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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리 황산 유적(高敞 峰山里黃山遺蹟)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5월 6일 (수) 10:3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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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리 황산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고창 봉산리 황산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 1566 일대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한뎃가마, 돌덧널무덤, 구하도, 외반 구연 항아리, 삼각 돌칼, 홈자귀,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 1566 일대에 위치한다. 고창 일반 산업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2012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충적 대지의 옛 물길을 따라 입지하는데, 고수천을 중심으로 양쪽 기슭에 형성된 충적 대지와 그 뒤쪽의 구릉 지대에 걸쳐 위치한다. 이 일대는 낮은 구릉들과 소하천, 그리고 충적 대지가 발달되어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선호했던 자연·지리적 환경을 갖추고 있다. 발굴 조사 범위는 114,272㎡에 이르고, 지리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총 5개 구역(1~5구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삼국 시대 마을과 더불어 조선 시대 회곽묘 등 다양한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구는 2구역과 3구역에서 집자리 87기, 폐기와 의례 관련 구덩이 89기, 방형의 도랑(溝) 1기, 도랑 19기, 도로 유구 1개소와 무덤 유적인 돌덧널무덤(石槨墓) 6기, 구하도(舊河道) 1개소와 수로 1기·목재 저장 시설 1기 등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해발 33~35m의 충적 대지 일원에서 87기가 분포하는데, 모두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안쪽과 바깥쪽 양쪽으로 중심 기둥 구멍(柱穴)이 설치된 송국리식 집자리다. 평면 형태는 방형(23기), 말각 방형(29기), 원형(27기), 부정형(5기)으로 구분된다. 방형계의 비율이 원형계에 비해 높았으며, 평면 형태에 따라 분포 양상과 축조 시기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집자리의 평면 형태와 축조 위치의 관계를 살펴보면, 방형은 유적의 남동쪽과 남서쪽에 주로 축조되었고, 이후 말각 방형이 유적의 중앙부에 조성되었으며, 원형은 말각 방형과 동 시기나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축조되었다. 특히 말각 방형과 원형은 유적의 중앙부에 밀집 분포하는데, 동-서로 길게 조성된 9호 도랑(溝) 안쪽으로 축조되었다. 원형은 크기가 큰 44호·46호·47호를 중심으로 조밀하게 분포하며, 먼저 축조된 말각 방형을 파괴하고 축조되었다. 집자리는 대부분 단독으로 축조되었으나 일부 중복된 것도 있어 중복된 집자리의 관계와 평면 형태별 중복된 양상 등을 분석한 결과, 집자리는 방형, 말각 방형, 원형 순으로 축조되었다.

집자리는 길이 3m이하의 소형(9기), 3.01~4m (43기)와 4.01~5m(20기)의 중형, 5.01m 이상(5기)의 대형으로 나뉜다. 중형이 총 63기로 가장 많고, 대형은 모두 평면 형태가 원형이며 타원형 구덩이 내 양쪽에 중심 기둥 구멍이 설치되고, 주변으로 4개의 기둥 구멍(柱孔)이 마련된 구조이다.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구멍, 내부 도랑, 벽 기둥 구멍(壁柱孔) 등이 있다. 먼저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구멍의 결합양상을 살펴보면,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에 2개의 기둥 구멍이 있는 것과 타원형 구덩이 양쪽에 중심 기둥 구멍이 걸쳐 있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별도로 4개의 기둥 구멍을 설치한 것도 있다. 이외에도 타원형 구덩이만 확인되고 중심 기둥 구멍이 없는 경우, 집자리 중앙부에 양쪽에 중심 기둥 구멍을 두고 사이에 원형의 구덩이를 나란하게 배치한 경우, 타원형 구덩이 없이 중심 기둥 구멍 2개만 확인된 경우, 타원형 구덩이 없이 중심 기둥 구멍과 벽 기둥 구멍이 설치된 경우도 있다. 타원형 구덩이의 기능은 작업 구덩이, 집수구, 노지, 저장 구덩이, 보관구덩이 등으로 해석되는데, 본 유적에서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와 주변에서 석기를 제작하거나 가공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들도 확인되었다. 특히 유적 내 동서 방향으로 길게 조성된 9호 도랑의 남쪽 구역을 중심으로 평면 형태가 방형인 집자리만 확인되는데, 이 중 49~53·66호 내부에서 석기 제작과 관련한 유물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빗물 등을 타원형 구덩이로 모으려는 도랑유인수로의 존재와 연관하여 집수(集水) 시설 및 화덕 자리, 그리고 저장 구덩이로서의 기능 혹은 임시적 수장收藏 구덩이 등 보관·보존의 성격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벽 기둥 구멍은 7호에서 확인되었는데, 벽 안쪽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확인된다. 송국리식 집자리의 지붕 구조를 고려할 때 벽 기둥은 주 기둥(主柱孔)보다 낮았을 것으로 판단되며, 벽 기둥은 벽체의 골격을 잡는 동시에 서까래를 지탱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입 시설은 47호에서 확인되었는데, 북쪽 벽에서 돌출된 형태이고, 벽면에서 비스듬하게 굴착하여 시설하였다. 출입구는 평면이 반타원형이면서 2단으로 이루어진 계단식이다. 출입 시설은 집자리의 구조상 벽선에서 바깥으로 돌출되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우기(雨期)에 빗물의 유입을 고려하여 출입부분에도 지붕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송국리식 집자리에서 발견된 사례가 많지 않으나, 진안 농산 유적 8호와 장흥 신풍 유적 14호에서 완전하게 확인되기도 하였다. 내부 도랑(溝)은 바닥에서 타원형 구덩이와 연결된 것으로, 12호와 39호에서 확인되었다. 이는 집자리 안으로 흘러드는 빗물을 타원형 구덩이 쪽으로 흘러들게 하여 바닥면이 젖지 않도록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집자리 대부분 자연 폐기되었으나, 37호와 73호는 화재로 폐기되었다. 화재 폐기된 집자리는 모두 평면 형태가 원형이었고, 집자리 내부에서 상부 구조물로 추정되는 목재와 벽체, 벽면에 세워진 목재 등이 내부로 쓰러진 양상이었다.

