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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아시아의 구석기 문화(西南아시아의 舊石器文化)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05:25 판 (dkamaster 700-0201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서남아시아의 구석기 문화(西南아시아의 舊石器文化)
기본 정보
시대 구석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조지아 드마니시 유적
키워드 아슐리안, 올도완, 르발루아 기법, 무스테리안, 오리냐시안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3
집필자 배기동



설명

서남아시아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세 대륙이 만나는 곳으로서 다양한 환경이 교차하며 기후 변동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아 온 지역이다. 이곳은 또 유라시아 대륙의 입구로서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고인류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지나가는 곳인데, 아직 어느 고인류가 언제 처음 이곳을 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 이곳의 동쪽에 있는 코카서스(Caucasus) 산맥 남록의 조지아 드마니시 유적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연대가 확실한 가장 이른 시기의 고인류 화석이 발견된 곳이다. 이 유적이 말해 주듯, 고인류는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우베이디야(Ubeidiya) 유적에 아슐리안 석기 공작이 남겨지기 이전에 이미 이 지역을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레반트(Levant) 지역과 요르단 계곡 일대에서는 조사가 많이 진행되었지만, 그 동쪽의 사막 지대나 산악 지대는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다. 서남아시아는 현생 인류뿐 아니라 초기 호모가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산하는 경로에서 출발점에 자리한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드마니시 유적은 초기 인류의 확산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그 연대가 비교적 정확히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동물 화석과 함께 발견된 고인류 화석은 완전한 머리뼈 4점과 턱뼈 3점 및 다리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화석들은 연대가 확실한 자료 중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연대 측정 결과 2백만 년 전보다 약간 뒤 시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류 화석은 머리뼈나 다리뼈 등이 오래된 호모의 특징을 갖고 있다. 고인류의 분류와 관련해, 호모 에르가스테르라는 주장과 가장 이른 시기의 호모 에렉투스라는 주장 그리고 새로운 종으로서 호모 조지쿠스라고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현생 인류의 확산 과정에서도 이 지역은 그 출발선이 된다. 또한 그 복합적인 양상은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현생 인류 등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단서들이 발견된 곳이 바로 이스라엘 카르멜(Carmel)산의 유적들이다. 이 산에는 타분 동굴이나 한동안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의 흔적으로 생각하였던 스쿨 동굴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최근에 이곳의 다른 동굴에서 이보다도 훨씬 오래된 현생 인류가 발견되었다. 스쿨 동굴과 카프제 동굴에서 발굴된 현생 인류들은 후기 갱신세의 초기 단계에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확산한 집단으로 생각된다. 한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들은 레반트 지역의 타분 동굴, 케바라 동굴, 아무드(Amud) 동굴 등의 유적뿐 아니라 유럽이나 중앙아시아에도 연속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후기 구석기의 주인공인 현생 인류에게 밀려 사라지게 된다.

드마니시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는 다양한 석재를 이용하여 단순하게 제작된 몸돌격지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동아프리카의 올도완보다 더 소박한 양상을 보이므로, 올도완보다 오래 전의 형식이라는 뜻에서 ‘올도완 이전 공작’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에브론(Evron)이나 에르크 엘 아흐마르(Erk el Ahmar) 유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시기는 2백만 년 전 무렵으로, 고인류가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산하기 이전의 시기를 포함한다.

