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新石器時代土器文化)
설명
한반도 신석기 시대의 토기 문화는 일제 강점기에 서울 암사동 유적,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등 각지의 신석기 시대 유적이 알려지면서 처음 주목받게 되었다. 암사동식 토기로 대표되는 뾰족 바닥 토기는 독특한 모양새나 눌러 찍거나 그어서 새긴 기하학적 무늬 때문에 북유럽의 캄케라믹(Kammkeramik) 토기 문화가 확산한 결과로 해석되었고, 그 결과 일본 학자 후지타(藤田亮策)는 뾰족 바닥 토기를 캄케라믹의 번역어인 ‘즐목문토기(櫛目文土器)’로 명명하였다. 해방 후 한국 연구자들은 즐문토기(櫛文土器)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였고, 지금은 한글 번역어인 ‘빗살무늬 토기’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토기의 형태와 무늬를 기준으로 크게 몇 개의 지역군(群)으로 나눌 수 있다. 압록강 유역 중심의 서북 지역, 두만강 유역 중심의 동북 지역, 청천강 이남부터 대동강과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서부 지역, 강원 영동 중심의 중동부 지역, 충청·전라·경상도 내륙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 내륙 지역, 남해안과 제주도를 포함하는 남해안 지역이 그것이다. 서북과 동북 지역의 토기는 시종일관 바닥이 편평한 형태를 유지하지만, 중서부 이남은 전기나 중기에 뾰족 바닥이나 둥근 바닥 토기로 바뀌고 이것이 신석기 시대 종말기까지 유지된다.
신석기 시대는 9,600년 전부터 3,500년 전까지 약 6,000여 년의 시간을 아우르며, 이를 초창기, 조기, 전기, 중기, 후기, 만기의 6단계로 구분한다. 크게 나누면 민무늬 토기를 중심으로 한 초창기, 덧무늬[隆起文]나 눌러찍은 무늬[押捺文] 등이 주로 나타나는 조기와 전기, 새김 줄무늬[沈線文]가 주로 쓰이는 중기, 무늬의 퇴화와 민무늬화가 특징적인 후기와 만기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초창기의 유적은 현재 제주도에서만 확인된다. 처음 발견된 고산리 유적을 필두로 김녕리 유적과 강정동 유적 등이 제주 전역의 해안 지대와 중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초창기 토기는 점토에 초본 식물을 섞어 만들었는데, 대부분 민무늬며 안팎에 초본 식물이 찍힌 흔적이 어지러이 남아 있다. 대표 유적의 이름을 따 ‘고산리식 토기’로 부른다. 편평한 바닥에 몸체는 곧게 뻗은 매우 단순한 바리 모양의 작은 토기가 대부분이고, 목이 달린 단지 모양 토기는 보이지 않는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지(之)’자무늬나 집선무늬 등의 눌러찍은 무늬도 확인된다.
초본 식물이나 동물의 털을 점토에 혼입해 토기를 제작하는 것은 러시아 아무르강 중하류역이나 중국 동북 지역과 남부 지역, 일본 열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초기 토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아직 제주도를 제외하면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러한 토기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후기 구석기 시대 말기의 유적에서 신석기 시대 초창기의 석기와 유사한 양면 가공 돌창이나 돌살촉 등이 확인되고 있어 향후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서북 지역은 기본적으로 압록강 너머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일대와 유사하다. 서북 지역의 토기 문화는 편평한 바닥 토기 전통에 속하는데 크게 4기로 나뉜다. 1기는 신석기 시대 조기 후반부터 전기에 해당하는 ‘지(之)’자무늬 토기 단계로, 의주 미송리 유적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지(之)’자무늬 토기는 중국 동북 지역의 랴오닝과 지린(吉林) 남부 일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지(之)’자 모양으로 눌러찍은 무늬가 시문되어 있다. 한반도 서북 지역은 ‘지(之)’자무늬 토기 문화의 최남단에 해당한다. 압록강 너머에서는 중국 랴오닝성 허우와(後窪) 유적 하층에서 양호한 자료가 확인된다.
