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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쭈이쯔 유적(大連 大嘴子遺蹟)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05:41 판 (dkamaster 600-3466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다쭈이쯔 유적(大連 大嘴子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다롄 다쭈이쯔 유적, 대련 대취자 유적(大連 大嘴子遺蹟)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중국
소재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 간징쯔구(甘井子區) 다롄완진(大連灣鎭) 리자촌(李家村) 동남쪽에서 약 2㎞ 떨어진 대지 위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돌담, 구덩이, 솽퉈쯔 문화, 동과, 룽산 문화, 웨스 문화, 권족, 농경, 수렵활동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천선행



설명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 간징쯔구(甘井子區) 다롄완진(大連灣鎭) 리자촌(李家村) 동남쪽에서 약 2㎞ 떨어진 대지 위에 위치한다. 1959년 뤼순박물관(旅順博物館)이 발견하여 두 차례 조사하였다. 다롄시 경제 기술 개발 구역 도로 건설을 위해 1987년 다롄시문물고고연구소(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가 조사하였다. 이후 1992년 랴오닝성문물고고연구소(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지린대학고고계(吉林大學考古系), 다롄시문물관리위원회(大連市文物管理委員會)가 공동으로 조사하였다.

1987년 조사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39기, 돌담(石墻) 3기, 구덩이(灰坑) 8기, 1992년 조사에서는 집자리 12기, 돌담 1기, 구덩이 3기가 확인되었다. 층위와 유구의 중복 관계에 따라 3개의 문화층으로 나뉘며 1~3기 또는 조기·중기·만기로 명명되었다. 이는 솽퉈쯔 문화(雙砣子文化) 1~3기에 해당한다. 1기는 4층·5층의 구덩이 2기, 5층~6층 하면(下面) 집자리 2기가 확인되었다. 2기는 3B층·4층·4층 하면 집자리 1기로 이루어져있다. 3기는 2층·3A층 집자리 39기, 돌담 3기, 구덩이 6기와 2층·3층·3층 하면 집자리 9기, 구덩이 3기, 돌담 1기가 확인되었다. 특히 3기는 1998년 조사와 1992년 조사에서 유구의 중복 관계가 확인되어 세분될 가능성도 있다.

다쭈이쯔 1기 집자리는 규모와 내부 구조가 불분명하다. 11호는 방형, 12호는 원형으로 기둥 구멍이 설치되어 있다. 집자리 내부에서 채회도(彩繪圖)가 확인되었다. 구덩이는 평면 형태 타원형(2호)과 부정형한 사다리꼴(7호)이 있다. 규모는 2호가 길이 4m, 7호가 1.78m이다. 출토 토기회갈도(灰褐陶)가 대부분이며 일부 채회도가 확인되었다. 기종은 관(罐), 호(壺), 완(椀)이며, 문양은 현문(弦文), 유정문(乳釘文) 등이 확인된다. 토기는 위자춘(于家村) 하층솽퉈쯔(雙砣子) 하층과 유사하다. 석기류는 석부, 석도, 석과(石戈), 석촉, 석착(石鑿), 지석(砥石), 어망추 등이 있다. 이외에 뼈로 만든 비녀, 추와 동과가 출토되었다. 동과는 다쭈이쯔 1기를 포함한 솽퉈쯔 1기가 청동기 시대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중요 자료이다. 보고자는 이 단계의 유물이 샤오주산 문화(小珠山文化) 3기와 비슷하지만 다소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이는 다쭈이쯔 1기가 산둥 룽산 문화(龍山文化)의 영향 때문으로 판단된다.

다쭈이쯔 2기의 집자리는 10호가 유일하다. 반지하식으로 기둥 구멍이 8기 있으며, 내부에서 완 1점이 출토되었다. 문화층에서는 회갈도를 중심으로 홍갈도(紅褐陶), 흑회도(黑灰陶) 등이 출토되었다. 정(鼎), 언(甗) 등의 세발 달린 토기가 출토되고 개(蓋), 우(盂) 등이 새로 출현하며, 관, 호, 두, 완 등이 확인되었다. 무늬는 현문, 자점문(刺点文), 철릉문(凸陵文) 등으로, 자오둥반도 웨스 문화(岳石文化)와 유사하다. 석기는 석부, 자귀, 석도, 석촉, 방추차, 지석 등이다. 그밖에 동물 뼈로 만든 조침, 비녀, 추 등이 출토되었다.

