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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靑銅器)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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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靑銅器)
기본 정보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합천 영창리 유적
키워드 구리, 장신구, 비소, 무기, 공구, 의기, 거마구,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거푸집, 껴묻거리, 세형동검 문화, 비파형동검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청규, 조진선



설명

인류는 구리(純銅)로 도구나 장신구를 만들면서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하지만, 구리는 무른 금속이기 때문에 도구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구리(銅, Cu)에 비소(砒素, As)를 2~8% 섞으면 보다 강도가 세지고 주조하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비소 합금 청동(靑銅, bronze)이 먼저 등장하였다. 주석(錫, Sn) 합금 청동이 이보다 좋지만, 주석은 과거에 구하기 어려운 금속이었기 때문에 좀 더 나중에야 등장한다. 12세기 이후 중국과 인도에서 아연(Zn)을 제련하게 되면서 인위적으로 아연을 합금한 청동(黃銅)도 등장한다.

이처럼 청동은 구리와 비소를 합금한 것부터 시작되지만, 한국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의 청동기들은 주로 구리와 주석, 또는 납(鉛, Pb)의 합금이다. 청동은 금속들의 합금 비율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구리에 주석이 첨가되면, 용융점이 내려가 응고될 때까지의 시간이 길어지므로 유동성이 좋아진다. 색상은 적황색에서 점차 황색을 띠다가 은색으로 변화되므로 필요한 색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압축 경도는 계속 증가하지만 인장 강도는 16~18%에서 정점을 이룬 다음 다시 떨어진다. 이러한 청동의 금속학적 성질은 고대인들도 잘 알고 있어서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는 청동 기물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합금비가 정리되어 있다. 세형동검 문화를 보면, 세형동검을 비롯한 무기에는 납을 포함한 주석이 1/4~1/5 정도 섞여 있지만 고운무늬 거울(精文鏡)에는 1/3 정도 섞여 있는데, 무기는 충격에 강한 높은 경도를 얻기에 적당하고, 청동 거울은 빛 반사율이 좋은 은색을 구현하기에 적당한 합금비가 적용되었다.

한반도와 만주에 분포하는 한국계 혹은 고조선계 청동기는 무기가 대부분이고, 공구(工具), 의기(儀器), 장신구, 거마구(車馬具) 등도 있다. 무늬는 주로 기하학무늬(幾何學文)가 베풀어져 있다.

무기로는 청동 검(銅劍), 청동 투겁창(銅矛), 청동 꺾창(銅戈), 청동 살촉(銅鏃) 등이 있다. 청동 검은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과 세형동검(細形銅劍)으로 나누어지는데, 검 몸(劍身) 중앙에 등대(劍脊)가 이어져 있고 자루(柄)는 별도로 만들어 조립하였다. 비파형동검은 검날(刃)이 유선형을 띠는 굽은 날(曲刃)이어서 그 형태가 중국의 고대 악기인 비파(琵琶)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랴오시·랴오둥 지역과 한반도에서 주로 출토된다. 세형동검은 비파형동검에 이어 나타나는 것으로 비파형동검에 비해 검 몸이 좁아지고 곧은 날(直刃) 형태를 띤다. 랴오둥과 한반도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검 몸 아래쪽에 허리가 파이고, 등대에 마디가 형성된 것은 한반도에서 주로 출토되어서 한국식 동검이라고도 한다. 청동 투겁창은 투겁이 달린 청동제 창머리에 긴 나무 자루를 끼워 조립해 만든 것이다. 창 날이 유선형을 띤 비파형과 곧은 형태에 가까워진 유엽형(柳葉形), 세신형(細身形), 세형(細形) 등으로 구분된다. 청동 꺾창은 비파형동검 문화 후기에 중위안식 청동 꺾창(中原式銅戈)을 모방해서 랴오닝 지역에서 등장했다. 랴오닝식 청동 꺾창(遼寧式銅戈)은 ‘ᄀ’자 모양의 중위안식 청동 꺾창과는 달리 ‘ᅥ’자 모양이다. 세형 청동 꺾창은 랴오닝식 청동 꺾창을 조형(祖形)으로 해서 한반도에 등장한다. 몸통(戈身) 끝부분에서 양쪽으로 돌출된 호(胡)의 크기가 줄어들어서 형태가 좀 더 단순해졌다. 청동 살촉은 화살대와 결합 방식에 따라 슴베식(有莖式)과 투겁식(有銎式) 등이 있고, 몸통의 모양에 따라 양 날개형(兩翼形), 세 날개형(三翼形), 마름모형(菱形) 등이 있다.

