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리 유적(昌原 鎭東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창원 진동리 유적, 창원 진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140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바둑판식 고인돌, 묘역식 고인돌, 돌널무덤, 도랑, 간 돌검, 간 돌살촉,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송국리 단계, 선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고민정 |
설명
사적 창원 진동리 유적.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140 일원에 위치한다. 진동 지구 토지 구획 정리로 2000~2005년 조사하여, 묘역식 고인돌군 11개소, 바둑판식 고인돌(碁盤式支石墓) 1기, 돌널무덤(石棺墓) 45기, 밭 2기, 용수로 2기, 도랑(溝) 5기, 화덕 자리 3기가 확인되었다. 이후 2006년 추가 조사를 실시하여 밭, 구덩이, 돌더미(集石) 등이 확인되었고, 1차 조사에서 조사를 완료하지 못한 청동기 시대 무덤 19기에 대한 해체 조사도 이루어졌다. 유적은 태봉천과 진동천에 의해 넓게 형성된 충적지 위에 위치한다.
묘역식 고인돌은 태봉천을 따라 길게 형성된 자연제방에 조성되었고, 돌널무덤은 배후사면에 분포한다. A~K군으로 개별적인 묘역군을 형성하고 있으며 형태는 원형, 타원형, 방형, 장방형 등으로 다양하다. 묘역은 가장자리를 구획돌(區劃石)만 돌린 형태, 구획돌을 설치하고 내부에 돌을 쌓은 형태, 구획돌 없이 돌을 쌓은 형태로 구분된다. 또한 단독으로 만들어지거나 2~3기가 연접되거나 중복된 예들이 확인된다. 묘역식 고인돌의 군집 형태를 살펴보면 A군은 유적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확인된 고인돌군 중 가장 규모가 크다. A군 고인돌은 원형 묘역과 방형 묘역을 가진 고인돌과 구획돌 없이 타원형의 돌무지(積石)를 갖춘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고인돌은 모두 9기가 확인되었으나, 1호 고인돌만 조사되었다. A-1호 고인돌의 남쪽에는 원형 묘역의 A-3호가 연접해 있고, A-4·8호는 방형의 묘역, 5·9호는 말각 방형의 묘역을 갖추고 있다. 2·6·7는 구획돌 없이 돌을 쌓았으며, 돌무지 내부에서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A군의 남쪽에 위치한 B군과 C군 사이에는 이후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하여 서로 연결되는 묘역식 고인돌을 비롯하여 돌널무덤 8기, 돌무지 시설, 기둥 구멍군 등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C군에서는 장방형 묘역 시설을 갖추고 덮개돌(上石)이 존재하는 묘역식 고인돌 1기, 무덤방 1기, 타원형의 돌무지 시설 3기가 확인되었다. 덮개돌은 판돌(板石)을 사용하였으며, 묘역에서 서쪽으로 약간 벗어나 있으며, 길이 2.5m, 너비 1.5m, 두께 0.3m이다. D군은 지장물로 인해 일부 한정된 범위에서 장방형의 묘역식 고인돌 1기와 돌무지 시설 내에서 무덤방 3기가 확인되었다. D군의 북서쪽은 이후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시굴 조사를 실시하여 추가로 유구를 확인하였다. 원형 묘역식 고인돌은 (긴)원형의 묘역 시설로 구획돌, 구획돌 내부의 돌무지 시설, 무덤방을 갖추고 있다. A-1·3·9, E-4, H-1, J, K호 등이 해당된다. 사천 소곡리 유적 1·2·9호, 진주 대평리 옥방 Ⅰ지구 유적 5호, 사천 이금동 유적 B-6·16, 진주 이곡리 유적 15호, 김해 율하리 유적 A2-19호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고인돌이 확인된다.
