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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가미소네 유적(和泉 池上曽根遺跡)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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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동의어 이즈미 이케가미소네 유적, 화천 지상증근 유적
시대 청동기
국가 일본
소재지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이즈미시(和泉市) 이케가미정(池上町), 이즈미오쓰시(泉大津市) 소네정(曽根町) 일대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야요이 토기, 환호, 우물, 공방, 도랑무덤, 집자리, 굴립주 건물, 숫돌, 거푸집, 석기, 청동기, 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대환



설명

국가 사적.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이즈미시(和泉市) 이케가미정(池上町), 이즈미오쓰시(泉大津市) 소네정(曽根町) 일대에 위치한다. 야요이 시대를 대표하는 취락 유적이다. 1921년 야요이 토기가 채집되어 유적의 존재가 알려졌고, 1950년대 이후부터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중 1969년부터 1971년까지의 도로 건설에 따른 조사를 통해 이케가미소네 유적의 구체적인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미즈노 세이치(水野清)를 중심으로 한 조사단은 이케가미소네 유적이 환호 취락인 것을 처음으로 밝혔다. 또한 당시 조사에 중장비 사용과 사진 측량을 도입 한 점, 현장에서의 발굴 조사와 실내에서의 정리 작업을 병행하는 체제를 확립시킨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76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90년부터 사적 정비를 위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후 취락 중심부가 명확하게 드러났으며, 야요이 시대 최대급 대형 건물과 대형 우물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2001년 사적 공원으로 정비되었고, 공원의 중앙에는 대형 건물과 우물이 복원되었다.

조사 결과 야요이 시대 전기 후반에 안쪽 환호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중기 중엽이 되면 바깥 환호가 만들어져 취락 범위가 확대된다. 안쪽 환호 내부는 동서 약 320m, 면적 약 81,000㎡이며, 바깥 환호는 길이 약 450m 이상, 면적 12,000~14,000㎡이다. 이 단계에 중심부 미고지에는 대형 건물과 우물이 만들어지고, 그 주변으로는 공방이 위치한다. 안쪽 환호 주변에서는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바깥 환호 주변부에는 방형 도랑무덤(周溝墓)으로 이루어진 묘역이 형성되며, 동심원상으로 배치된 취락의 형태가 완성된다.

이케가미소네 유적의 중심 시기는 야요이 시대 중기 후반이다. 이 시기의 취락은 주거구역, 공방구역, 묘역이 환호나 보조적인 구획으로 엄격하게 구분되는 것으로 보아 계획적으로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북쪽 끝에는 다중 환호가 출현한다.

대형 건물은 야요이 시대 중기 후반에 건축되어 같은 장소에서 4번의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마지막에 지어진 건물의 규모는 동서 19.2m, 남북 6.9m, 면적 133㎡로 야요이 시대 최대 규모이다. 구조는 독립 동지주(独立棟持柱)를 세우는 형식의 굴립주 건물이다. 기둥 구멍의 지름은 약 0.6m이며, 그중 17개에서는 기둥 뿌리가 확인되었다. 건물 남쪽에 있는 우물은 녹나무를 이용해 만들었으며, 지름 2.3m의 규모로 땅을 파내 만든 우물로는 일본 최대 크기이다. 이 2개의 대형 시설 남쪽은 도랑으로 구획된 광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다량의 석기와 토기를 매납한 구덩이가 조사되었다. 출토 상태로 보아 폐기된 것은 아니며, 사누카이트(sanukite) 원석과 미완성품이 발견되어 석기 생산 공방으로 추정된다. 대형 시설 동쪽에는 불 맞은 구덩이와 숫돌(砥石), 거푸집이 출토되어 청동기철기를 만들었던 공방 구역으로 생각된다. 작업 시설로 추정되는 작은 굴립주 건물군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환호 주변에는 주거가 밀집되어 있었고, 용도에 따라 구획된 흔적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케가미소네 유적을 전체적으로 보면 동심원상으로 취락이 위치하고, 대형 건물과 그 주변 유구는 남북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공방 구역을 포함한 중심부 각 구역은 도랑과 기둥 등을 이용해 방형으로 구획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목적에 따라 계획적으로 장소를 정비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대형건물의 용도에 대해 수장 주거설과 신전설, 창고설이 있고, 취락이 대규모라는 점에서 도시론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유적의 조사 과정에서 대형 건물에 남겨져 있던 노송나무의 기둥을 연륜 연대 측정법으로 확인한 결과 기원전 52년에 벌채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야요이 시대 중기의 절대 연대를 처음으로 확인하였으며, 기존의 연대를 100년이나 상향 조정하는 계기가 된 야요이 시대 연구의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