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전동 유적(光州 月田洞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광주 월전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전동 1251·1240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돌널무덤, 독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가락바퀴, 항아리 모양 토기, 깊은 바리 토기, 슴베 간 돌살촉, 검은 간 토기, 경질 무문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수민 |
설명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전동 1251·1240 일원에 위치한다. 광주 평동 2차 산업 단지 조성 사업 부지에 포함되어 2008~2009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해발 13~14m의 평지에 있는데, 황룡강에 인접한 충적지이다. 이 지역은 경작과 더불어 비닐하우스를 시설하면서 전체적으로 심하게 삭평되었기 때문에 원래 지형이 많이 변형되었다. 발굴 조사는 A구역과 B구역으로 구분해서 이루어졌다.
A구역에서는 집자리 57기, 돌널무덤(石棺墓) 16기, 독무덤(甕棺墓) 9기, 구덩이 552기가 발굴되었다. 집자리는 남쪽에 집중 분포하며, 북쪽에서는 상대적으로 분산되어 분포하고 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으로 구분되는데, 원형 50기와 방형 7기이다. 원형 집자리의 크기는 지름 3.3m~6.8m, 깊이 0.1~0.6m이다. 바닥 중앙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었고 그 사방에 기둥 구멍(柱孔)이 있는 집자리도 있다. 일부 집자리에서는 벽 도랑(壁溝)도 확인되었다.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민무늬 토기 편, 슴베 간 돌살촉(有頸式磨硏石鏃), 돌도끼(石斧), 갈돌(碾石), 돌끌(石鑿), 그물추, 가락바퀴가 출토되었다. 방형 집자리는 길이 3.9~5.1m, 너비 3.8~4.9m, 깊이 0.1~0.6m의 크기이다. 바닥 중앙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지만 기둥 구멍이나 벽 도랑과 같은 시설들은 확인되지 않았다. 민무늬 토기 편, 슴베 간 돌살촉, 갈돌, 돌끌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북쪽에서 7기, 남쪽에서 9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당시 돌널무덤 주변에서 옮겨진덮개돌(上石)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고인돌의 하부 구조(下部構造)로 추정할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돌널무덤은 대체로 집자리들이 있는 공간에 밀집 분포하고 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독무덤은 A구역의 남쪽에서 9기가 조사되었다. 독무덤은 대부분 경질 무문의 독 모양 토기를 횡치한 합구식(合口式)이다.
구덩이는 평동 유적에서 가장 많이 확인된 유구이다.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 부정형으로 구분되고 여러 지점에 군집을 이루며 분포하고 있다. 크기는 길이 0.6~3.9m, 너비 0.5~3.8m, 깊이 0.05~0.6m이다. A-310호 구덩이에서는 바닥에서 돗자리가 출토되고 있어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돋을띠 골무늬 토기(刻目突帶文土器),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 돌도끼, 슴베 간 돌살촉, 갈돌, 가락바퀴, 돌끌, 용도 미상 석기가 출토되었다.
B구역에서는 집자리 4기, 구덩이 154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모두 원형이다. 크기는 지름 3.3~4.3m, 깊이 0.1~0.2m이다. 바닥 중앙에서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B-6호 집자리에서는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고 B-7호 집자리에서는 출입 시설로 추정되는 돌출부가 확인되었다. A구역과는 달리 집자리의 수가 많지 않고 각각 단독으로 축조되었다. 구덩이는 평면 원형, 타원형, 부정형 등으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크기는 길이 0.9~6.3m, 너비 0.7~4.1m, 깊이 0.1~0.8m이다. 구덩이는 여러 지점에서 산발적으로 확인되어 특별한 규칙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민무늬 토기 편, 경질 무문 토기 편, 대롱옥(管玉)이 출토되었다.
도랑은 A구역과 B구역에서 모두 확인되었지만 심하게 중복되어 있다. 내부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서 축조 시기와 폐기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월전동 유적에서 측정된 방사성 탄소 연대를 보면, A-60호 집자리는 242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475년), A-87호 집자리는 238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380년)이다. 이와 더불어 집자리들이 모두 송국리식이라는 점, 일부 집자리에는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지 않았고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점, 그리고 구덩이에서 덧띠 토기, 경질 무문 토기가 출토되었다는 점을 종합해보면, 월전동 유적은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부터 집자리와 구덩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초기 철기 시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고고학저널
- "영산강유역의 최대 분구묘 집합유적", 2009 한국고고학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