돌덧널무덤(石槨墓)은 총 6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가 밀집 분포하는 곳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하는데, 구하도가 확인된 지역과 인접하다. 1구역 서쪽(해발 40.5m)과 남쪽(해발 35.3m), 남서쪽, 중앙부(해발 34.6m)에서 총 4기가 확인되었고, 2구역의 경우, 남쪽 경계 지역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무덤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고, 대부분 훼손이 심하여 축조 방식은 명확하지 않으나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판돌 및 깬돌을 이용하여 비교적 정연하게 무덤을 만들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바닥은 2-1호만 판돌을 2매를 깔고 그 사이에 점질토를 이용해 마무리하였고, 나머지 5기는 별다른 시설없이 사용되었다. 1-1호의 장축 방향은 남-북으로, 길이 1.03m, 너비 0.28m 정도이며, 무덤 구덩이(墓壙)는 길이 1.74m, 너비 0.75m, 깊이 0.37m 정도이다. 함몰되어 명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짧은 벽은 비교적 편평한 판돌을 1~2매 정도 세워 축조하였으며, 긴 벽은 바닥에서 0.1m 정도를 점토로 채우고 그 위에 깬돌을 가로로 눕혀 만들었다. 1-2호의 장축은 동서 방향이고, 길이 1.64m, 너비 1.24m 정도이다. 벽면은 1단만 확인되나 깬돌을 수직으로 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3호는 장축은 동서 방향으로, 길이 1.61m, 너비 0.64m이며, 무덤 구덩이는 길이 2.02m, 너비 1.04m, 깊이 0.3m 정도이다. 4호의 장축은 동서 방향이고, (추정) 길이 1.48m, 너비 0.54m 정도이며, 무덤 구덩이는 길이 2.22m, 너비 1.28m, 깊이 0.4m이다. 벽면은 동벽, 서벽, 남벽의 경우 일정하게 반듯한 벽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북벽의 경우 불규칙한 형태로 확인되었다. 2구역 무덤의 장축은 북동-남서 방향이다. 사용된 석재들은 판돌(1호)과 깬돌(2호)으로, 벽석은 양 짧은 벽들은 작은 판돌으로 2단으로 축조하였고, 북서쪽 긴 벽은 1매의 큰 판돌을 이용하여 가로로 눕혀 쌓았으며, 남동쪽 긴 벽은 비교적 작은 판돌으로 세워 축조하였다. 2-1호는 길이 1.24m, 너비 0.4m 정도이며, 무덤 구덩이는 길이 1.8m, 너비 0.84m, 깊이 0.45m 정도이다. 2-2호는 훼손이 심한 편으로, 잔존 길이 1.5m, 너비 0.48cm 정도이며, 무덤 구덩이는 길이 1.64m, 너비 0.84m, 깊이 0.23m 정도이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 바닥이 확인되었다.

