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동검(中國式銅劍)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동주식 동검, 중국식 청동 검, 중원식 동검, 중위안식 동검 |
| 시대 | 청동기 |
| 관련 정보 | |
| 유적 | 곽국묘지, 위다오거우 유적, 둥다장쯔 유적, 화얼산 유적, 왕고우링 유적, 쉬자거우 유적, 재령 고산리 유적, 평원 신송리 유적, 완주 상림리 유적 |
| 키워드 | 중위안 문화, 납작 슴베식 동검, 둥근 슴베식 동검, 납작 자루식 동검, 둥근 자루식 동검, 빈 자루식 동검, 마디 자루식 동검, 세형동검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후석 |
설명
중국식 동검은 넓은 의미로는 전통적인 중국 문화권의 범주에서 확인되는 모든 청동 검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좁은 의미로는 황허강(黃河) 중하류의 소위 중위안(中原)과 창장강(長江) 중하류의 소위 강남(江南)을 연결하는 고대 중위안 문화를 바탕으로 다른 문화권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동검 양식에만 한정하여 사용된다. 그러므로 주변 문화권의 동검들과 양식상의 혼란을 피하려면 좁은 의미로 한정시켜 볼 필요가 있다.
중위안 문화와 관련되는 동검들은 보통 시공간성에 근거하여 ‘중위안식 동검(中原式銅劍)’이나 ‘동주식 동검(東周式銅劍)’으로 불리지만, 전국 시대의 저작물로 추정되는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의 ‘도씨위검(桃氏爲劍)…’이란 기록에 근거하여 ‘도씨검(桃氏劍)’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도씨’는 특정인이 아닌 장인들을 통칭하는 명칭이며, 기록되어 있는 ‘도씨검’은 실존하는 동검들과 맞지 않아 학술 용어로는 적합하지 않다.
중국식 동검은 검 몸(劍身)과 자루(劍柄)의 착장 방식에 따라 조립식의 슴베식(有莖式) 동검과 합주식(合鑄式)의 자루식(有柄式) 동검으로 크게 구 분된다. 부위별로 순차적인 중첩 주조 방식으로 자루나 마디(劍格), 머리(劍首) 등을 추가 주조하여 만든 것도 있다. 제작 완료 상태만을 고려하면, 슴베(莖部)와 자루(柄部)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슴베식 동검은 납작 슴베식(扁莖式), 둥근 슴베식(圓莖式) 등이 있고, 자루식 동검은 납작 자루식(扁柄式), 둥근 자루식(圓柱柄式), 빈 자루식(筒狀柄式), 마디 자루식(有節柄式) 등이 있다. 다만, 실제로는 시대별로 확인되는 동검의 특징, 즉 검의 등대(劍脊) 유무, 날의 형태 등을 반영하여 더욱 다양하게 명명되고 있다.
중위안 문화의 동검들은 초원 계통 동검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서주 시기에 등장하였는데, 그 중심에는 중위안과 장난이 있었다. 중위안 지역에서는 중위안 서쪽 또는 서남쪽의 쓰촨 지역에서 기원하는 버들잎 모양(柳葉形)의 날을 지닌 납작 슴베식 검과 북방 지역의 검과 관련되는 좁은 등대가 있는 둥근 자루식 검이 주로 확인되며, 장난 지역에는 검날이 사선으로 발달되어 있는 둥근 자루식 검이 주로 확인된다. 특히 장난의 검은 중위안의 검과 달리 길이가 40㎝ 이상으로 커지고 실용성도 증가한다. 다만 이 시기에는 동검 수량이 한정되고, 주력 무기로도 정착하지 못하였다. 중위안 문화에서 동검이 늦게 출현하고, 주된 무기로도 늦게 채택되는 것은 전차전(戰車戰)에서 보병전(步兵戰)으로 전쟁 방식이 점차 바뀐 것이 주된 이유이다. 위세전(campaign)적 상황과는 달리 소모전(attrition)적 상황하의 보병전에서는 동검 같은 단병기가 꼭 필요하다.