A-1호 고인돌은 유적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지름 20.2m의 원형 묘역 시설에 둘레 도랑(周溝)이 있고, 즙석(葺石) 형태를 하고 있어 주목된다. 묘역 내부는 잔자갈을 쌓아 1차 분구(墳丘)를 만들고 그 위에 흑갈색 흙을 여러번 쌓으면서 그 위를 즙석하였다. 구획돌은 1단으로 길이 방향으로 세워 축조하였고, 즙석은 큰 깬돌(割石)을 5~8단 정도 잇대어 쌓았다. 묘역 중앙의 지상식 무덤방은 최하단석과 시상 일부만 남아 있다. 규모는 길이 3.2m, 너비 1.5m, 장축은 북동-남서 방향이다. 내부에서 간 돌검 1점, 간 돌살촉 3점이 확인되었고, 도랑에서 붉은 간 토기가 반으로 깨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A-1호 고인돌의 남쪽에는 원형의 묘역 시설을 갖춘 A-3호가 연접해 있다. K호 고인돌의 묘역은 길이 5.7m, 너비 5.4m이다. 무덤방은 돌널이며 뚜껑돌(蓋石)은 3중으로 되어 있고, 돌널의 평면은 ‘ㅍ’자 모양이다. 돌널 내부 동쪽 짧은 벽 쪽에서 성인의 머리뼈 편과 치아 일부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남쪽 긴 벽과 무덤 구덩이 사이에서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1점,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방형 묘역식 고인돌의 덮개돌은 괴석형(E군 1호)과 판돌형(C군 5호)이 확인된다. 장방형으로 정연한 구획돌을 세우고 그 내부에 돌을 쌓았다. A-4, B-1, C-1, D, E-1·2, I호 등이 해당된다. 장방형의 묘역 시설을 갖춘 고인돌은 남강 유역을 비롯하여 남해안 일대의 유적인 합천 저포 E지구 5호, 거창 산포, 사천 소곡리, 사천 이금동, 진주 이곡리 유적 21·23·30호 등이 있다.
장방형 묘역식 고인돌 중 E-1호가 가장 크고 동-서로 길게 조성되었으며, 덮개돌을 갖추고 있다. 장방형의 구획돌 내부는 돌을 쌓은 구조이나 조사가 완료되지 않아 무덤방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동쪽으로는 E-2호가 연접하며, 남동쪽으로 E-3·4호가 위치한다. 덮개돌은 1호의 중앙에서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으며, 길이 1.2m, 너비 0.8m, 높이 0.5m이다. 묘역은 길이 25m, 너비 11.5m이다. 구획돌의 축조 방법은 남고북저의 지형을 이용하여 해발이 높은 남쪽은 2~3단, 낮은 쪽인 북쪽은 5~7단으로 축조하였다. 외곽은 길고 큰 돌로 쌓았고 내부는 흙과 잔자갈 등을 쌓아 묘역 전체를 평탄화 된 지상식으로 축조하였다. 구획돌은 길이 방향으로 쌓았으며 두 번째 단부터는 들여쌓기하였다. 묘역 내부의 돌무지에는 민무늬 토기 편이 흩어져 있다. 유적에서는 구획돌 없이 기반층인 자연 자갈층보다 높게 돌을 쌓은 유구가 다수 확인된다. 형태는 (긴)원형 혹은 부정형으로 돌을 쌓았으나 구획돌은 존재하지 않고, 무덤방이 갖춰져 있다. 돌무지 시설은 원형 혹은 방형의 구획돌을 갖춘 고인돌과 연접되어 있거나 돌무지 시설끼리 연접한 경우가 확인된다. 돌무지 시설은 A-2호, B-2호, C-1~4호, H-4호 등이 해당된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과거 진동리 일원에는 ‘8개의 바위’로 불리는 8기 이상의 고인돌이 무리를 지어 분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유실되고 2기만 남아 있다. 1기는 유적의 북쪽 끝부분 도로에 인접해 있으며, 1기는 진동 초등학교 관사 앞 정원에 위치한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4.4m, 너비 2.3m, 높이 1m이다. 덮개돌은 사다리꼴에 가까운 장방형이고, 장축은 북동-남서 방향이다. 무게는 약 18톤이고, 재질은 변성퇴적암이다. 아래 받침돌(支石)은 동쪽에 2개, 서쪽에 4개이다. 덮개돌 주변에는 깬돌과 강돌(川石)을 깔았으며 민무늬 토기 편이 다수 흩어져 있어 의례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무덤방은 2단 이상 땅을 파서 만들었으며, 도굴되어 구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다.