2기는 신석기 시대 중기로 새김 줄무늬 토기 단계이다. 중기 전반에는 1기와 전혀 다르게 몸통에 가로선을 폭넓게 새기고 그 아래 찌른 무늬[刺突文]를 배치한다. 허우와 유적 상층이나 랴오중(遼中) 지역의 마청쯔(馬城子) 유적 등에서 유사한 자료가 확인된다. 중기 후반 역시 새김 줄무늬 토기 단계이나, 생선뼈무늬[魚骨文]가 중심이 된다. 의주 미송리 유적, 정주 당산 유적 하층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이 단계는 대체로 랴오둥 반도의 우자춘(吳家村) 유적 시기에 병행한다.
3기는 후기로, 토기에 덧무늬를 가로나 세로로 시문하고 그 사이에 새김 줄무늬를 섞었는데, 랴오중 지역의 폔바오(偏堡) 문화 토기 계통이다. 아가리를 두 겹으로 만든 겹아가리 토기가 유행한다. 정주 당산 유적 상층이 대표적인 유적이지만, 당산 유적 상층을 청동기 시대로 분류하는 시각도 있다. 4기는 만기로 긴 목이 달린 단지 모양 토기에 번개무늬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하학무늬를 시문한다. 바리 토기는 대체로 무늬가 사라진다. 바탕흙[胎土]에 흑연이 포함된다. 의주 신암리 유적 1기가 대표적인 유적이다.
한반도 동북 지역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선사 시대 유적 조사가 이루어졌다. 동북 지역 토기 문화의 실상이 잘 알려진 것은 두만강 하구(河口)의 나선 서포항 유적을 발굴하면서부터이다. 동북 지역도 시종일관 편평한 바닥 토기 전통을 유지하며, 시기는 서포항 유적을 기준으로 크게 5단계로 나눈다. 1기는 신석기 시대 조기로, 토기는 아가리와 몸통을 중심으로 눌러찍은 무늬를 시문한다. 두만강 너머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조사 성과를 참고하면 동북 지역의 조기는 연해주 보이스만 문화와 성격이 동일하다. 2기는 신석기 시대 전기로 1기와 달리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진 토기나 찍거나 새긴 생선뼈무늬 등이 등장한다. 연해주 한시(Ханси) 문화, 중국 야부리(亞布力) 문화와 유사하다. 3기는 신석기 시대 중기로 가로 생선뼈무늬나 빗금무늬[斜線文]를 중심으로 하는 본격적인 새김 줄무늬 토기가 유행하고 단지 모양 토기와 곡선적인 타래무늬가 등장한다. 연해주의 자이사놉카(Зайсановка)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4기는 신석기 시대 후기로, 3기의 전통이 유지되는 가운데 찌른 무늬와 새김 줄무늬가 복합되며, 특히 번개무늬 토기가 유행한다. 번개무늬 토기는 서북 지역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중요한 토기로 연해주 남부 자이사놉카 문화 단계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이 단계에는 기종도 분화하여 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나 사발 모양 토기에 굽이 달린 형태가 유행한다. 5기는 신석기 시대 만기로, 토기의 무늬가 거의 사라지고 번개무늬도 간략화하며 토기 입술 부분을 도구로 누른 골아가리 토기가 등장한다. 이전 단계와는 차이가 크고 청동기 시대 토기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인다.
