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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귀동 유적(江界 公貴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13:14 판 (dkamaster 600-0183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공귀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강계 공귀동 유적, 강계 공귀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자강도 강계시 공귀동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화덕자리, 돌널무덤, 간 돌살촉, 반달돌칼, 돌도끼, 질그릇, 대롱옥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자강도 강계시 공귀동에 위치한다. 강계 시내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독로강가의 회천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 지점인 독로강 우안의 하안 단구 지대인 장자강 기슭에 있다. 유적에서 큰길을 따라 남쪽으로 200m에는 사진천이라는 작은 냇물이 동쪽으로 흘러 독로강으로 합류한다. 1954년 공장 건설 과정에서 간 돌살촉, 반달 돌칼, 돌도끼(石斧) 등 유물이 발견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1955년 5월 과학원 물질 문화사 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 6기와 돌널무덤(石棺墓) 2기를 확인하였고 1957년에도 유적을 정리하면서 돌널무덤 1기를 새로 발굴 조사하였다.

집자리는 층위 관계와 구조, 그리고 출토 유물의 특징에 따라 아래문화층(2·3·6호)과 윗문화층(1·4·5호)으로 나뉜다. 아래문화층에는 2호 집자리를 가운데 두고 남쪽으로 5m 거리에 6호, 북쪽으로 10m 거리에 3호가 있는데 2호와 6호는 교통호(交通濠)로 이어져 있다.

구조는 장방형의 반움집이며 벽 밖으로 작은 움을 덧내어 도구를 넣어둘 수 있게 한 창고와 출입구 시설이있다. 2호는 길이 9.5m, 너비 7.3~7.8m, 깊이 0.55m로 내부에는 돌 4매를 돌 두름식 화덕 자리가 있으나 기둥 구멍은 없다. 3호는 길이 9m, 너비 6.3~7m, 깊이 0.4m이며 내부에 구덩식 화덕 자리가 확인된다. 윗문화층에는 교통호로 연결된 3기의 집자리가 있다. 4·5호는 평면 장방형이며 화덕 자리를 갖추고 있다. 가운데 큰 기둥을 세우고 네 면을 기둥으로 받치고 면을 따라 경사지게 지붕을 이은 사각추 지붕으로 복원할 수 있다. 4호는 길이 6~6.6m, 너비 6m, 깊이 0.5m로 벽을 따라 기둥 구멍을 배치하고, 판돌板石을 밑에 깔고 둘레를 돌로 돌린 화덕이 있다. 5호는 길이 6.5~6.7m, 너비 5.7~6m, 깊이 0.5m로 내부는 4호와 유사하다.

집자리 출토 유물은 돌도끼,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간 돌살촉, 물고기 모양·빗 모양(櫛形)의 반달 돌칼, 돌낫(石鎌), 달도끼(環狀石斧), 별도끼(星形石斧), 숫돌(砥石), 부리 모양 석기석기류와 돌과 흙으로 만든 그물추, 가락바퀴장신구들이 있고 기형을 알 수 없는 청동 연모 편이 나왔다. 질그릇보시기, 단지, 항아리 등이 있는데 고리 손잡이, 꼭지 손잡이가 마주 달려 있는 것이 많고 질그릇 입술에 구멍무늬(孔列文) 장식을 한 것, 두터운 돋을띠(突帶)에 무늬를 새긴 것과 민무늬인 것이 있다. 출토 유물의 특징을 보면 우리나라 동북 지방과 서북 지방의 청동기 시대 문화 요소를 함께 갖추고 있어 두 지역 사이의 문화 교류를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돌널무덤은 점판암 판돌을 이용하여 무덤방(墓室)을 만들고 옆에 작은 무덤방이 딸린 구조이다. 무덤방 크기는 길이 1.25m, 너비 0.4~0.57m로서 머리 쪽이 넓은 것으로 나타난다. 옆에 딸린 작은 무덤방은 길이 0.8m, 너비 0.3m 안팎이며, 바닥에는 판돌을 깔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안에서는 사람 뼈는 나오지 않았고 토기 편 2점, 흑요석 편 1점, 대롱옥(管玉) 1점이 나왔다. 무덤 구조로 보면 굽혀묻기(屈身葬)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