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동 유적(平澤 龍耳洞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평택 용이동 유적, 평택 용이·죽백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기도 평택시 용이동 660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환호, 집자리, 움무덤,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강병학 |
설명
경기도 평택시 용이동 660 일원에 위치한다. 2009~2016년 평택 용죽 도시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유적 주변의 반경 3㎞ 이내에는 해발 50m 미만의 구릉지만 분포하며, 청동기 시대 환호(環濠)가 조성된 구릉지는 해발고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고지대에 해당한다. 단, 집자리와 건물터 및 움무덤(土壙墓)이 조성된 지역은 해발 40m 미만의 구릉 지형에 해당된다. 유적 주변에는 선상지(扇狀地) 및 접근성이 용이한 안성천과 그 지류들이 형성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환호를 비롯하여 청동기~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집자리와 돌널무덤(石棺墓), 구덩이, 건물터, 돌덧널무덤(石槨墓), 움무덤 등 총 1,354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이 중 청동기 시대 유구는 2기의 환호, 집자리 90기, 돌널무덤 3기, 기둥 구멍 35기 등 총 130기인데, 기둥 구멍은 1호 환호 안쪽에서 확인되었다. 이들 유구는 2-5지점 최상단부(해발 55m 내외)에 위치한 1호 환호를 기점으로 북쪽·남서쪽·남동쪽방향으로 이어지는 구릉 선상부와 사면부에 주로 분포한다.
환호는 2-5지점에서 2기가 조사되었다. 1호는 구릉 정상부의 등고선을 따라 평면 원형으로 다른 유구와의 중복 관계 없이 단독으로 조성되었으며, 출입구 시설로 추정되는 단절구간이 북동쪽과 남서쪽에서 대칭된 형태로 확인되었다. 단절구간의 너비는 1.5m 내외이다. 환호의 규모는 지름 23m 내외, 너비 1.5~3m, 최대 깊이는 2m이며, 외곽 둘레는 약 78m로 면적은 450㎡ 내외이다. 환호 내부에는 중앙에 밀집하여 기둥 구멍 35기만 확인되었다. 규모는 지름 0.2~0.7m, 깊이 0.04~0.26m 정도인데, 6호의 경우 지름이 1m 정도로 상대적으로 크며, 내부에서 납작한 석재(石材) 2매와 토기 편들이 노출되었다. 그 외 환호 굴착면 내부에서는 북동쪽과 남서쪽의 단절구간과 인접하여 화덕 자리와 같이 평면 원형 내지 타원형으로 불탄 흔적(燒結面) 10곳이 확인되었다. 특히, 단절구간에 접하여 양쪽으로 비교적 큰 규모의 것들이 확인되는 점과 1호와 4호에서는 불탄 흔적 주변을 따라 기둥 구멍이 확인되는 특징이 있다. 환호의 규모, 형태, 구조, 그리고 내부에서 확인되는 기둥 구멍, 불탄 흔적 등은 그 성격상 방어나 경계 시설보다는 의례 행위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유물은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孔列土器) 편, 붉은 간 토기 편, 턱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磨製石鏃) 등이 출토되었다.
2호 환호는 집자리 24호(후 축조)와 40호(선 축조)가 중복되어 확인되었다. 2-5지점 전체를 둘러싸고 있으며,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긴 표주박형에 가까운 형태로 지형의 굴곡에 맞추어 중간 부분이 잘록한 형태를 띤다. 외곽 둘레는 일부 끊어지거나 삭평되어 유실된 부분까지 연결할 경우 약 660m이며 환호 내부 공간의 면적은 약 22,740㎡이다. 환호의 단면은 ‘U’자 모양이며, 깊이는 0.2~1.5m 내외이다. 너비는 0.8~8m 내외로 확인되는데, 특히 북서쪽 사면부의 경우 원지형인 계곡부를 좀 더 넓고 깊게 굴착하였다. 2호 환호는 그 규모나 집자리와의 배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방어나 경계의 기능을 한 것임이 확실하다. 유물은 환호 퇴적토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민무늬 토기 편,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편,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이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1-4지점에서 1기, 2-3지점에서 5기, 2-4지점에서 12기, 2-5지점에서 72기로 총 90기가 조사되었는데, 대부분이 2-5지점 1호와 2호 환호 사이의 동쪽과 남쪽 구릉부에 조성되었다. 이 중 잔존 상태가 양호한 것을 대상으로 평면 형태와 규모, 내부 시설 등을 살펴보면 세장방형은 총 13기(2-3지점 3·5호, 2-4지점 1·12호, 2-5지점 1·40·43·47·49·50·59·63·72호)이며 길이 9m 이상, 너비 3~4.5m에 해당한다. 면적은 2-5지점 1호가 약 60㎡로 가장 크며, 그 외는 30~60㎡ 내외이다. 장방형은 총 46기로 길이 4.5~10m, 너비 2.5~5.5m, 면적 14~47㎡의 비교적 중대형(16기)과 길이 3~6.5m, 너비 1.5~4m, 면적 4~15㎡의 소형(30기)이 있다. 방형은 19기(2-4지점 11호, 2-5지점 5·6·8·12·13·18·20·23·24·30·33·37·46·51·56~58·61호)이며 길이 2~5m, 너비 2~3.5m, 면적 3~14㎡로 모두 소형이다. 