한반도 중서부 지역은 뾰족 바닥의 빗살무늬 토기가 처음 등장하여 유행이 시작된 곳이다. 대동강과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며, 북한에서는 중서부 지역의 신석기 문화를 ‘궁산 문화’로 부른다. 토기 문화는 크게 4기로 구분된다. 1기는 신석기 시대 전기로, 뾰족 바닥에 전체인 형태가 포탄 모양인 토기가 유행한다. 아가리와 몸통, 바닥에 각각 다른 무늬를 표현하는 구분계 시문 방식은 이 단계에 출현하여 2기까지 유행하며 중서부 이남 각지로 확산된다. 아가리의 무늬는 점열무늬나 짧은 빗금무늬, 손톱무늬 등 눌러찍은 무늬가 중심이며 몸통에는 주로 세로 생선뼈무늬나 가로 생선뼈무늬를 새긴다. 바닥에는 짧은 빗금무늬나 가로 생선뼈무늬, 방사상무늬 등이 시문된다. 대표적인 유적은 황해도 봉산 지탑리 유적(1지구)이다.
2기 역시 전기에 속하는데, 1기와 토기 형태는 큰 차이가 없지만 곡선적인 점열 타래무늬나 반겹고리무늬 등이 유행한다. 아가리와 몸통 사이에는 부가 무늬나 어깨 무늬라고 불리는 문양대(文樣帶)가 추가된다. 몸통에는 세로 생선뼈무늬는 감소하고 가로 생선뼈무늬가 점차 증가한다. 봉산 지탑리 유적 2지구, 봉산 마산리 유적, 연천 삼거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3기는 신석기 시대 중기로 금탄리 Ⅰ식 토기로 불리는 토기가 유행한다. 두 종류의 무늬가 위아래로 번갈아가며 시문되는데, 가로 줄무늬나 삼각 집선무늬가 많이 쓰인다. 토기 형태도 점차 둥근 바닥에 몸통이 부풀어 배가 부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금탄리 1식 토기는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유행한다. 한강 유역에서는 여전히 구분계 시문 토기가 중심을 이루는데 특히 끝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무늬 새기개로 몸통에 스치듯이 얕게 시문한 가로 생선뼈무늬가 유행한다. 이 무늬는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서해안까지 분포하는 지역성이 강한 무늬이며 서울 암사동 유적이나 하남 미사리 유적, 시흥 능곡동 유적 등에서 다량 확인된다.
4기는 신석기 시대 후만기로 중서부 지역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며, 이 시기의 토기는 ‘금탄리 2식 토기’, ‘시도식 토기’ 등으로 불린다. 민무늬화가 현저히 진행되며 아가리가 바깥으로 벌어지거나 몸통이 부푸는 등 형태 변화도 뚜렷하다. 중부 서해안 일대에서는 몸통 윗부분까지만 무늬를 시문하는 토기가 유행하는 반면, 대동강 유역에서는 토기 전체에 가로 생선뼈무늬를 가득 새긴 토기가 유행한다. 북한 학자들은 평양 남경 유적 발굴을 계기로 이 단계를 중기의 특징이 잔존하는 4기와 민무늬화가 현저하며 금탄리 Ⅱ식 토기가 주로 쓰인 5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중서부 지역에는 전기 후반이 되어서야 뾰족 바닥 토기가 등장하며 그 이전의 토기 문화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한반도 중동부 지역은 납작 바닥과 뾰족 바닥 토기가 시기를 달리하여 나타나는데 크게 5기로 구분된다. 신석기 시대 조기에는 편평한 바닥을 가진 덧무늬 토기와 눌러찍은 무늬 토기(오산리식 토기)가 중심을 이룬다. 양양 오산리 유적과 고성 문암리 유적 등에서 그 양상이 확인되었다. 덧무늬 토기는 남해안 지역과 비슷하지만, 오산리식 토기는 토기 형태와 무늬가 연해주 등 북쪽 지역과 관련이 깊다. 