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납 유구(埋納遺構)
| 기본 정보 | |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마산 가포동 유적, 합천 영창리 유적, 평택 양교리 유적, 진주 대평리 유적 |
| 키워드 | 구덩이, 유물, 제사, 의례, 퇴장 유구, 너덜겅, 지진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서길덕 |
설명
매납(埋納)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장소에 유물을 의도적으로 묻거나 숨기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매납 유구는 목적을 한 가지로 특정하기 어렵다. 청동기 시대 매납 유구의 목적으로는 제사나 의례가 가장 많이 거론되며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폐기’와는 뚜렷이 구분하고 있다. 반면 잠시 숨겨둔 ‘은닉’으로 의심되는 유구는 매납 유구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유는 은닉으로 단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아직 ‘은닉 유구’라는 개념이나 용어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재나 전쟁과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중요한 물품을 숨기기 위한 불교 사찰의 퇴장 유구(退藏遺構)나 중국의 청동 예기가 발견된 구덩이, 다량의 동전이 묻힌 곳도 넓은 의미에서 매납 유구에 포함된다.
또한 집자리가 모인 일정의 공간적 단위를 생활 유적이라고 정의하듯이 매납 유구가 모인 공간적 단위가 매납 유적이다. 이밖에 하나의 유구만 확인되었더라도 독립된 공간에서 매납 유물이 드러난 일정의 범위가 확인된 경우 매납 유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마산 가포동 유적을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매납 유구는 생활 유적이나 무덤 유적 내에서 발견되거나 특정한 유구에 포함되어 확인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진구(地鎭具)는 건물을 짓기 전에 그 건물이 들어설 땅의 기(氣)를 진압하여 건물의 안전과 영속을 비는 의식을 진행할 때 납입되는 봉안물에 해당하고 이 유물을 포함한 유구는 매납 유구로 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매납 유구는 합천 영창리 유적과 같이 세형동검 등을 매납한 구덩이, 평택 양교리 유적과 같이 간 돌검이나 돌도끼, 돌칼이 묻힌 구덩이 형태이거나 너덜겅을 파내고 각종 청동기를 묻은 경우, 바위틈에 청동 매납물을 넣는 경우가 많다. 이 밖에도 진주 대평리 유적과 같이 집자리의 주춧돌 밑이나 벽에 구덩을 파고 유물을 매납한 사례도 넓은 의미에서 매납 유구로 볼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청동기 시대에 가축을 매납한 사례는 없지만 삼국 시대 유구 중에는 무덤과 구분되는 가축 매납 유구도 확인되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매납물의 종류가 점차 확대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