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구석기 시대 돌날[舊石器時代石刃]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2일 (목) 11:15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구석기 시대 돌날
기본 정보
동의어 석인
시대 구석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공주 석장리 유적, 단양 수양개 유적, 단양 금굴 유적, 밀양 고례리 유적, 진안 진그늘 유적, 임실 하가 유적, 고양 도내동 유적
키워드 석기 제작 기법, 돌날 기법, 격지, 돌날몸돌, 석기, 공주 석장리 유적, 단양 수양개 유적, 단양 금굴 유적, 밀양 고례리 유적, 진안 진그늘 유적, 임실 하가 유적, 고양 도내동 유적, 직접떼기, 간접떼기, 좀돌날, 현생 인류, 수렵 채집민, 수렵구, 슴베찌르개, 밀개, 찌르개, 긁개, 두르개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3
집필자 장용준



설명

돌날은 주로 석기 제작 기법돌날 기법으로 생산된다. 길이와 너비의 비율이 2:1 이상인 긴 격지이며, 길이가 긴 것에 비해 두께가 얇다. 형태는 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날이 날카롭다. 돌날과 긴 격지(종장박편, elongated flake)는 유사하지만, 등면의 양측 날과 능선이 나란하면서 길이와 너비의 비율이 2:1 이상이라는 기준을 적용하여 돌날을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출토 연대, 돌날몸돌, 돌날 기법의 부산물(타면 재생 격지, 능조정 격지) 등의 공반 유무를 참조하면 돌날로 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유적에서 장방형이나 방형의 석기가 출토된다고 모두 돌날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에 조사를 시작한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 돌날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에 단양 수양개 유적금굴 유적에서 추가로 돌날이 발견되었고,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는 밀양 고례리 유적, 진안 진그늘 유적, 임실 하가 유적에서 석기 제작터가 발견되었다. 최근에는 7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고양 도내동 유적의 석기를 돌날과 돌날몸돌로 보아야 한다는 연구자도 있다.

석영으로 만든 돌날은 매우 드물다. 석영은 길고 두께를 얇게 떼어 내기 어려운 재질이라 돌날의 소재로 잘 사용하지 않았다. 돌날은 안산암, 유문암, 이암, 혈암, 흑요석 등 입자가 고르고 유적 주변에 있는 돌감을 사용해서 주로 만들었다. 백두산 산지의 흑요석으로 만든 돌날은 아주 드물다. 돌날의 타면과 배면을 살피면 직접떼기간접떼기 여부, 경질 망치와 연질 망치의 사용 유무를 판가름할 수 있다.

돌날은 후기 구석기 시대의 표지 석기다. 그러나 돌날이 출토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며, 모든 후기 구석기 유적에서 돌날이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한반도에서 돌날을 제작한 인류는 현생 인류로, 우리나라에서 돌날은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한다. 단양 수양개 유적(Ⅵ지구)의 4문화층에서는 돌날과 돌날몸돌이 출토되었다. 연대는 교정 연대로 41,874~41,254cal BP였다. 돌날 석기군은 3만 년 전에서 2만 년 전 사이에 가장 많이 발견된다. 좀돌날과 함께 사용되기도 하다가 1만 5천 년 전 무렵부터 점차 출토량이 줄어든다. 밀양 고례리 유적, 대전 용산동 유적, 남양주 호평동 유적, 울산 신화리 유적, 밀양 천황재 유적 등 전국적으로 돌날이 출토되고 있다. 다만, 동해안 지역에서는 돌날과 관련된 유적을 찾기 어렵다.

돌날은 무게는 가볍지만 기능이 뛰어나 수렵 채집민이 이동하거나 작업을 할 때 아주 요긴한 석기였다. 특히 날이 예리하여, 동물 해체나 자르기, 수렵구 제작, 음식물 다듬기 등에 효과적이었다. 특히 형태가 뛰어난 돌날은 슴베찌르개와 같은 좌우 대칭 석기를 만드는 데 최적화된 석기였다. 그 자체로도 도구로 쓸 수 있지만, 슴베찌르개, 밀개, 찌르개, 긁개, 뚜르개 등 여러 석기를 만드는 예비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규격화된 돌날로는 유사한 석기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미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