동주 시기 이후 중위안과 장난의 교류 관계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동검 역시 실용성이 더욱 증가하고 슴베식보다는 자루식이 많이 사용된다. 슴베식은 주로 중위안에서 확인되며, ‘피(鈹)’라 하는 긴 자루에 착장되는 것도 사용된다. 자루식은 기원전 5세기경 빈 자루식과 마디 자루식이 장난 오월(吳越) 지역을 중심으로 정형화되면서 중위안으로 대량 유통되어 주류를 차지함에 따라 양식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가장 발달한다. 대개 실전용은 길이 40~60㎝로 장식 없이 날이 강화되어 있고, 비실전용은 장식성이 높은 것이 많다. 주변 문화권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다른 계통 동검들과 복합되는 예도 확인된다. 가령 싼먼샤(三門峽) 곽국묘지(虢國墓地) 등의 유적에서 확인되던 둥근 자루식 검은 중위안 지역에는 사라지는 대신 북방 장성지대에서 일부 형태 변화를 거치면서 적지 않게 사용된다.
중국식 동검은 기원전 4세기경 이후 허베이 지역을 거쳐 랴오허강 유역(遼河流域)으로 파급되는 한편 산둥 반도에서 랴오둥 반도를 거쳐 또는 황해 해로를 따라 한반도로 전해진다. 이는 각각 연나라와 제나라의 관계망에 중국식 동검이 포함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청동 무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주로 군사적인 충돌이나 사회 혼란으로 인한 난민 발생 등의 비일상적 상황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동검 자체뿐만 아니라 장인들의 이주 등이 전파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한 이와 함께 중국식 동검이 랴오닝 지역이나 한반도에서 세형동검과 함께 출토되는 점을 고려하여 세형동검의 형성 과정에서 직간접적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한편 중국식 동검은 종류별로 다른 시공간성이나 유통 경로를 지니면서 주변 지역으로 파급된다. 먼저 육로의 랴오닝 방면에는 젠창 위다오거우와 둥다장쯔 유적에는 중국식 동검이 출토되었는데, 기원전 4세기경 안에서도 이른 시기에는 슴베식만 출토되다 늦은 시기에야 빈 자루식과 마디 자루식이 확인되며, 기원전 300년경 이후에는 그 동쪽의 베이푸(北票), 베이진(北鎭), 창투(昌圖), 좡허(莊河) 일대에서 연나라 또는 조나라 계통의 납작 슴베식 검이 등장하고 있어 순차적인 파급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해로의 랴오둥 반도 방면에는 예외적인 사례지만 기원전 6~5세기경의 푸란뎬 화얼산 유적(花儿山遗址)에서 제나라와도 관련되는 둥근 슴베식 검이 수습된 바 있고, 기원전 300년경의 번시 왕고우링 유적(王沟玉岭遗址)에는 월나라 계통의 빈 자루식 검이 출토된 바 있다. 기원전 300년경 이후에는 랴오둥 해안 지역의 쉬자거우 유적 등은 물론 북한 지역의 재령 고산리, 평원 신송리 등의 유적에서 마디 자루식 검이 적지 않게 출토된다. 또한 기원전 200년경 전후에는 평양 일대에서 훨씬 커진 마디 자루식 검이 진(秦)나라의 청동 꺾창(銅戈) 등과 출토되는 예도 확인된다.
한반도의 마디 자루식 검은 중위안 문화 출토품과 달리 대부분이 자루 단면 형태가 납작한 타원형인 것이 특징인데, 이에 따라 토착 문화 장인들이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남한 지역의 완주 상림리 유적에는 중국식 동검 26점이 나란하게 매납되어 있어 과거부터 주목받아 왔다. 최근에는 주조 또는 연마 상태가 다양하고, 성분 분석 결과 주석 함량이 낮은 대신 납의 함량이 높은 점에 근거하여 제사 의례용의 비실용적 목적으로 한반도 내에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식 동검은 서한 시기 이후 철검(鐵劍) 확산 과정에서 급감하나, 일부 지역에는 동한 시기까지 잔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