공구로는 청동 도끼(銅斧), 청동 자귀(銅錛), 청동 끌(銅鑿), 청동 지우개(銅鍦), 청동 손칼(銅刀子) 등이 있다. 비파형동검 문화의 청동 부채 도끼(扇形銅斧)는 날이 부채 모양이며, 투겁에 자루를 끼우게 되어 있다. 세형동검 문화에서는 어깨가 있고 날이 직선인 유견 동부(有肩銅斧), 몸통이 네모난 장방형 동부(長方形銅斧)가 있는데 날이 외날이어서 자귀(錛)로 생각된다. 몸통이 둥근 주머니형 동부(蛤刃銅斧)는 날이 양날인 전형적인 도끼(斧)이다. 청동 끌은 홈을 파거나 구멍을 뚫을 때 주로 사용된다. 청동 지우개는 비수(匕首)와 같은 무기로 보기도 하지만 간독(簡牘)에 잘못 쓰여진 글자를 깎아내어 지울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 거마구는 말이 수레를 끄는 데 쓰는 도구이기 때문에 말을 부리는 도구와 수레 부속구로 구분된다. 거마구는 랴오시 지역에서는 비파형동검 문화의 전기부터 등장한다. 주목되는 유물은 말 얼굴 장식(馬面), 말머리 장식(頂飾)으로 사용된 것들인데, 이러한 유물들은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 단계로 오면서 검파형(劍把形)·방패형(防牌形)·나팔형(喇叭形) 청동기 같은 의기로 변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른 사례의 유물은 랴오닝 싱청(興城) 주자춘(朱家村) 유적과 선양(瀋陽) 정자와쯔(鄭家窪子) 6512호 무덤에서 출토된 말 머리 장식인데, 비슷한 형태의 나팔형 청동기가 예산 동서리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의기로는 앞서의 검파형·방패형·나팔형·원개형(圓蓋形) 등의 이형 청동기(異形靑銅器) 이외에 청동 거울(銅鏡)과 청동 방울(銅鈴·銅鐸) 등이 있다. 원개형 청동기는 볼록한 원형 뚜껑 모양의 청동기인데, 볼록 면 위쪽에 꼭지가 하나 있는 것과 오목한 안쪽에 꼭지가 하나 있는 것이 있다. 청동 거울은 뒷면에 삼각형이나 반원형으로 테두리(周緣部)가 돌아가며, 꼭지 손잡이가 2~3개 있고, 기하학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기하학무늬의 거친 정도에 따라 거친무늬 거울(粗文鏡)고운무늬 거울(精文鏡)로 구분된다. 비파형동검 문화에서는 거친무늬 거울이 사용되며, 세형동검 문화에서는 거친무늬 거울도 있지만, 점차 고운무늬 거울로 바뀌어 간다.

청동 방울은 아래쪽이 트여 있는 원주형(圓柱形) 몸통 안에 혀가 매달려 있는 동탁(銅鐸)과 속이 빈 금속 통 안에 환(丸)이 들어 있는 동령(銅鈴)으로 구분된다. 동탁은 랴오시 지역 비파형동검 문화 시기에서부터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 시기까지 확인된다. 동령은 세형동검 문화에서 주로 확인되는데, 모서리가 길게 연장된 팔각형 청동판의 끝에 둥근 방울이 달려 있는 팔주령(八珠鈴), 아령 모양을 한 쌍두령(雙頭鈴), 나무 자루 끝에 끼워 넣게 만든 달걀 모양의 간두령(竿頭鈴) 등이 있다.

한국 청동기는 계통적으로 북방 초원 지역 청동기와 가깝지만, 중국 중위안(中原) 지역 청동기 요소가 점차 늘어난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예니세이(Енисей)강 상류의 미누신스크(Минусинск) 지역에서 성립된 카라수크 문화(Карасукская культура)(기원전 13~9세기)에서 찾기도 한다. 이 문화가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의 오르도스 지역을 거쳐 랴오시 지역으로 파급되어 난산건(南山根) 유적으로 대표되는 샤자뎬 상층 문화(夏家店上層文化)와 관계를 갖는다. 샤자뎬 상층 문화와 인접하면서 이 지역 나름대로 발전한 비파형동검과 거친무늬 거울 중심의 스얼타이잉쯔 문화(十二臺營子文化)로 발전하여 한국 청동기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청동기 문화는 크게 비파형동검 문화 등장 이전의 초기 청동기 문화, 비파형동검 문화, 세형동검 문화의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초기 청동기 문화는 기원전 2000년기에 해당되는데, 랴오둥 지역에서는 솽퉈쯔(雙砣子)마청쯔(馬城子) 유적에서 보는 것처럼 청동 살촉(銅鏃), 청동 낚싯바늘, 청동 장신구 등이 출토된 사례가 이에 속한다. 기원전 10세기경에 이르면, 한반도에서도 청동기가 등장하는데, 룡천 신암리 유적의 청동 손칼(銅刀)과 청동 단추(銅泡), 정선 아우라지 유적의 청동 장신구 등이 대표적이다.

