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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리 유적(密陽 琴川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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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리 유적(密陽 琴川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밀양 금천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 479-4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기둥 건물터, 구덩이, 함정, 돌더미, , 습지, 야외화덕 자리, 돌무지, 덧띠 토기 단계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고민정



설명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 479-4 일원에 위치한다. 대구-부산 간 고속 도로 건설에 앞서 2001~2003년 3차례 조사하여, 집자리 9기, 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9기, 구덩이함정 5기, 돌더미(集石) 6기, , 밭, 저습지 등과 신석기 시대의 집자리, 야외화덕 자리(野外爐址), 돌무지(積石)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밀양강으로 유입되는 동천 범람원의 자연 제방 위에 입지한다. 자연 제방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2군데에 집자리가 밀집 분포하며, 남쪽 끝 부분은 집자리와 기둥 건물터가 위치한다. 자연 제방의 북쪽은 완만한 사면을 이루면서 배후습지로 이어지고 습지 사이에 논이 조성되어 있다.

집자리는 방형과 장방형으로 구분된다. 1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1.1m, 너비 8m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단(段) 시설이 확인되었다. 화덕은 납작한 강돌(川石)을 수직으로 세운 방형의 돌 두름식(圍石式)이다. 방형 집자리에서는 중앙부, 장방형에서는 중앙에서 한 쪽으로 치우쳐 설치되었다. l호는 화덕이 확인되지 않고 6호에는 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는데, 바닥은 점토로 다졌다. 1호는 벽면을 따라 벽 도랑(壁溝), 3·6·8호는 단 시설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너비가 넓은 겹아가리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孔列土器),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를 비롯하여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반달 돌칼, 간 돌살촉, 따비형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8호는 내부 벽면을 따라 불탄 판자벽 일부와 벽체가 확인되어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 건물터는 기둥 배열이 4×3칸, 3×3칸, 3×2칸 등으로 다양하다. 9호는 크고 작은 구덩이를 줄지어 파서 벽체를 세운 지상식의 건물로 벽체가 두터운 부분에는 2열의 기둥 구멍이 있으며 벽체의 너비는 0.8m이다. 내부의 중앙 좌우에도 서로 마주보는 2개의 기둥 구멍이 있는데, 이는 지붕을 받치기 위한 것이라 판단된다. 건물의 전체 크기는 길이 9.48m, 너비 5.25m다.

논은 모두 70면 이상이 조사되었는데, 단위 면적은 3~37㎡ 정도이며, 전체 면적은 762.6㎡이다. 논은 암갈색이며, 층 저면(底面)은 요철이 심한 편이다. 논면의 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정연하게 구획되었으나, 중앙부에서 동쪽으로는 형태가 정연하지 못하다. 논둑은 너비 0.15~0.2m, 높이 0.05m 내외이며 단면은 말각 사다리꼴이다. 논에서는 2가닥의 수로水路가 확인되었다. 수로는 경계둑과 나란하게 동서로 개설된 것과 논의 중앙부분을 동서 방향으로 관통한 것이 있다. 옛날에 하천이 흘렀던 방향이 동→서이므로 취수구는 수로가 습지와 만나는 동쪽 끝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논둑의 중간 부분에는 논에 물을 대는 물꼬가 12곳에서 확인되며 그 자리에는 물막이용 돌이 세워져 있다. 논에서는 그물추 2점이 출토되었다. 밭은 유적의 동쪽 트렌치 토층 조사에서 확인되었고, 평면 조사에서는 그 흔적이 명확하지 않아 분포 범위만 알 수 있다.

조사 범위의 북쪽에는 습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이 습지는 본래 하천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습지로 변하였다. 습지 내부는 완전히 토탄화(土炭化) 되어 많은 유기물이 포함되어 있다. 습지에서 확인되는 유물은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단계와 삼국 시대 초기로 구분된다. 덧띠 토기 단계는 유구는 확인되지 않고, 대형 통나무 주변에서 덧띠 토기와 대형 토기의 바닥 편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삼국 시대는 보 시설과 호안 시설 등의 관개 시설이 확인되었다. 습지에서는 다양한 나무와 풀, 곤충의 껍질, 씨앗 등 많은 유기물이 출토되었다. 나무 가운데에는 가공된 것과 자연 상태의 것도 다수 확인되며, 출토 목재는 수종분석 결과 상수리나무류, 오리나무류, 팽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이다.

유적은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까지 덧띠 토기 단계에 걸쳐 수리 체계를 갖춘 농경 생활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정주한 마을 유적으로, 충적지와 주변 지형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연 제방의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는 집자리와 창고를 배치하고 낮은 곳은 밭으로, 하천 가까이는 논으로 이용하였다. 논과 수로, 보 시설 등은 청동기 시대 수리 관계를 통해 당시 농경 형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