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봉리 유적(羅州 萬峰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나주 만봉리 유적, 만봉리 용반 고인돌A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만봉리 44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탁자식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돌살촉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조진선 |
설명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만봉리 442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 만봉 지구 농업용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 지구에 포함되어 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구로는 고인돌과 집자리,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만봉리는 만봉천 유역에 형성된 좁고 긴 곡간 평지에 자리하고 있어서 주변으로는 해발 100~300m의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발굴 조사는 5개 구역으로 나누어 실시되었으며 청동기 시대 유구는 Ⅱ·Ⅲ·Ⅳ구역에서 조사되었다.
Ⅱ구역은 덕용산(해발 376m)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구릉 말단부로 해발 58~59m의 곡간지에 해당한다. 만봉리 용반 고인돌 A군이 자리하는데, 만봉 저수지 안에 있어서 저수지 수위에 따라 물에 잠기기도 하고 노출되기도 하였다. 고인돌 9기가 남북 2열로 배치되어 있다. 고인돌은 외형상 탁자식(卓子式)과 바둑판식(碁盤式)으로 나누어지며, 매장 시설은 지상 돌널형(石棺形), 돌덧널형(石槨形), 돌 두름형(圍石形)으로 구분된다. Ⅲ구역은 용반골 말단부로 해발 62.5~64m의 곡간지에 해당한다. 만봉리 용반 고인돌 B군이 자리하는데, 고인돌 11기가 조사되었다. 덮개돌(上石)과 매장 시설이 함께 확인된 고인돌은 3기뿐이고, 나머지는 받침돌(支石)과 묘역 시설만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외형상 바둑판식에 속하며, 하부 구조는 돌 두름형(圍石形)이다. 1~7호 고인돌은 3호 고인돌을 둘러싸듯이 군집되어 있고 나머지는 독립되어 분포한다. Ⅳ구역은 용반골 서쪽 말단부로 해발 60~61m에 해당하며 집자리 1기와 구덩이 2기가 조사되었다.
따라서 고인돌은 Ⅱ구역에서 9기, Ⅲ구역에서 11기가 조사되어 총 20기가 확인되었다. 모두 세장한 곡간 평지에 자리한다. Ⅱ구역에서 눈에 띄는 고인돌은 탁자식인 5호이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바둑판식이다. 매장 시설은 돌덧널형과 돌 두름형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3기씩이다. 돌 두름형은 4~6매의 받침돌 위에 덮개돌을 올려 놓았을 뿐 다른 시설들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도 출토되지 않았다. Ⅲ구역의 고인돌들은 외형상 바둑판식에 속하며, 하부 구조는 돌 두름형으로 6~8매 정도의 받침돌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았다. 묘역 시설은 부분적으로 유실되기는 했지만, 평면 형태는 방형, 타원형, 원형을 띠고 있다. 민무늬 토기와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만봉리 고인돌은 외형상 탁자식과 바둑판식으로 구별되며, 하부 시설은 지상 돌널형, 돌덧널형, 돌 두름형으로 구분된다. 탁자식은 Ⅱ구역 5호 고인돌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바둑판식이다. Ⅱ구역에는 탁자식의 지상 돌널형과 바둑판식의 돌널형·돌 두름형이 공존하지만 Ⅲ구역에는 바둑판식의 돌 두름형만 있다. 바둑판식의 돌 두름형을 보면, Ⅱ구역에서는 4~6매의 받침돌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았으며, Ⅲ구역에서는 6~8매의 받침돌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Ⅱ구역의 돌 두름형 고인돌에서는 묘역 시설이 확인되지 않지만 Ⅲ구역에서는 확인된다. 출토 유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명확하지는 않지만 여러 형식의 고인돌들이 공존하는 Ⅱ구역에서 단순한 형식만 있는 Ⅲ구역 순으로 축조되어간 것으로 생각된다. 출토 유물로는 돌도끼와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민무늬 토기 등이 있다.
집자리와 구덩이는 Ⅳ구역에서 조사되었다. 집자리 1기는 평면 형태가 원형이며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이다. 출토 유물로는 갈판 1점이 있다. 구덩이는 2기인데, 그중 1호 구덩이는 평면 원형이며, 민무늬 토기 항아리가 출토되었다. 바닥면 흙에서 탄화된 보리와 콩이 확인되어서 저장 시설로 추정된다.
만봉리 유적의 연대는 유물이 많지 않아 명확하지 않지만, 고인돌과 집자리 모두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