비파형동검 문화 시기가 되면서 비파형동검과 여러꼭지 거친무늬 거울(多鈕粗文鏡), 비파형 동모와 청동 부채 도끼 등 한국식 청동기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다. 비파형동검 문화는 기원전 9~8세기에 랴오시 지역에서 등장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기원전 12세기경에 랴오둥 지역에서 등장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한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4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세형동검 문화 시기는 기원전 4~3세기경의 전기, 기원전 3~2세기경의 중기,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의 후기로 구분된다.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의 경우, 전기에는 호서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세형동검, 거친무늬 거울(粗文鏡), 검파형·방패형·나팔형·원개형의 이형 청동기 등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중기에는 세형동검뿐 아니라 청동 투겁창과 청동 꺾창이 새로 등장하며, 고운무늬 거울이 본격적으로 제작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형 청동기가 사라지는 대신 호서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청동 방울이 많이 보급된다. 또한 쇠도끼(鐵斧), 쇠끌(鐵鑿), 쇠지우개(鐵鍦)를 비롯한 주조 철기가 등장한다. 이 시기에는 세형동검, 청동 투겁창, 청동 꺾창, 고운무늬 거울 등이 일본 열도로 파급된다. 후기에는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철제 단검과 투겁창 등 단조 철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동검, 투겁창, 꺾창 등의 청동 무기가 장식과 문양이 추가되거나 대형화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한국의 세형동검 문화가 파급된 일본에서는 자체적으로 중세형과 중광형, 광형의 동검, 투겁창, 꺾창이 제작 보급된다.

청동기는 거푸집(鎔范)에 청동 쇳물을 부어 만드는 주조(鑄造) 방법으로 제작된다. 거푸집은 돌로 만든 것과 흙으로 만든 것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거푸집은 조각하기 쉬운 활석을 사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비파형동검 문화에서는 비파형동검과 청동 부채 도끼의 거푸집이, 세형동검 문화에서는 세형동검, 청동 투겁창, 청동 꺾창, 청동 거울, 청동 도끼, 청동 자귀, 청동 끌, 청동 지우개, 청동 낚시바늘 등 다양한 종류의 거푸집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전남 영암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거푸집 일괄 유물에는 11종 26점의 주형이 새겨져 있다. 거푸집은 대체로 두 짝을 조합해서 만들며 위쪽에는 청동 쇳물을 붓기 위한 주입구가 있다. 청동 방울을 비롯한 청동 의기류들의 거푸집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흙으로 만든 거푸집(土范)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동기는 대부분 무덤의 껴묻거리로 발견되고 있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의 종류와 양은 시기와 지역, 무덤 주인공의 신분에 따라 다르지만, 동검, 청동 투겁창, 청동 꺾창 등의 무기를 기본으로 한다. 비파형동검 문화 전기에 해당하는 차오양 스얼타이잉쯔 돌무지돌덧널무덤(積石石槨墓)과 중기의 선양 정자와쯔 덧널무덤(木槨墓) 등은 최고 수장급 무덤으로 청동 무기, 청동 거울 등과 함께 거마구와 장신구 등 다종 다량의 청동기들이 부장되어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비파형동검 문화 시기에 고인돌돌널무덤(石棺墓) 등에서 비파형동검과 비파형 청동 투겁창만 간혹 확인되며 청동 거울이나 거마구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는 세형동검 문화 시기에 들어와서야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널무덤(木棺墓)에서 동검, 청동 투겁창, 청동 꺾창 등의 무구와 청동 거울과 청동 방울 등이 부장된다. 청동기가 많이 부장된 무덤의 주인공은 수장이나 군장(君長)으로 추정되며, 청동 방울을 부장한 무덤의 피장자는 제사장(祭司長)의 성격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무덤들에서 청동기들이 많이 출토되지만 매납 유구(埋納遺構)에서 청동기가 다량으로 출토되는 경우도 많다. 일본에서 매납 유구는 대형 무기나 청동 방울 등을 매납한 것으로 공동 제사(祭祀)를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도 매납 유구로 생각되는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비파형동검 문화 시기의 청도 예전리 유적이나 세형동검 문화 시기의 마산 가포동, 합천 영창리 유적이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