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동 유적(濟州 龍潭洞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제주 용담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741-1·746-2·2696-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취락 |
| 키워드 | 송국리식 집자리, 바리, 항아리 모양 토기, 덧띠토기, 경질무문토기, 돌끌, 돌도끼, 고인돌, 돌덧널무덤,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쇠도끼, 쇠칼, 쇠화살촉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박경민 |
설명
사적.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741-1·746-2·2696-2 일원에 위치한다. 1984년 용담2동 주택 공사 현장에서 독무덤(甕棺墓)1기가 조사되었으며 2011년에는 주택 신축 공사의 일환으로 2696-2 일원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용담동 유적은 청동기~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마을과 무덤이 확인된 유적으로, 해안변에서 한단 올라온 해발 30~50m 내외의 비교적 완만한 경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또한 한천과 병문천이 유적을 감싸돌아 바다로 연결되고 있다. 용담동 유적에서는 장방형 집자리 7기, 원형 집자리 113기, 기둥 건물터 11기, 구덩이 248기, 소성 유구 30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크게 장방형과 원형으로 구분된다. 장방형 집자리는 유적의 서편에, 원형 집자리는 그보다 동편에 주로 분포한다. 장방형 집자리의 면적은 10㎡를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반도 남부 지역의 장방형 집자리가 이른 시기에 비해 말기에는 소규모화되는 양상과 궤를 같이한다. 집자리 내부에서는 화덕이나 다양한 시설이 확인되지 않는다. 기둥 구멍은 집자리 내부 중심 또는 가장자리에서 주로 확인되며, 출토 유물은 주로 바리 모양의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와 같은 민무늬 토기가 대부분이다.
반면 원형 집자리는 대부분 내부 가운데 타원형 구덩이와 두 개의 기둥 구멍이 배치된 송국리식 집자리에 해당한다. 규모를 보면 면적은 대체로 6~20㎡ 사이에 집중되는데 11~15㎡ 내외가 일반적이다.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의 배치 관계 혹은 기둥 구멍의 깊이에 따라 면적의 차이가 보이기도 한다. 기둥 구멍이 타원형 구덩이 안에 있거나 깊은 것은 면적이 넓고 반대로 타원형 구덩이 양 끝이나 바깥에 설치되고 깊이가 얕은 것은 비교적 면적이 좁게 축조되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와 속성 차이는 시간성을 반영하기도 하는데 보통 전자가 이르고 후자는 늦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타원형 구덩이만 설치된 형태, 기둥 구멍에 주춧돌이 배치된 형태,벽 도랑(壁溝과 같은 도랑(溝)이 조성된 형태, 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는 형태 등 다양한 사례가 확인된다. 이처럼 전통적인 송국리식 집자리에서 벗어난 형태는 시간성을 반영하며 원삼국 시대까지 성행하게 된다.
원형 집자리에서는 대부분 바리와 항아리 모양의 민무늬 토기가 출토된다. 또한 덧띠 토기(粘土帶土器)와 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가 동반되기도 한다. 반면 송국리식 집자리에서 벗어나는 늦은 시기의 집자리에서는 두드림무늬 토기(打捺文土器)와 함께 경질 무문 토기(硬質無文土器) 또는 적갈색 경질 토기(赤褐色硬質土器)가 확인된다. 석기는 돌살촉, 돌도끼(石斧), 돌검, 돌끌(石鑿), 숫돌(砥石) 등의 무기 혹은 공구류가 출토된다. 그리고 공이돌(敲石),갈돌(碾石), 오목돌(凹石) 등의 식량 처리구도 수습되었다.
한편 기둥 건물터는 일반적으로 마을 내 창고와 같은 공동 시설로 알려져 있는데 용담동유적에서는 1×1칸, 1×2칸, 2×3칸, 2×4칸 등 다양한 규모의 건물터가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성 유구는 평면 형태가 장방형에 가까운데 정형성을 갖추지 못한 사례가 많다. 축조 방법을 보면 구덩이를 파서 불 다짐 처리한 경우도 확인되지만 당시 지표면에 그대로 조성한 사례가 많다. 규모는 길이가 5m 내외인 소형부터 22m 내외의 대형까지 다양하다. 바닥면에서는 토기, 석기, 동물뼈, 불탄 곡식 등이 출토되는 점으로 미루어 육류의 해체 및 조리에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토기 제작 과정에서 실패품들이 출토되는 것은 야외 토기 가마로 활용되었음을 추정케 한다.
용담동 유적에서 확인되는 무덤은 고인돌군과 돌덧널무덤(石槨墓), 독무덤(甕棺墓) 등이다. 고인돌군은 마을 내 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현재 9기가 남아 있다. 형식학적으로 늦은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판돌형 받침돌을 조성한 돌방형 고인돌이 비교적 많이 확인된다. 돌덧널무덤과 독무덤은 용담동 741 일원에 위치하는데, 전체묘역의 규모는 동서 15.6m, 남북 10.2m이다. 이 묘역은 동서 방향의 석렬에 의해 남쪽과 북쪽 묘역으로 구분된다. 남쪽에는 돌덧널무덤 3기가 축조되어 있는데 1호와 2호에서만 뚜껑돌이 확인된다. 유물은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골아가리(口脣刻目土器), 간 토기(磨硏土器), 돌끌(石鑿) 등이 출토되었다. 반면 북쪽 묘역에는 돌덧널무덤 1기와 독무덤 6기가 조영되었다. 돌덧널무덤은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이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껴묻거리로는 쇠칼(鐵劍)과 쇠도끼(鐵斧), 쇠화살촉(鐵鏃) 등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두 개의 토기를 맞대어 가로 방향으로 놓은 이음식 독널 2기와 하나의 토기로 조성된 홑독널 4기가 확인된다.
절대 연대 측정 결과 2700~1600 BP 의 값이 산출되어 청동기 시대 이후 삼국 시대까지도 지속적으로 반복 점유된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송국리 단계의 마을과 함께 병행하는 덧띠 토기 문화 그리고 철기가 도입되면서 경질 무문 토기 문화로 연결되는 양상이 드러나는 점이 고고학적으로 나타난다.
용담동 유적은 청동기 시대 이래 삼국 시대까지 단절 없이 계속적으로 조성된 대규모 마을 유적이다.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부터 유입된 송국리 문화를 바탕으로 마을이 형성된 이후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파급되는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제주만의 특징적인 고고학적 문화가 전개되었다. 예컨대 송국리식 집자리의 재현과 더불어 다양하게 변형된 집자리가 출현하고, 민무늬 토기의 제작 수법을 계승하고 한층 발전시킨 경질 무문 토기 문화의 등장은 지역색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지정정보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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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 용담동선사무덤유적 (龍潭洞先史무덤遺跡) | 🔗 |
| 국가유산 | 사적 | 제주 용담동 유적 (濟州 龍潭洞 遺蹟)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