돌널무덤은 경작 유구와 묘역식 고인돌 사이의 별도의 공간에 조성되었다. 열을 지어 배치되거나 2~5기씩 모여 작은 무리로 나뉘어 5개 정도의 무리로 분포한다. 작은 무리 내에서 다시 2~3기 혹은 3~4기가 모여 있거나 열을 지어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돌널은 판돌으로 쌓은 상자 모양(箱形) 돌널무덤(13기)과 깬돌로 쌓은 석축형(石築形) 돌널무덤(31기)으로 구분된다. 상자 모양 돌널무덤은 뚜껑돌은 이중이며, 돌널의 조립 형태는 ‘ㅍ’, ‘ㅁ’, ‘ㅂ’자 모양 등 다양하나 ‘ㅍ’자 모양이 많다. 2·16호에서는 사람 뼈가 확인되었는데, 2호에는 머리뼈 편과 치아가 일부 남아 있었고, 16호는 머리뼈와 치아,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등이 양호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석축형 돌널무덤은 뚜껑돌 주변에서 확인되는 강돌이나 돌무지, 내부 함몰토에 포함된 강돌 등을 통해 일정한 범위의 묘역과 덮개돌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뚜껑돌은 대부분 이중이며 길고 큰 돌과 넓적한 돌을 혼용하기도 하였다. 측벽은 5~8단 정도이며 바닥에는 잔자갈을 깔았다. 유물은 주로 돌널 내부의 짧은 벽 쪽에서 출토되었지만 무덤 구덩이와 벽석 사이, 무덤 구덩이와 측벽 사이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유물을 부장한 것도 있다. 출토 유물 중 자루와 몸통이 분리된 간 돌검과 4편으로 절단된 간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이처럼 유물을 의도적으로 깨뜨려서 부장하는 예는 사천 이금동, 진주 평거동 유적 등 남강과 남해안 지역에서 흔히 확인되는 양상이다. 무덤에서는 붉은 간 토기, 간 돌검, 간 돌살촉, 대롱옥(管玉)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묘역식 고인돌과 돌널무덤은 묘역의 규모나 구조, 특징, 출토 유물 등을 통해 볼 때 무덤에 묻힌 사람 간에 차이가 인정되며, 시기는 송국리 단계에 해당된다. 특히 고인돌은 대규모의 묘역, 낮은 분구(墳丘)의 봉토 등 유력 개인묘로 상정되는 무덤들이 일정하게 무리를 이루면서 다수 확인되었다. 이처럼 무덤의 입지 선정에 따른 차별성은 위계화(位階化)의 한 요소로 상정된다. 유적은 지리적으로 동남해안에서 서남해안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와 더불어 진동만에서 함안을 통해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요충지에 위치한다. 고인돌과 돌널무덤에서 나타나는 계단상 무덤 구덩이(多段) 및 여러 겹(多重)의 뚜껑돌(蓋石), 무덤방 위에 돌을 쌓아 올리는 방식, 비파형 동검이나 천하석제 장식 옥(飾玉)과 대형 대롱옥의 분포 등을 통해 유적 간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진동만에서 함안으로 이어지는 이 교통로는 경남 내륙과의 교류를 통해 대규모 마을로 성장하는데 유리한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현재 묘역식 고인돌이 분포하는 곳을 중심으로 묘역식 고인돌 7개소 26기, 바둑판식 고인돌 1기, 선돌(立石) 2기를 유적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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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0년~2005년 | 마산 진동 유적 I | 2008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 발굴조사 | 2000년~2005년 | 마산 진동 유적 II | 2011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지정정보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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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 사적 | 창원 진동리 유적 (昌原 鎭東里 遺蹟)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