이 중 2-5지점 57호가 13.92㎡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등이 있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無施設式)과 구덩식(竪穴式)이 있으며, 집자리 중앙 축 선상에 1열로 1~6기까지 확인되는데, 규모가 클수록 화덕 자리의 수도 증가한다. 저장 구덩이는 집자리의 모서리 안쪽이나 긴 벽, 혹은 짧은 벽 쪽에 집중되어 확인되는데, 규모가 큰 집자리는 벽가 쪽에, 작은 집자리는 모서리쪽에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 평면 형태는 원형, 단면은 ‘U’형이며, 2-5지점 56호에서는 벽면과 바닥면에 목탄을 깔았다. 기둥 구멍은 집자리 긴 벽과 짧은 벽에 인접하여 설치되거나, 긴축의 중앙 축 선상에서 확인되는데, 대부분 배치의 정형성은 관찰되지 않는다. 다만,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4주식, 6주식, 8주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배치 양상이 확인된다. 벽 도랑은 통상 제습이나 벽체 시설의 기능으로 보고 있는데, 주로 경사면 높은 쪽 벽체 안쪽에서 확인된다.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굽다리 토기(臺附土器)가 다수이며, 간 토기(磨硏土器)도 출토된다. 아가리 주변의 문양으로는 민무늬, 겹아가리(二重口緣), 구멍무늬(孔列文), 골아가리(口脣刻目), 골아가리 구멍무늬, 골아가리 구멍 짧은 빗금무늬(口脣刻目孔列短斜線文),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 구멍무늬(二重口緣短斜線口脣刻目孔列文)가 있다. 석기류 중 간 돌검은 홈 자루식(二段柄式)·통자루식(一段柄式)·슴베식(有莖式)이 있고, 간 돌살촉은 다양한 형태가 확인된다. 그 외 조개날(蛤刃)·대팻날(扁平片刃) 형태의 돌도끼(石斧)와 돌끌(石鑿), 반달돌칼 등 시간성을 대표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2-5지점 남동쪽 구릉 하단부에서 약 3~4m의 거리를 두고 3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모두 말각 장방형이며 긴축은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하였다. 무덤 구덩이의 규모는 길이 1.42~1.86m, 너비 0.6~1.1m, 깊이 0.09~0.38m이고 1호 돌널은 길이 0.6m, 너비 0.32m, 깊이 0.44m이며 2호 돌널은 길이 0.35m, 너비 0.19m, 깊이 0.26m로 소형이다. 3호는 지형 삭평으로 인해 뚜껑돌(蓋石)이 유실된 상태로 조사되었다. 3기 모두에서 불에 의해 붉게 소결된 흔적과 목탄, 그리고 사람 뼈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1호에서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이 2호에서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이 1점씩 출토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는 집자리 바닥면과 화덕 자리의 목탄, 그리고 돌널무덤에서 수습된 목탄과 사람 뼈 시료로 측정하였다. 측정 결과, 2-3지점 3호 집자리 256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780년-바닥)·267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20-화덕), 5호 집자리 267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20년-바닥)·273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70년-바닥)·272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70년-화덕), 2-5지점 43호 집자리 274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896-바닥), 61호 집자리 283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998년-바닥), 1호 돌널무덤 243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510년-목탄)·249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640년-사람 뼈), 2호 돌널무덤 245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540년-목탄)·247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660년-사람 뼈), 3호 돌널무덤 242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482년-목탄)·247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660년-사람 뼈)로 측정되었다.
용이동 유적 환호 마을은 의례, 방어, 경계, 주거가 결합된 구조이며 집자리의 입지 및 형식, 중복 관계, 자연 과학 분석(AMS 연대 측정), 출토 유물 양상 등을 검토해 볼 때,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 형성된 대규모의 환호 마을이 송국리 문화 단계까지 지속된 유적으로 안성천 일대 청동기 시대 문화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