오산리식 토기는 아가리 부위에 다양하게 눌러찍은 무늬를 시문한 토기로, 바닥에 비해 아가리가 크게 벌어진다. 오산리 유적 최하층이나 문암리 유적 하층에서부터 확인되는 오산리식 토기는 덧무늬 토기보다 먼저 출현하여 덧무늬 토기와 일정 기간 공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울진 죽변리 유적에서 확인된 토기는 덧무늬 토기나 오산리식 토기와는 달라 ‘죽변리식 토기’로 명명되었다. 붉은 칠[朱漆] 토기가 다량 발견되었으며, 콩알무늬[豆粒文] 토기가 유행했다. 그릇 형태도 바리 토기 이외에 아가리가 오므라들거나 꺾인 독 모양 토기가 유행하였다.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시대 전기 단계에 해당하는 토기는 불분명하다. 원래 오산리식 토기가 전기 토기로 평가되어 왔으나, 유적 조사에서 조기 단계 토기임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오산리식 토기가 전기까지 지속되는지도 불분명하다. 신석기 시대 중기에는 뾰족 바닥인 빗살무늬 토기가 출현했다. 처음에는 한반도 중서부 지역과 유사하지만, 중기 후반에는 남해안 지역과 비슷하게 변화한다. 세로 생선뼈무늬가 압축되어 몸통 윗부분의 어깨에 시문되거나 강상리 유형으로 불리는 점열무늬 계통의 토기가 함께 출토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양양 지경리 유적과 강릉 초당동 유적 등에서 확인되었다. 신석기 시대 후·만기는 새김 줄무늬가 퇴화하고 민무늬화가 진행되는 등 기본적으로 남해안 지역과 변화의 흐름이 유사하다. 고성 철통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이 단계 집자리가 조사되었는데, 토기는 새김 줄무늬를 중심으로 하는 중서부 지역의 후기 단계와 유사한 양상을 보여 중동부 지역에서는 후기 이후에도 여전히 중서부와 남부 지역 계통 토기가 함께 존재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반도 남해안 지역은 시기별로 특징적인 토기 문화가 발달하는데, 제주도를 포함해 크게 6기로 구분한다. 신석기 시대 초창기에는 식물 줄기가 포함된 바탕흙으로 민무늬 토기를 만들었다. 고산리식 토기로 불리는 이 토기는 현재까지 제주도에서만 확인되며 편평한 바닥의 바리 모양을 기본으로 한다. 일부 토기에는 점열무늬가 찍혀 있기도 하다. 조기는 덧무늬 토기를 표지로 한다. 이 토기는 중동부 해안에서 남해안 사이에 분포하며 그 중심은 남해안이다. 편평한 바닥을 기본으로 하지만 소형 토기 등 일부에서는 둥근 바닥이 나타나기도 한다. 주로 몸통을 중심으로 덧무늬가 시문되며 형태에 따라 평행무늬와 기하학무늬로 구분된다. 무늬는 먼저 가로나 세로로 구획을 한 후 그 내부에 무늬를 채우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구획의 엄격성은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약해진다. 바리 토기와 단지 모양 토기가 모두 나타나며 붉은 안료를 바른 붉은 칠 토기도 유행한다.
신석기 시대 전기는 찌르거나 눌러서 긋는 방식으로 시문한 영선동식 토기가 유행한다. 둥근 바닥이 기본이며 무늬는 주로 몸통 윗부분에만 집중된다. 주로 가로 생선뼈무늬가 시문되며 그 외에 꼬집은 무늬[爪押文], 격자무늬, 톱니무늬 등이 단독으로 시문되거나 조합되어 시문된다. 영선동식 토기 후반에는 중서부 지역 계통의 짧은 빗금무늬 토기가 소량 나타난다. 바리 토기와 단지 모양 토기가 모두 발견되며, 목이 긴 단지 모양 토기가 특징적이다.
