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석계리 유적(慶州 石溪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2월 5일 (금) 19:38 판 (dkamaster 600-1472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기본 정보
동의어 경주 석계리 유적
시대 청동기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석계리 산165-1, 산176-1, 산180-5, 문산리 산8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야외 화덕 자리, 구덩이, 도랑, 민무늬 토기,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돌살촉, 반달 돌칼, 흔암리, 역삼동식 유형, 검단리식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도현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석계리 산165-1, 산176-1, 산180-5, 문산리 산80, 일원에 위치한다. 석계리 산업 단지 조성에 앞서 2009년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석계리 산180-5 유적(석계리 청동기 시대 생활 유적)을 조사하여 집자리 16기, 야외 화덕 자리 3기, 구덩이 8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인접하여 문산 일반 산업 단지 개발로 2014년 해동문화재연구원에서 석계리 산176-1, 문산리 산80 일원(석계리 유적)을 조사하여 집자리 39기, 도랑(溝) 1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석계4 일반 산업 단지 조성으로 2015~2016년 화랑문화재연구원이 석계리 산 165-1 일원을 조사하여 집자리 150기를 확인하였다. 석계리 165-1 유적은 1.2㎞ 거리에 위치하고, 나머지 유적은 인접하여 위치한다. 서쪽으로 1.7㎞ 떨어져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한 석계리 산231-20 유적에서는 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석계리 산180-5 유적(석계리 청동기 시대 생활 유적)의 집자리는 구릉 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1B구역 1호는 길이 3.92m, 너비 2.13m, 깊이 0.42m로 규모가 가장 작고, 1A구역 4호는 길이 5.5m, 너비 2.6m, 깊이 0.34m로 가장 크다. 집자리는 대부분 장방형이며, 크기도 비슷하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 등이 있으며, 일부 벽 도랑 내 기둥 구멍이 확인되기도 한다. 화덕 자리는 1개씩 확인되며, 집자리 규모가 클수록 한쪽 짧은 벽에 치우쳐 있다. 기둥 구멍의 배치는 대부분 부정형하지만, 일부 6주식(柱式)(A-1·4호, 1B-2~4·6~8호)도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대부분의 집자리에서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대부분 민무늬 토기 편이며, 1A-2호에서는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낟알무늬 토기, 혹무늬 토기(突瘤文土器), 1B-8호에서 혹무늬 토기가 확인되었다.

석계리 산176-1 유적(경주 석계리 유적)에서는 집자리 39기, 도랑 1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와 말단부에 집중되어 조성되었다. 조사된 집자리는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다. 형태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 등이다. 내부 시설은 벽 도랑, 화덕 자리, 기둥 구멍, 외부 돌출구 등이 있다. 유물은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돌살촉, 반달 돌칼, 돌도끼(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Ⅰ구역 10·18호 집자리에서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 일부 집자리에서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구멍무늬(孔列文) 토기가 확인되어 흔암리식 단계에 해당한다.

석계리 산231-20(석계리·냉천리 유적)의 집자리는 방형이며, 길이 3.5m, 너비 3.9m, 깊이 0.3m이다. 내부에서 화덕 자리 1기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4점이 출토되었다.

석계리 산165-1 유적(석계리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의 집자리는 방형 14기, 장방형 28기, 세장방형 5기로 분류된다. 규모에 따라 5~15㎡ 미만의 소형 23기, 15~30㎡ 미만의 중형 20기, 30㎡ 이상의 대형이 16기이다. 집자리 내부에는 4·6·8·12주식(柱式)의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외부 돌출구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으로 집자리 중앙에 위치하거나 한쪽 벽면에 치우쳐 위치한다. 대형 집자리에 해당하는 39·65·74·141호는 집자리 중앙에 화덕 자리를 2개씩 설치하였다. 55호는 길이 5.42m, 너비 4.56m로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으며, 벽 기둥(壁柱)을 따라 가로 방향의 판재목이 탄화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이는 벽을 따라 목재를 세우고 수직 또는 수평으로 판자를 덧붙여 벽면을 축조한 것으로 동천강유역의 검단리식(울산식) 집자리에서 확인된다. 11호는 길이 3.45m, 너비 3.35m로 벽면을 따라 기둥 사이에 좁은 간격으로 가는 목재를 가로 방향으로 결구하였다. 또한, 벽면과 목재 사이 빈 공간에 흙을 채우거나 나뭇가지, 풀, 흙을 섞어 마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배수로와 같은 성격으로 추정되는 외부 돌출구는 집자리 내부의 벽 도랑과 연결되거나 벽 모서리 상단에서부터 외곽으로 도랑을 굴착한 형태로, 총 15기가 확인되었다.

화재 집자리는 약 30기가 확인되었다. 4·8·17·25·55·97·104호는 집자리 전체가 불에 탔으며, 바닥에서는 3~5개체의 토기 및 돌칼(石刀), 돌날(石鎌), 돌살촉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108호는 일부만 불에 탔으며, 벽에 사용된 탄화된 목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출토 유물도 비교적 적다. 4·8·17·21·30호 등은 화재로 폐기된 이후 크기 및 형태가 불규칙한 돌무지(積石)가 1~2열을 쌓았다. 이는 화재 후 의도적으로 투기(投棄)와 같은 행위를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민무늬 토기 항아리(壺) 및 구멍무늬(孔列文),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골아가리(口脣刻目)를 새긴 깊은 바리(深鉢)얕은 바리(淺鉢)가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석기류는 양날 돌도끼(兩刃石斧), 외날 돌도끼(片刃石斧), 간 돌살촉,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유물은 토기 문양에서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와 구멍무늬(孔列文), 골아가리(口脣刻目)와 구멍무늬(孔列文)의 복합문과 삼각 오목 돌살촉 등과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구멍무늬(孔列文) 등의 단순 무늬와 기둥 모양 돌자귀 등이 확인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41호 275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970년), 55호 270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5년), 141호 289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90년)라는 결과를 얻었다. 집자리는 시기에 따라 대형에서 소형으로 축조되며, 일정한 군집을 형성한다. 중앙에 일정한 빈 공간(空址)을 두고 집자리가 고리 모양(環狀)으로 배치되어 있어 계획적인 마을의 모습을 띈다.

유적은 동천강을 중심으로 한 산계에 위치한 대단위 마을 유적이다. 특히, 흔암리·역삼동식 유형에서 검단리식 유형으로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유적은 동천강 유역권 내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을 살펴보는 것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유적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