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리 유적(舒川 烏石里烏石山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서천 오석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오석리 445-4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독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 유형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남석 |
설명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오석리 445-4 일원에 위치한다. 서해안 고속 도로 건설에 따라 1994~1995년에 공주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집자리 13기, 돌널무덤(石棺墓),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독무덤(甕棺墓)과 그 밖에 원삼국 시대 및 백제 시대 무덤, 조선 시대의 집자리 등이 확인되었다. 서천 지역은 구릉과 산지가 잘 발달되어 있는 곳인데 유적은 동서로 길게 형성된 야산에서 남쪽으로 길게 분지되어 형성된 능선상의 해발 20~30m내외의 범위에 입지한다. 현재 북서쪽에는 판교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으며, 남쪽 전방으로는 넓은 충적지대가 형성되어 있는데, 유적은 주변의 평지가 잘 조망되는 곳이다.
집자리는 평면 형태 원형 9기, 장방형 4기로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있는 전형적인 송국리식이다. 원형 집자리는 지름이 대체로 5~6m 정도이며 깊이가 1m 이상인 것도 2기 있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과 타원형 구덩이 이외에 확인되는 것이 없으나, 95-4호는 바닥 세 면에서 길이 1.5m, 너비 1.04m의 장방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구체적인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집자리 내부의 저장 구덩이와 같은 용도로 볼 수도 있다. 출입 시설은 95-1호의 남벽에서 일부 확인되었으나 분명하지는 않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류의 외반 구연 항아리(外反口緣壺), 붉은 간 토기,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돌살촉(石鏃), 돌도끼(石斧), 숫돌(砥石), 삼각돌칼,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 중 표면에 횡방향의 원시 두드림무늬(原始打捺文)가 있는 것이 있는데, 이러한 문양은 보령 진죽리, 태안 고남리, 서천 봉선리, 서천 도삼리 유적 등 서해안 일대의 송국리 유형 유적에서 주로 확인된다.
돌널무덤과 돌뚜껑움무덤은 모두 25기가 조사되었는데, 구릉의 정상부 해발 25~27m 내외를 중심으로 반경 50m 이내에 밀집되어 있으며 가장 크기가 큰 25호 1기만이 구릉 정상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돌널무덤의 크기는 길이 2m의 25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1.4m 이하로 작은 편이다. 무덤방(墓室)은 풍화 암반층을 파고 점판암제의 긴 판돌(板石)이나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조성하였다. 바닥은 돌을 깐 것과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 그리고 토기 편을 깐 것이 있는데,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가장 많다. 그리고 19기는 돌널 바닥의 한쪽 모서리에서 요갱형(腰坑形)의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출토 유물은 매우 빈약하며 4기에서만 확인되었다. 유물은 간 돌검, 돌살촉, 민무늬 토기가 있다.
독무덤은 돌널무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의 외곽에서 1기가 조사되었다. 대부분 파손되어 구체적인 형상은 알 수 없으나, 송국리식 독(甕) 1점을 세워서(直置) 구축하였다. 대부분 송국리형의 유적 내에서 확인된 독무덤이 단독의 묘역을 형성하기보다는 돌널무덤의 외곽에 분포하는 양상과 동일하다. 돌널무덤과 돌뚜껑움무덤은 내부 구조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유구의 배치나 축조 재료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동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오석리 유적은 동일한 능선 상에 분포하는 경우에도 생활 유적과 무덤 유적이 일정한 공간 분포를 이루고 있다. 즉 집자리는 선상부 중앙을 피하여 사면에 조성되었고, 한곳에 밀집되기 보다는 전체 범위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돌널무덤이 밀집되어 있는 해발 25~27m 구릉 정상부 부근에서는 집자리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일찍부터 무덤 유적과 생활 유적의 공간 분화가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로, 서천 봉선리, 공주 산의리, 논산 마전리, 대전 신대동 등지의 유적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방사성 탄소 연대치는 4호 집자리에서 2480±60 BP, 2530±60 BP, 2580±50 BP, 470, 2450±60 BP, 2420±60 BP 등의 값이 도출되었으며 이를 보정하면 대략 기원전 530년부터 470년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