신석기 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토기는 수가리 Ⅰ식 토기이다. 아가리와 몸통, 바닥에 서로 다른 무늬를 시문하는 구분계 시문 방식이 특징적이다. 새김 줄무늬가 매우 굵어 이 단계의 토기는 굵은 새김 줄무늬[太線沈線文] 토기로 불리기도 한다. 토기 벽이 아가리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비후(肥厚) 구연도 이 단계의 특징이다. 수가리 Ⅰ식 토기는 중서부 지역 계통의 구분계 짧은 빗금무늬 토기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아가리에 삼각, 마름모, 사다리꼴의 집선무늬 계통이 주로 시문되었으며 몸통에 가로 생선뼈무늬 이외의 무늬가 쓰이지 않는 점 등 중서부 지역과는 다른 지역적 특징도 강하게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대형 토기의 비율이 증가하고 유물의 양 역시 급증하여 유적 규모가 커진다. 바리 토기와 함께 고리 형태의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가 유행한다.
신석기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토기는 수가리 Ⅱ식 토기이다. 기본적으로 몸통에서는 무늬가 많이 사라지고 아가리에만 단독으로 시문된다. 무늬의 정연성도 퇴화하고 새김 줄무늬도 가늘어진다. 비뚠 격자무늬나 삼각 집선무늬 등이 유행한다. 기종은 중기와 큰 차이가 없다.
신석기 시대 만기의 대표적 토기는 율리식 토기(겹아가리 토기)인데, 이제 무늬가 거의 사라져 아가리 근처에만 간단한 새김 줄무늬 위주의 빗금무늬 등이 남아 있거나 아예 민무늬화된다. 홑 아가리 토기 역시 유사한 변화상을 보인다. 만기 토기는 회색조의 어두운 색조이며, 사질계 바탕흙이 증가하는 등 앞 단계와 차이가 크다. 만기 토기는 남해안과 남부 내륙의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한다.
한반도 남부 내륙 지역은 기본적으로 남해안 지역과 토기 문화의 큰 흐름이 같다. 신석기 시대 이른 단계의 유적이 잘 확인되지 않아, 덧무늬 토기는 거창 임불리 유적, 청도 오진리 유적, 김천 송죽리 유적을 비롯한 극히 일부에서만 출토되며, 영선동식 토기 역시 김천 송죽리 유적과 경주 황성동 유적 등 일부에 국한되어 발견된다. 내륙 지역에 유적 점유가 본격화되는 신석기 중기 단계부터 수가리 Ⅰ식 토기가 등장한다. 내륙의 중기 토기에서는 서부 경남을 중심으로 번개무늬나 마름모무늬가 확인되는 등 해안 지역과 지역 차를 보이기도 한다. 신석기 시대 후기에는 주로 봉계리식 토기가 유행한다. 봉계리식 토기는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진 형태로, 몸통 윗부분에만 격자무늬를 비롯하여 깃털무늬, 점열무늬, 마름모무늬 등의 무늬를 주로 새김 방식으로 시문한다. 봉계리식 토기 단계 후반에 겹아가리 토기가 처음으로 출현하며, 만기의 주요한 형태가 된다.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큰 하천과 해안을 중심으로 크게 몇 개의 지역군으로 묶이며 시간에 따라 무늬와 형태, 기종 구성 등이 변화한다. 한반도에서의 변화는 중국 동북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 남부 지역을 포괄하는 넓은 지역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변화의 획기는 대략 신석기 시대 중기부터라 할 수 있는데, 새김 줄무늬 토기 문화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여 유행하는 시기이다. 새김 줄무늬 토기의 확산은 초기 농경을 포함하는 생업상의 변화와 함께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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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동삼동패총전시관. (2004). 신석기시대의 토기문화. https://www.riss.kr/link?id=M9787394
- 동삼동패총전시관. (2009). 한반도 신석기시대 지역문화론. https://www.riss.kr/link?id=M11692468
- 중앙문화재연구원. (2011). 한국 신석기문화 개론. 서경문화사. https://www.riss.kr/link?id=M12637098
- 중앙문화재연구원. (2014). 한국 신석기시대 토기와 편년. 진인진. https://www.riss.kr/link?id=M13617960
- 한국고고학회. (2010). 한국 고고학 강의(개정신판). 사회평론. https://www.riss.kr/link?id=M121849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