한뎃가마(露天窯)는 2구역 북서쪽 해발 34.1m 상에 위치한다. 벽면은 바닥면으로 비스듬히 떨어지고 바닥면은 동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서쪽에서는 목탄과 불탄 흙(燒土)이 집중되었나, 유물은 동쪽에서 더 많이 출토되었다. 서쪽 부분에서 동쪽으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남쪽벽에 치우쳐 주변 바닥 면보다 깊게 굴착된 면이 길게 확인된다. 길이 6.6m, 너비 0.22~0.28m, 최대 깊이 0.2~0.3m 정도이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편, 돌살촉 편, 돌칼, 미완성 석기가 확인된다.

구하도는 2-1구역 중앙부를 관통하여 2-2구역을 지나 2-3구역을 감싸 도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비교적 일정한 너비로 남북 방향으로 흐르며, 일정한 시기에 물길이 차단되면서 그 기능이 상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말목열은 호안 시설로, 축조 장소에 따른 기능적인 면에서 차이가 확인되었다. 1구역의 말목 열은 너비 0.25~0.48m, 깊이 0.2~0.28m 정도로 비교적 좁은 수로에서 물길의 보강 시설로 저수 호안(瀦水護岸)에 해당된다. 2구역의 말목 열은 옛 물길에서 확인되었으며 마을에 대한 보강 시설로 제방 호안(堤防護岸)으로 추정된다. 0.6~1m 정도의 말목이 다양하게 확인되고, 단면 형태도 다양하게 확인되나 삼각형 단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2곳의 말목 열 모두 물의 유속에 의해 세굴됨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으나, 보강하고자 하는 부분에 따라 다른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로 나누어 지는데, 토기류는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검은 간 토기(黑陶)가 확인되었다. 민무늬 토기가 다수로, 기형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등이 있고, 이외에는 대부분 파편으로 출토되어 전체적인 기형을 알 수 없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굽다리 토기(臺附壺)로부터 시작되는 붉은 간 토기는 부여 송국리 유적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종이 등장하면서 송국리 유형의 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송국리식 집자리에서 다양한 기종의 붉은 간 토기가 확인된다. 기종에는 송국리식 토기, 병, 둥근 바닥의 긴 목 항아리, 둥근 바닥의 짧은 목 항아리, 바리(鉢), 완(盌) 등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검은 간 토기는 1점이 편으로 출토되었는데 완(盌)으로 추정된다. 석기류는 무기류인 돌살촉과 돌검(石劍), 농구류인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돌칼(石刀)이 출토되었으며, 석기 제작과 관련된 것으로 대석(臺席), 고석(鼓石), 석구(石球), 몸돌, 돌조각격지, 숫돌(砥石) 등이 확인되며 용도 미상 석기와 미완성 석기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돌살촉과 삼각 돌칼을 통해 축조 연대를 추정하기도 한다.

봉산리 황산 유적에서는 송국리식 집자리, 외반 구연 항아리(外反口緣壺), 삼각 돌칼, 홈자귀(有溝石斧)와 같은 송국리 유형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기원전 9세기를 전후하여 집자리의 평면 형태가 소형화되고 규격화되면서 방형 집자리가 축조된다. 기원전 8세기를 전후하여 송국리식 집자리가 출현하면서 말각 방형화되고 이후 평면 형태가 원형이고, 규모가 큰 집자리가 축조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2455~2465±20 BP(한뎃가마), 2495±20 BP (37호 집자리), 2750±20 BP(34호 집자리) 등이 제시되어 기원전 917~827에서 기원전 773~727년을 전후하여 형성되었음을 파악하였다.

고창 지역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규모의 고인돌이 밀집·분포하는데, 상대적으로 집자리 등 마을 유적에 대한 조사가 부족하였다. 봉산리 황산 유적에서 확인되는 마을은 그 규모로 보아 지역의 거점 마을 혹은 준거점 마을으로 해석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평가된다. 따라서 집자리와 함께 조사가 이루어진 방형의 도랑, 구덩이, 기둥 건물터, 도랑 등과의 연관성과 더불어 주변 지형과의 관계 및 생활 환경 등과 같은 경관(景觀)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한국 청동기 시대 문화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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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대한문화재연구원. (2015). 고창 봉산리 황산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