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다테이와 유적(飯塚 立岩遺跡)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05:41 판 (dkamaster 600-3470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다테이와 유적(飯塚 立岩遺跡)
기본 정보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일본
소재지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 이즈카시(飯塚市) 다테이와(立岩)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야요이 시대, 구덩이, 독무덤, 조개팔찌, 청동 거울, 전한경, 다테이와식 독무덤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동관



설명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 이즈카시(飯塚市) 다테이와(立岩)에 위치한다. 유적은 온가강(遠賀川)에서 동쪽으로 약 1.3㎞ 떨어진 구릉상에 입지하며, 온가강 유역을 동서, 남북으로 연결하는 요충지에 해당한다.

다테이와라는 유적명은 시모노가타 유적(下ノ方遺跡), 야케노쇼 유적(焼ノ正遺跡), 홋타 유적(堀田遺跡) 등의 총칭이다. 1933년 조사된 독무덤(甕棺墓)에서 조개 팔찌가 착장된 사람 뼈쇠칼(鐵劍) 등이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야요이 시대 전기에서 중기의 구덩이(竪穴), 독무덤 등이 확인되었으며, 간 돌검, 돌 꺾창(石戈), 반달 돌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석기 제작지로 추정된다. 특히 1963·1965년 플라스크형 구덩이 조사에서 휘록응회암제(輝綠凝灰岩製) 반달 돌칼, 돌낫(石鎌) 및 미완성품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휘록응회암은 야요이 시대 전기까지 후쿠오카평야 등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혈암질(頁岩質) 사암에 비하여 강도가 강한 것으로, 원석은 다테이와 서북쪽 약 6㎞에 위치하는 가사기산(笠置山)에서 채집하였다. 다테이와가 석기 제작지로 발달하게 된 것은 교통의 요지라는 지리적 요건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휘록응회암제 석기는 야요이 시대 중기 전반이 되면 온가강 유역에 넓게 분포하며, 중기 후반에 이르면 후쿠오카, 아사쿠라를 비롯한 북부 규슈의 여러 평야까지 유통된다. 최종 유통 범위는 지쿠고(筑後)·사가평야(佐賀平野)를 비롯한 지쿠고강(筑後川)을 중심으로 하는 히타평야(日田平野)까지 이르게 되며, 주요 기종은 반달 돌칼과 돌낫 등의 수확구이다.

다테이와 유적에서는 청동 거울이 10호 독무덤에서 6점, 28·34·35·39호 독널에서 각 1점씩, 총 10점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중국제 전한경(前漢鏡)이다. 이 거울 중 소명경(昭明鏡), 일광경(日光鏡)의 경우 기원전 1세기 후반~기원후 1세기 전반으로 편년할 수 있다. 이 연대는 북부 규슈 독무덤 편년과도 일치하여 야요이 시대 중기 후반으로 판단된다. 특히 다테이와식 독무덤(立岩式甕棺墓)은 크기의 장대화가 특징으로 스구식 독무덤(須玖式甕棺墓)과 함께 야요이 시대 중기 후반의 표식적인 형식명으로 불리고 있다.

다테이와 유적에서 출토된 전한경은 이 지역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편입되었음을 나타낸다. 또 고호우라(ゴホウラ)제 조개 팔찌 등이 출토되어 오키나와와의 관련성도 엿볼 수 있다. 청동 거울과 조개 팔찌는 이후, 고훈 시대 기나이 지역의 전기 고분에서 의기적 역할을 하게 된다. 다테이와의 피장자는 원거리 교역을 통해 물자를 축적하고, 이것을 부장할 힘을 가졌던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