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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춘 유적(大連 尹家村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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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춘 유적(大連 尹家村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다롄 인자춘 유적, 대련 윤가촌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중국
소재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 뤼순커우구(旅順口區) 톄산진(鐵山鎭) 인자촌(尹家村)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구덩이, 움무덤, 독무덤, 세형동검, 인자춘식 동검, 비파형동검, 청동 검병, 인자춘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후석



설명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 뤼순커우구(旅順口區) 톄산진(鐵山鎭) 인자촌(尹家村)에 위치한다. 유적은 랴오둥반도 서남단의 해안 마을 하천 변에 입지하는 생활·무덤 복합 유적이다. 1928·1929년 일본의 동아고고학회(東亞考古學會)가 무양청(牧羊城)과 그 주변의 한 대(漢代) 무덤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함께 조사되었다. 1963·1964년 조·중공동고고학발굴대(朝中共同考古學發掘隊)가 마을 하천 변을 조사하여 문화층과 많은 유구들을 확인하였다. 또한 1974년에는 하천 변의 언덕에서 무덤의 껴묻거리로 추정되는 청동 유물이 일괄 수습되어 유적에는 많은 무덤들이 분포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1963년 조사에서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크게 3시기로 구분된다. 하층은 청동기 시대의 1기 문화층과 초기 철기 시대 의 2기 문화층으로 구별된다. 상층은 서한 시기의 3기 문화층에 해당한다. 1기 문화층에서는 구덩이(竪穴) 8기와 움무덤(土壙墓) 5기가 확인되었고, 2기 문화층에서는 구덩이 2기와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 독무덤(甕棺墓) 1기가 확인되었다. 3기 문화층에서는 나무널(木棺)이나 나무덧널(木槨)이 쓰인 움무덤 5기와 독무덤 5기가 확인되었고, 이외에 시대 불명의 움무덤 3기가 확인되었다.

1928년 조사에서 확인된 돌덧널무덤(또는 돌널무덤) 2기, 움무덤 1기는 1기에 속한다. 관툰쯔강(官屯子河)으로 불리기도 했던 하천 변의 추정 무덤과 돌덧널무덤 1기(28M1), 1974년 하천 북변 중위안식 동검세형동검이 수습된 추정 무덤이 2기 문화에 해당한다. 이외에 마을 하천 주변에서 동검, 검 부속구 등이 수습되어 유적은 장기간에 걸쳐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기 문화(청동기 시대)에는 구덩이와 무덤이 확인되었다. 구덩이는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저장 구덩이(貯藏穴)로 추정된다. 8기 가운데 2기(64H4·64H12)가 보고되었다. 출토 유물은 주로 단사선문(短斜線文)이나 각목문(刻目文)이 있는 이중 구연 토기(二重口緣土器) 편이 확인되었다. 돌덧널무덤은 1928년 조사되었으며, 모두 돌무덤(石墓)으로 기술되어 있다. 무덤 가장자리를 돌로 에워싸고 있어 구조적으로는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과 비슷하다. 5기 가운데 2기(28M2·28M3)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출토 유물에는 비파형동검유경식 양익동촉(有莖式兩翼銅鏃), 선형 동부(扇形銅斧) 등이 확인되었다. 춘추 시대에 유행하는 것과 비슷하며, 연대는 다롄 강상 유적(崗上遺蹟) 출토품에 비해 늦는 것이어서 기원전 7~6세기대로 판단된다. 움무덤은 모두 소형 화장(火葬) 무덤으로 6기 가운데 2기(64M3 등)만이 보고되었다. 1928년 조사된 무덤 1기는 주나라 말~한나라 초의 무덤이라 하여 ‘즉주묘(堲周墓)’로 보고된 움무덤이다. 부장 유물에는 비파형동검, 청동 검병(靑銅劍柄), 석제 검파두식(劍把頭飾), 유경식 동촉, 소형 선형 동부, 마노환(瑪瑙環) 등이 확인되었다. 비파형동검이 직선화되면서 청동 검병의 문양 역시 거의 사라진 것이어서 기원전 5~4세기대로 추정된다.

2기 문화(초기 철기 시대)에도 구덩이와 무덤이 확인되었다. 구덩이는 2기(64H3·64H11)이며, 모두 원형의 저장 구덩이로 추정된다. 특히 11호 구덩이에서 출토된 소형 관(罐), 대형 파수부호(把手附壺), 두(豆) 등은 1928년 조사된 돌덧널무덤(28M1)의 출토 유물과 매우 유사하다. 무덤은 1963년 조사된 4호 무덤(63M4)과 1964년 조사된 12호 무덤(64M12)이 대표적이다. 4호는 관과 완(盌)을 사용하여 만든 독무덤이다. 독널은 세워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12호 무덤은 장방형의 구덩이를 파고 나무널을 안치한 후 강돌로 그 주위와 상부를 채워 넣은 돌무지널무덤으로 판단된다. 무덤의 주축은 동서 방향이며, 머리 방향은 동쪽이다. 출토 유물은 세형동검 1점, 이중 구연 발 1점, 관 1점, 호(壺) 1점, 두 3점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머리 쪽에 집중되어 있다. 세형동검은 곧은 날을 지닌 것이어서 ‘인자춘식 동검’으로 불려지는 형식이다. 랴오시 지역과 랴오중 지역에서도 기원전 4세기경부터 확인된다. 두 1점은 전국 시대 중기의 연나라 계통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연대는 기원전 4세기대 후반 또는 기원전 3세기대 전반으로 판단된다.

3기 문화(서한) 유구에는 서한 초기의 독무덤, 움무덤이 확인되었다. 독무덤은 구연부나 뚫린 바닥을 서로 맞대놓은 이음식(合口橫置式) 독널 구조이다. 특히 1928년 조사된 3호 독무덤은 토착 계통의 대형 무문 토기와 서한 계통의 단경호, 부(釜)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토착집단이 중위안 문화의 묘제를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64년 조사 독무덤 5기(M1·5·6·9·14)는 서한 시기의 부가 조합된 것이 많아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움무덤은 보고서에 조개무덤(貝墓)으로 기술되어 있는 무덤들을 포괄한다. 다만 ‘난산리 철기묘(南山裡鐵器墓)’로 보고되어 있는 무덤은 대형 토기 안에 다량의 철제 농공구를 넣어 둔 점이 특징이다. 연대는 전국 시대 연나라 철기 전통을 잇는 것도 확인되어 2기 문화와 3기 문화의 과도기나 서한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랴오둥반도 남단 지역의 청동기 시대부터 서한 시기까지의 연속적인 문화 변동 양상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12호 무덤으로 대표되는 세형동검 문화 단계의 ‘인자춘 2기 문화’는 무덤 구조와 장법, 유물의 부장 양상 등에 주목하여 최근에는 ‘인자춘유형’으로 설정한다. 랴오둥반도 남단의 초기 철기 시대의 무덤의 특징은 랴오시 지역이나 랴오중 지역에서 먼저 확인되어 지역 간 긴밀한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