이 지역에서 아슐리안 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우베이디야 유적은 요르단강 서쪽에 있다. 이는 해발 160m보다 낮은 지점에 있는 호소층 속에서 발견되었다. 절대 연대는 없지만 화석의 비교를 통해 그 연대가 140만 년 전으로 확인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석기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올두바이 유적 제2층군 내에서 알려진 석기 공작인 ‘발전형 올도완 석기 공작’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핵으로 만든 찍개, 여러 면 석기, 구형 석기나 대형의 긁개 등이 약간의 주먹 도끼와 함께 발견되었다. 이러한 석기 공작의 구성 역시 고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레반트 지역이라는 통로를 지나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하였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극적인 아슐리안 유적은 요르단 국경에 가까운 지점에 있는 약 70만 년 전의 게셔 베노트 야코프(Gesher Benot Ya'aqov) 유적으로, 옛 요르단강의 습지에 있다. 여기에서는 아슐리안 석기와 함께 코끼리의 머리뼈를 포함한 많은 동물 뼈와 식물 화석이 발견되는 등 고인류가 살았던 생활면이 고스란히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가장 잘 보존된 구석기 시대 유적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수의 아슐리안 주먹 도끼가 실제로 그것이 사용되었던 현장에서 수습되었다. 그중에는 아프리카의 콤베와(Kombewa)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아슐리안 유적은 근동 지역에 널리 분포하며 튀르키예 지역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아슐리안 석기 공작은 중기 갱신세의 후반까지 계속 나타난다. 타분 동굴의 최하층에서는 일종의 주먹 도끼 공작인 타야시안(Tayacian)이 아슐리안과 함께 발견되었다. 그 연대는 적어도 30만 년 전 이전으로 40만 년 전이 넘는 연대 측정치도 있다. 그 뒤를 이어 아슐리안 주먹 도끼가 보이지만 르발루아 기법은 없는 야브루디안(Yabrudian) 석기 공작이 나타났으며, 이후 무스테리안 석기 공작이 이어진다. 야브루디안 석기 공작은 대형의 돌날 석기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의 흔적으로 지적되기도 하는데, 그 연대가 30만 년에서 20만 년 전 사이로 압축된다. 이는 하부의 아슐리안과 상부의 무스테리안 사이에서 다른 것과 섞이지 않고 나타나기 때문에 독립적인 문화 단계로 인식된다. 한편 야브루디안과 아무디안(Amudian), 선오리냐시안(Early Aurignacian) 석기 공작은 각기 석기의 구성이 다르다. 이러한 석기 공작의 성격을 두고 기후 환경의 차이나 유적 기능의 차이 또는 제작자의 문화 차이 등의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는 과거 유럽 구석기를 둘러싼 소위 무스테리안 논쟁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석기 공작들은 레반트 지역에서 시리아 지역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다. 무스테리안은 타분 동굴에서 25만 년 전부터 르발루아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이와 유사한 석기 공작이 시리아나 요르단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도 계속 확인된다. 레반트 지역의 무스테리안 공작은 여러 르발루아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보여 주지만, 자그로스(Zagros)산맥 지역에서는 무스테리안 공작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서쪽의 튀르키예 지역에서도 나타나며, 카라인(Karain) 동굴 등의 유적에서도 무스테리안이 확인되지 않는다. 후기 갱신세가 되면 아라비아반도와 그 부근 지역은 습윤한 기후 조건으로 초원 지대가 만들어져 인간의 거주가 가능해졌다. 그 결과, 동쪽으로 인류가 확산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아라비아반도의 동쪽인 아랍 에미리트 지역의 제벨 파야(Jebel Faya) 유적에서 발견되는 중기 구석기 유물은 현생 인류 확산의 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런데 레반트 지역의 무스테리안 유적이나 멀리 중앙아시아의 테식타시(Teshik-Tash) 유적에서 무스테리안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나 현대인에 가까운 고인류 화석과 함께 발견되었다. 과거에 현생 인류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 있었다거나 관계가 없는 독립된 종으로서 존속했다면 이러한 양상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두 집단 사이의 유전자 교류가 중근동 지역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으므로 이러한 고인류 화석과 석기 공작의 양상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고인류의 특성이나 석기 공작의 혼합적 양상에서 고고학적 증거는 아슐리안 이후, 즉 25만 년 전 이후 일종의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 준다.

무스테리안에서 후기 구석기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것은 이스라엘의 보커 타히팃(Boker Tachtit) 유적이다. 이 유적은 4만 7천 년 전 형성되었다고 여겨지며, 도입기 후기 구석기(Initial Upper Palaeolithic, IUP) 층의 연대는 3만 5천 년 전으로 측정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후기 구석기 문화가 대체로 4만 5천 년 전 무렵 시작한다. 가장 초기의 문화는 아마리안(Ahmarian) 문화로, 유럽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문화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후 오리냐시안 문화의 특징을 가진 단계가 나타나며, 아마도 이것이 유럽에 영향을 주어 유럽의 오리냐시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후기 구석기 시대가 되면서 돌날 석기 공작 이외에 뼈 연모와 다양한 장신구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