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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리 유적(高敞 三仁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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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리 유적(高敞 三仁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고창 삼인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394-28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송국리식 집자리, 고인돌, 민무늬 토기, 반달돌칼, 돌살촉, 홈자귀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



설명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394-28 일원에 위치한다. 고창 선운산 생태숲 조성 사업에 앞서 2004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선운산에서 발원하여 인천강으로 흐르는 소하천을 따라 형성된 해발 20m 내외의 평탄대지 상에 위치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 10기와 함께 삼국 시대 이후의 도랑(溝)이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유적에서 남동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11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 생활 공간과 무덤 공간이 결합된 유적으로 판단된다. 집자리는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2기(6·7호)가 중복된 것을 제외하면 동서 방향으로 일정한 간격을 보이며 분포한다.

집자리는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양쪽으로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 집자리다. 평면 형태는 방형 2기(5·6호), 원형 8기로 대부분 원형이다. 평면 형태와 축조된 위치를 통해 집자리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원형인 7호가 방형인 6호를 파괴하고 축조되었다. 또한 방형 5호와 원형에 가까운 말각 방형인 2호의 선후 관계가 확인되어 방형에서 원형으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의 규모와 전체 분포 양상을 살펴보면 대형 3기, 중형 4기, 소형 2기가 각각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유적 내 동쪽 구역에 일렬로 축조된 1호와 2호는 15m 정도 떨어져 있고, 유적 내 집자리들에 비해 비교적 큰 편인 중형 집자리에 속한다. 남서쪽 구역에 분포하는 대형인 6·8·10호는 동서 방향으로 일정 간격을 두고 열상을 이루고 있다. 8호와 10호는 소형의 9호를 사이에 두고 분포한다. 유적 내 서쪽 구역에 위치한 중형의 4·5호는 13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동서 방향으로 일렬로 배치된다. 특히 10호는 다른 집자리보다 면적이 넓은 25㎡로 벽 쪽의 바닥면에 작은 기둥 구멍들이 둘러져 있어 가구 구조가 다른 집자리와 차이가 있으며 다양하고 많은 출토 유물이 확인되어 그 성격과 기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5호 집자리는 세 벽에서 도랑(溝)이 확인되었는데 이들 도랑은 가운데 타원형 구덩이와 연결되어 있어 타원형 구덩이로 물을 모으는 도랑 시설(集水溝)일 가능성이 있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과 돌끌(石鑿), 반달 돌칼, 삼각 돌칼, 돌도끼(石斧), 홈자귀(有溝石斧), 돌살촉(石鏃),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가락바퀴, 갈판(碾石) 등 석기류가 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대형인 8호와 10호에서 농경과 관련된 석제품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10호에서는 지름 40cm인 대형의 갈판과 다양한 기종의 토기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벌채용 석기와 나무를 가공하는 석기의 비중이 높은 점 등의 특징으로 볼 때, 농경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인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으로 인접한 곳에 고인돌군이 위치하여 송국리 문화 집단과 고창 고인돌 축조 집단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