열(木柵列) 1기가 조사되었다. 두 유적은 인접하여 위치한다. 유적은 도음산(해발 382.7m)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 말단부에 입지하며, 능선을 달리하여 위치한다. 동쪽으로 넓은 충적지가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초곡천이 북동쪽으로 흐른다.
초곡리 39-1 유적(초곡리 유적)의 집자리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으로 구분된다. 1·2호는 구릉 동쪽에 위치하며 면적이 50~60㎡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등이 있다. 화덕 자리는 얕은 구덩식(竪穴式)으로, 1개씩 확인되며 6호는 2개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대부분 설치되었고 내부에는 작은 기둥 구멍도 확인된다. 기둥은 주기둥과 보조 기둥을 이용해 네 벽 모서리에 치우쳐 설치하여 건물을 지탱하였는데 주 기둥 구멍을 기준으로 4주식(柱式), 6주식, 10주식, 다주식(多柱式)으로 구분된다. 탄화(炭化)되어 남아 있는 나무 기둥의 흔적은 원통형으로 지름 10㎝ 정도이다. 바닥은 별다른 시설 없이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2·6호는 집자리 내 공간분할이 확인된다. 2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9.2m, 너비 6.5m, 깊이 0.49m로 대형이다. 북동쪽 짧은 벽에 크기를 달리하는 길이 3.74m, 너비 3.3m, 깊이 0.1m의 방형 구덩이가 확인되어 공간이 구분된다. 6호는 세장방형으로 길이 10m, 너비 3.7m, 깊이 0.65m로 중앙을 중심으로 동·서 공간 간에는 바닥처리 방식, 기둥 구멍과 도랑의 배치 양상 등에 차이가 있어 구분이 가능하다.
유물은 다양한 종류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돌살촉, 간 돌검, 짧은 물고기 모양(短漁形) 반달 돌칼, 돌낫(石鎌),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숫돌(砥石), 공이(敲石), 찰절 석기(擦切石器), 가락바퀴, 원형 석기(圓形石器), 격지(剝片) 등이 있다. 돌살촉은 슴베가 없는 것과 슴베가 있는 것(有莖式) 모두 확인되었다. 간 돌검은 4점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이며, 5호 출토 간 돌검은 자루의 한쪽 면에 1열로 구멍이 반 투공(半透孔) 되었다. 출토 유물 중 민무늬 토기는 그 수량이 매우 적다. 확인된 기종은 바리 토기(鉢形土器)로 아가리는 직립(直立)하며, 구순은 둥글게 처리하고 ‘V’자 모양의 도구를 이용해 눌러 찍기(押捺)한 골아가리(口脣刻文)와 구연 아래에 내면에서 외면으로 반관통하는 구멍무늬(孔列文)가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졌다.
초곡리 1843 유적(초곡리 취락 유적)의 집자리는 55기 중 44기만 온전하다. 방형 18기, 장방형 25기, 세장방형 1기이다. 면적은 3.4~87.2㎡로 대부분 중·소형에 속한다. 특징적으로 10㎡ 미만의 협소한 집자리가 15기 확인되었다. 53호는 길이 16.72m, 너비 5.22m, 깊이 0.35m로 가장 크다. 기둥 구멍은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22·26·44호 집자리는 4주식, 13·14호는 8주식의 정형성이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모두 구덩식으로 22기에서 중앙이나 짧은 벽면에 치우쳐 위치한다. 원형, 타원형, 부정형(不定形)이며, 지름 0.13~0.68m이다. 화덕 자리의 수 는 대부분 1개이며, 1·8·19호는 2개, 18·28호는 3개가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27기에서 ‘ᄀ’, ‘ᄃ’, ‘ᄆ’, ‘ᅳ’자 모양 등 다양하며, 그중 ‘ᄃ’, ‘ᄆ’자 모양이 다수이다. 크기는 너비 0.03~0.6m, 깊이 0.03~0.13m이며, 단면은 ‘U’자 모양이다. 벽 도랑 내 기둥 구멍은 22호를 제외하고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외부 돌출구(突出溝)는 11기의 집자리 모서리에서 경사면 아래로 돌출되어 배수의 기능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바닥은 대부분 맨땅을 사용하였으며, 13·27·28호는 불 다짐, 22호는 점토로 다졌다. 폐기 양상은 전체 집자리 중 32기가 화재로 폐기되었으며, 그중 남쪽 구릉에 위치한 집자리의 점유율이 높게 나타난다. 출토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文土器), 슴베 없는 간 돌살촉, 간 돌검,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기둥 모양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반달 돌칼, 갈돌(碾石棒), ‘ᄀ’자 돌칼, 그물추 등이 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초곡리 39-1 유적 6호 집자리 330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600년)~306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340년), 초곡리 1843 유적 2호 집자리 279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930년), 4호 2730±40 BP(보정 연대 기원 전 870년)로 확인되었다. 초곡리 유적은 초곡천 중류역에서 구멍무늬 토기와 골아가리 토기를 주된 요소로 하는 역삼동 유형의 문화 요소가 확인되는 대단위 취락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1998년 02월 25일~1998년 06월 24일 | 포항 초곡리 유적 | 2000 | 영남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12년 05월 21일~2012년 11월 09일 | 포항 초곡리 취락유적 | 2014 | 영남문화재연구원 |
한국고고학저널
- "포항 흥해 초곡천 주변에 살았던 청동기시대 사람들", 2013 한국고고학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