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리 유적(慶州 汶山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경주 문산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문산리 944, 990, 산75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돌덧널무덤, 도랑, 고인돌, 독무덤, 붉은 간 토기, 겹아가리 토기, 간 돌검, 흔암리식 토기 단계, 검단리식 토기 단계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신영애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문산리 944, 990, 산75 일원에 위치한다. 지방 산업 단지 조성에 앞서 2006~2009년 신라문화유산연구원과 성림문화재연구원이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였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2006~2007년 문산리 유적 Ⅰ구역을 조사하여 가구역에서 집자리 26기, 구덩이 4기, 나구역에서 집자리 32기, 구덩이 3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2008~2009년 문산리 유적 Ⅱ구역에서 집자리 12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를 조사하였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2006~2008년 산75 일원을 조사하여 Ⅱ-가구역에서 집자리 15기, 돌널무덤 4기, 돌덧널무덤(石槨墓) 5기, Ⅱ-나구역에서 집자리 28기, 도랑(溝) 1기, 고인돌 1기, 돌널무덤 2기, Ⅲ구역에서 집자리 27기, 돌널무덤 2기, 독무덤(甕棺墓) 2기, Ⅳ구역에서 집자리 10기, 돌널무덤 2기를 확인하였다. 외동읍 일대는 동쪽으로 토함산과 삼태봉을 잇는 산맥과 서쪽으로 금오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그 중앙을 흐르는 동천 주변으로 넓은 충적 평야가 발달해 있다. 유적은 서에서 동으로 뻗어 내린 여러 갈래의 구릉 정상부와 비탈면에 입지한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 조사한 구역은 가장 남쪽에 있는 구릉에 위치하고,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한 Ⅱ-가구역, Ⅱ-나구역, Ⅲ구역, Ⅳ구역은 각각의 구릉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모든 구역에서 확인되었다. 구릉 정상부와 비탈면 능선을 따라 열(列)을 이루거나 무리를 이루어 분포하며, 중복도 많아 밀집도가 높다. 형태는 가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이 확인되며, 장방형이 다수이다. 길이 3~7m, 면적 10~30㎡의 중소형이 대부분이며, Ⅳ구역에서는 길이 11m의 대형도 확인되었다. 바닥은 맨땅을 정지한 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불 다짐 처리한 바닥도 확인되었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무질서하거나, 4주식(柱式), 6·8주식이 확인되며 6주식이 다수이다. 화덕 자리는 바닥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구덩식으로 1개씩 확인되었고, 기둥 구멍 배치에 따라 4주식은 중앙, 6·8주식은 한쪽으로 치우쳐 설치되었다. Ⅲ-3·20호는 화덕 자리 주변에 원형으로 도랑이 설치되어 있는데 빗물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벽 도랑은 ‘ㄱ’, ‘ㄷ’, ‘ㅁ’자 모양으로 확인되며, H구역, Ⅱ-가·나구역, Ⅲ구역에서는 짧은 벽 또는 긴 벽에 이중으로 나타나거나 ‘凸’자 모양을 띠기도 한다. 집자리의 긴 벽에서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가 확인되어, 증축에 따라 확장된 것으로 판단된다. 외부 돌출구는 무시설의 구덩식으로, A-2-2호는 굴착 후벽에 깬돌(割石)을 세운 석조식(石造式)이다. 화재로 폐기된 집자리에서는 지붕 시설과 벽체가 확인되었다. Ⅲ-3·5호는 지붕에 사용되었던 목재가 불에 탄 상태로 확인되었다.
구덩이 중 Ⅰ-가구역 4기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열상으로 분포한다. 형태는 타원형이고, 단면은 ‘Y’, ‘V’자 모양이다. 1호는 길이 1.84m, 너비 1.26m, 바닥 길이 1.15m, 너비 0.4m, 깊이 1.15m이며, 바닥 가장자리를 따라 8개 기둥 구멍이 2열로 배치되어 수렵 함정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短斜線孔列土器), 짧은 빗금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短斜線口脣刻目孔列土器), 가로줄무늬 토기(橫線文土器), 간 돌검, 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돌창(石槍), 돌도끼, 반달 돌칼, 숫돌(砥石), 가락바퀴, 그물추, 갈돌, 갈판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덮개돌(上石)이 길이 2.18m, 너비 1.8m, 두께 0.21~0.31m로 남쪽으로 밀린 상태이다. 무덤 구덩이(墓壙)는 길이 1.69m, 너비 0.87m, 깊이 0.32m로, 벽면을 점토와 0.15m 내외의 강돌로 보강하였다. 바닥에는 0.03m 내외의 아주 작은 강돌을 깔았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돌널무덤은 D구역, Ⅱ-가·나구역, Ⅲ구역에 분포한다. D구역은 파괴가 심한 편이며 붉은 간 토기와 구슬옥(丸玉)이 출토되었다. Ⅱ-가구역 1~3호는 서로 인접하며, 돌널은 길이 0.42~0.78m, 너비 0.1~0.42m로 소형이다. 4호는 남사면에 단독으로 위치하며 돌널은 길이 1.28m, 너비 0.43m, 깊이 0.34m이다. Ⅱ-나-2호는 판돌을 짧은 벽에 세워 길이 2.02m, 너비 0.51m로 축조하였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와 슴베 없는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돌덧널무덤은 Ⅱ-가구역 능선을 따라 분포한다. 2호는 장방형이며, 등고선 방향과 평행한다. 무덤 구덩이는 길이 3.98m, 너비 3.92m, 깊이 0.78m, 돌덧널은 길이 1.48m, 너비 0.41m, 깊이 0.48m이다. 구덩이를 2단으로 판 후 깬돌을 세우거나 눕혀 쌓아 벽을 만들고 바닥에는 깬돌을 깔았다. 뚜껑돌은 판돌 1장으로 이용하였고, 주변은 깬돌로 보강하였다. 3호에서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石劍이 출토되었다.
문산리 유적은 경주에서 가장 큰 청동기 시대 취락 중 하나로, 경주와 울산을 잇는 교통로에 장기간 조성된 취락으로 판단된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에서 확인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가-4호 259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785년), A-2-1호 241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470년), H-1호31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440년), Ⅱ-나-15호 293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80년), Ⅱ-나-25호 249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480년), Ⅲ-10호 280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30년) 등으로 확인되었고, 보정 연대는 기원전 15~5세기이다. 집자리와 출토 유물을 통해 중심 연대는 흔암리식 토기 단계부터 검단리식 토기 단계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