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평촌리·예현리 유적(大邱 坪村里·禮峴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4월 2일 (목) 12:27 판 (dkamaster 600-3019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평촌리·예현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대구 평촌리·예현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 412-3·예현리 55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돌널무덤, 독무덤, 껴묻거리, 펴묻기, 굽혀묻기, 민무늬 토기,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조갯날 돌도끼, 돌칼, 간 돌검, 간 돌살촉, 골아가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석범



설명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 412-3·예현리 55 일원에 위치한다. 달성 2차 지방 산업 단지 지원 도로 건설 사업의 일환으로 2007~2008년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달성군의 남쪽 끝에 위치하며 국도 5호선 서편에 인접하여 평촌리 유적, 고속 국도 45호선 동편에 예현리 유적이 있다. 서쪽으로 나지막한 구릉이 있고 그 너머로 넓은 충적 평야가 낙동강 동안을 따라 형성되며, 동쪽으로는 차천(車川)이 북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차천변의 해발 36~39m의 충적지에 평촌리 유적이 위치하며 남서쪽 550m 떨어져 예현리 유적이 있다.

조사 결과, 평촌리 구간(1차 조사)에서 집자리 2기, 구덩이 14기, 돌널무덤(石棺墓) 28기, 덮개돌(上石) 2기, 독무덤(甕棺墓) 3기, 돌무지(集石) 1기, 예현리 구간(2차 조사)에서 돌널무덤 3기가 확인되었다. 그 밖에 초기 철기~조선 시대 생활 유적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장방형(2호)과 세장방형(1호)이 있다. 1호는 길이 14.8m, 너비 4.82m, 깊이 0.32m이고, 중앙에 3개의 무시설식 화덕 자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벽 도랑(壁溝)은 남쪽의 짧은 벽을 제외한 세 벽에서 ‘ᄃ’자 모양으로 확인되고, 기둥 구멍화덕 자리 사이 또는 벽 도랑 사이에 위치한다. 2호는 절반 정도가 파괴되었고, 서쪽 짧은 벽에 치우쳐 화덕 자리를 두었다. 구덩이의 평면 형태는 원형(2~4·10~12호) 6기, 타원형(13호), 장방형(5~7·9호), 말각 장방형(14호) 등이 있다.

구덩이는 형태, 내부토 퇴적 양상, 배치 등에서 2~4호, 5~7호, 10~12호로 나누어진다. 10~12호의 경우, 구덩이를 판 후 굴착면을 따라 냇돌(川石)과 깬돌(割石)을 돌려 놓은 형태로 솟대나 장송 의례(葬送儀禮)에 사용된 깃대를 세운 시설로 판단된다.

평촌리의 돌널무덤은 28기가 동-서 방향으로 열을 지어 조성되었으며, 서쪽으로 인접하여 평촌리 고인돌군 I~Ⅲ, 고봉리 고인돌군이 위치한다. 돌널무덤은 5~7m 간격을 두고 4열로 배치되고, 일부는 드문드문 분포한다. 4열 중 가운데 2열은 돌널이 크고 부장품에서 우위를 보인다. 1~3기가 군집을 이루어 3m 내외의 간격으로 묘역을 기획하여 축조한 친연 관계(親緣關係)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축조 방법은 판돌을 세운 상자 모양(箱形) 8기, 판돌을 세우고 냇돌을 눕혀 쌓은 혼축형(混築形) 8기, 판 돌 또는 냇돌만 눕혀 쌓은 석축형(石築形) 7기로 구분된다. 바닥은 대부분 판돌을 깔았다. 돌널은 상자 모양으로 길이 0.72~1.45m, 너비 0.19~0.4m, 깊이 0.15~0.4m, 혼축형 길이 0.9~1.8m, 너비 0.35~0.58m, 깊이 0.20~0.46m, 석축형이 길이 1.32~2.32m, 너비 0.48~0.7m, 깊이 0.35~0.57m이다. 석축형이 크기가 크고 껴묻거리가 많은 점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18기에서 사람 뼈가 출토되었는데, 머리 방향은 동쪽과 북쪽이 주를 이룬다. 매장 방법은 펴묻기(伸展葬)굽혀묻기(屈肢葬)가 확인되었다. 사람 뼈를 분석한 결과, 모두 남성이며 3·20호는 30~34세, 1·7·25호는 12~19세로 확인되었다. 26호를 파괴하고 조성된 14호는 고인돌의 하부 구조일 가능성이 있으며, 18·25호는 덧띠 토기 단계의 6호와 24호 구덩이를 파괴하여 덧띠 토기 문화가 유입된 이후에도 돌널무덤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예현리의 돌널무덤은 3기 모두 판돌을 사용한 혼축형으로 후대 유구에 의한 파괴가 심하며, 민무늬 토기 편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붉은 간 토기 편,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마디 자루 간 돌검(有節式磨製石劍),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슴베 없는 간 돌살촉,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버들잎 모양 간 돌살촉(有葉式磨製石鏃),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칼 등이며 대부분 돌널무덤에서 간 돌검간 돌살촉이 조합을 이루며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독을 묻는 방법에 따라 수직으로 묻은 직치(直置), 비스듬하게 묻은 사치(斜置), 수평으로 묻은 횡치(橫置)로 나뉜다. 평촌리 독무덤은 돌뚜껑을 덮은 직치 1기, 돌뚜껑을 덮은 사치, 횡치로 모두 단옹식(單甕式)이며, 돌널무덤군 내에 6~8m 간격을 두고 분포한다. 사용한 독은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손잡이 달린 바리 토기이며, 항아리 모양 토기는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집자리의 조성 시기는 세장방형의 평면에 홈 자루 간 돌검과 슴베 없는 간 돌살촉이 함께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보다는 이르다. 무덤은 돌널의 형태, 무덤 간 또는 초기 철기 시대 구덩이와의 중복 관계, 의기화된 간 돌검과 세장한 간 돌살촉 등을 통해 볼 때, 청동기 시대의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평촌리·예현리 유적은 달성 지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7년 10월 15일 ~ 2008년 10월 27일 달성 평촌리·예현리 유적 2010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한국고고학저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