다쭈이쯔 3기의 집자리는 총 48기로 구조는 반지하식 집자리와 반지하식·지상식 석벽(石築) 집자리가 확인된다. 형태는 말각 방형, 원형, 타원형이다. 일부는 화재로 붕괴되었으며, 이는 대부분 평지에 석제로 벽을 쌓은 지상식 집자리로, 모두 폐기된 것이다. 집자리의 규모는 길이 2.2~5.6m로, 내부에서 화덕 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된 토기에서도 불에 맞은 흔적은 확인되지 않고, 문화층 내에서 취사용 관, 호가 다수 확인되어 실외 화덕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조사 구역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되지 않아 확실하지 않다. 1992년 조사된 중복된 집자리의 바닥면에서 황토를 확인하여, 다쭈이쯔 유적 집자리의 바닥은 황토, 회토, 세사 등을 깔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단계의 구덩이의 형태는 원형, 타원형 등으로 다양하고, 규모는 길이 2.3~5m, 깊이 0.4~1.55m이다.

3기의 특징은 돌담이다. 1호는 유적의 동쪽 높은 곳에 위치하며, 깬돌(割石)로 축조되었다. 규모는 길이 39m, 너비 2.5~3.5m, 높이 0.4m이다. 2호는 유적의 서쪽 낮은 곳에서 확인되며 불규칙한 중소형 석재를 이용하여 쌓았다. 규모는 길이 19m, 너비 0.8~1.2m, 높이 0.3m이다. 3호는 북쪽 일부가 유실되었고 높이는 1m 내외이다. 1·2호 돌담은 평행하게 남에서 북으로 뻗어나가 꺾인다. 1992년 조사에서도 돌담이 확인되었는데, 규모는 길이 9.6m, 너비 0.6~0.9m, 높이 0.35m이다. 보고자는 돌담의 기능을 집단 간 전투를 대비한 방어 시설로 추정하기도 한다. 유적에서 확인되는 야생 동물 중 맹수류는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집자리에서 출토되는 석검, 석과, 석도, 문화층의 동촉의 존재를 통해 자연적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였다.

3기의 출토 토기는 회갈도가 중심이고 일부 흑피도(黑皮陶)와 회도가 확인되었다. 기종은 호와 관, 궤가 가장 많고, 완, 두, 분, 언, 주형 토기 등이 있다. 권족(圈足)이 많은 점이 특징이다. 무늬는 대부분 호에서 확인되며 척점문, 점선문, 현문, 인자문(人字文), 망격문(網格文), 삼각문, 수파문(水波文) 등이 있다. 석기는 석부, 자귀, 곤봉두, 지석, 어망추, 방추차, 석도, 석과, 석모(石矛), 석검 등이며 석제 무기류가 다량 출토되는 점이 특징이다. 이외에 동촉 1점, 동물 뼈로 만든 추를 비롯하여 침, 비녀, 착, 촉 등 다양한 골각기,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3호 집자리(1987년)에서는 탄화된 곡물이 가득 들어 있는 관이 확인되었는데, 수수(高粱)와 벼로 밝혀졌다. 10호(1987년)와 37호(1987년) 집자리에서는 물고기 뼈가 가득한 호와 관이 확인되었다. 즉, 다쭈이쯔 3기 사람들은 농경을 중심으로 하며, 수렵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의 연대는 3기의 목탄과 탄화미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1호 집자리(1992년)의 목탄은 3384±92 BP(보정 연대 기원전 1691~1459년), 4호 집자리의 목탄 3053±86 BP(보정 연대 기원전 1373~1051년), 3호 집자리(1987년) 출토 탄화미 3090±75 BP, 14호 집자리(1987년) 목탄 3365±145 BP라는 결과를 얻었다. 즉, 3기는 기원전 1700~1200년으로 판단된다. 이를 통해 2기는 기원전 2000~1700년, 1기는 동시기로 판단되는 솽퉈쯔 1기, 위자춘(于家村) 하층의 연대를 고려하여 기원전 2500~2000년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