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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리크 문화의 미라(Пазырыкские мумии)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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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동의어 파지릭 문화의 미라, 파지리크 얼음 공주
시대 초기철기
지역 알타이 지역
관련 정보
유적 파지리크 고분군, 아크-알라하 고분, 베르흐-칼진 고분군
키워드 파지리크 문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 미라, 돌무지덧널무덤, 펠트제 모자, 실크제 옷, 발삼법, 송진, 밀랍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조소은



설명

파지리크 문화는 알타이 산지에서 부흥했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Скифо-сибирская культура)권 중 하나이다. 초기 철기 시대인 기원전 7~1세기에 해당한다.

파지리크 문화에서는 고분이 가장 표지적이며, 산악 고원 지대에 강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이 고원 분지 지역은 툰드라-초원 지대에 속하는 기후로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로 영하 45℃ 이하로 내려가 빙설로 덮여있다. 여름에도 0~10℃ 안팎으로, 기온이 크게 올라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기후적 특징으로 알타이 지역의 토양에는 영구 동토층(永久凍土層)이 형성되었다. 영구 동토층은 무덤 내부의 모든 유기물을 동결시켜 현재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파지리크 문화의 고분에서는 다수의 미라가 확인되었다. 알타이 지역에서는 파지리크 고분군, 아크-알라하 고분(Mогильник Ак-алаха), 베르흐-칼진 고분에서 나온 미라가 가장 활발히 조사·연구되었다.

파지리크 고분은 알타이 공화국의 탈레츠코예(Телецкое)호수에서 남동쪽으로 80㎞ 떨어진 울란(Улаган)강 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모두 5개의 고분군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2·5호분에서 미라가 확인되었다. 바르코바(Баркова Л.Л.)의 연구에 따르면 2호분의 미라는 피부와 머리에 송진(瀝靑)밀랍을 사용했는데, 이 송진은 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다마르(Dammar)와 셀라크(Shellac)나무의 송진으로 밝혀졌다. 이는 파지리크 고분의 묘주가 먼 곳에서 수송되어 온 물건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계층임을 알 수 있다. 미라의 뱃속은 양모와 잡초 뿌리류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처리법은 스키타이와 소아시아 쪽에서 확인된다. 5호분은 지름 약 42m의 삼중덧널(木槨)을 사용한 대형 고분이다. 5호에서 확인된 미라는 남성과 여성으로, 부족장과 그의 아내 혹은 샤먼으로 연구되고 있다. 두 미라들의 몸에는 여러 군데 절개한 흔적이 있는데, 시신에 방부 처리를 하기 위한 것이다. 또 남성 미라의 경우 피부를 절개하고 근육을 빼 내 가죽과 뼈만 남게 하였다. 절단하거나 꿰맨 흔적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베르흐-칼진 고분은 우코크(Укок)고원 북서쪽에 위치한 칼진강 상류의 동쪽 사면을 따라 분포하는 고분군이다. 이 고분에서는 2-2호, 2-3호 무덤에서 여성과 남성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2-2호 무덤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미라의 피부 조각 조금과 가발을 쓴 두개골만이 보존되어 자세한 양상을 알기는 어렵다. 2-3호는 중형급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으로 덧널의 바닥에는 펠트를 깔고 시신을 안치하였다. 2-3호에서 발견된 남자 미라는 어깨와 가슴에 다양한 크기의 사슴 문신을 하고 있고, 전신과 머리카락 등이 잘 보존되었다. 미라의 뱃속은 충전물이 없이 모피 코트를 입혔고 펠트로 만들어진 모자, 바지, 부츠 등이 입혀져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아크-알라하 고분군은 알타이 지역 우코크고원의 아크-알라하 계곡의 구릉 지대를 따라 조성되었다. 3-1호 고분에서 25세 정도의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규모는 직경 18m의 중대형 돌무지덧널무덤이고, 가죽 아플리케로 장식된 통나무 널을 사용하였다. 두개골은 구멍이 생겨 드러나 있었고, 가슴과 배는 갈라서 건초, 양모 등을 채웠다. 미라의 어깨부터 손까지 문신이 있고, 손가락 끝에는 양모로 된 끈이 감겨 있었다. 각종 장신구펠트제 모자를 쓰고 실크제 옷을 입었다.

이렇듯 미라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환경적인 요인이 크지만 미라의 보존 처리 기법, 즉 발삼법의 발달이 주목되었다. 파지리크인들은 기본적으로 시신을 완전히 건조시키고, 머리와 배를 갈라 뇌, 장기 등을 모두 제거하였다. 이후 두개골에는 말총, 양모, 식물 섬유질, 구근류 등을 뭉쳐 넣었고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 밀랍이 섞인 진흙을 바르고 물감 등을 발랐다. 파지리크의 미라는 허리 부분을 절개하여 장기를 처리한 반면 아크-알라하의 미라는 복부 아래쪽을 절개하여 처리했다. 비워진 복부와 흉부 골반부는 토탄(土炭), 잡초 등을 채워 넣었다. 가죽은 부패 방지를 위해 일종의 송진이나 밀랍 그리고 수은을 바른 사례도 있다. 고대에도 많은 시신 처리법이 있었지만 파지리크인들은 지정학적 특성상 긴 겨울을 지나 한시적인 여름에 장례를 지내야 했기에 고도로 발달된 미라 처리법을 강구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미라를 보존하게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