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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거울[靑銅鏡]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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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거울
기본 정보
동의어 동경, 청동경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스얼타이잉쯔 유적, 량자춘 유적, 샤오헤이스거우 유적, 다라한거우 유적, 파오서우잉쯔 유적, 정자와쯔 유적, 평양 신성동 유적, 시황산툰 유적, 이즈베스톱카 유적, 대전 괴정동 유적, 아산 남성리 유적, 전주 여의동 유적, 예산 동서리 유적, 부여 연화리 유적, 부여 구봉리 유적, 고흥 소록도 유적, 우다오링거우먼 유적, 자오자바오쯔 유적
키워드 여러 꼭지 거울, 기하학무늬 거울, 거친무늬 거울, 고운무늬 거울, 잔무늬 거울, 한경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조진선



설명

거울은 빛의 반사를 이용하여 사람이나 물체의 모습을 비추는 물건이다. 오늘날에는 유리판 뒷면에 수은을 발라서 만들지만 옛날에는 물에 자태를 비추어 보거나 청동이나 철의 표면을 연마해서 만들었다. 청동 거울(靑銅鏡)은 일반적으로 편평한 거울면(鏡面)을 갖추고 있지만 쓰임새에 따라 오목하거나 볼록한 거울도 있다.

우리나라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 청동 거울로는 여러 꼭지 거울(多鈕鏡)이 대표적이다. 여러 꼭지 거울은 거울을 매달기 위한 꼭지(鈕)가 거울 뒷면에 2개 혹은 3개가 달려 있는데, 뒷면 중앙에 꼭지가 하나뿐인 중국의 한경(漢鏡)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거울 뒷면에 기하학무늬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기하학무늬 거울(幾何學文鏡)이라고도 하며, 문양선의 굵기 정도에 따라 거친무늬 거울(粗文鏡), 고운무늬 거울(精文鏡) 또는 잔무늬 거울(細文鏡)로 구분하기도 한다. 거친무늬 거울은 비파형동검 문화부터 세형동검 문화의 이른 시기까지 주로 사용하였다. 랴오시·랴오둥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 및 한반도에서 현재까지 50여 점이 확인되었다. 고운무늬 거울은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60여 점, 일본 열도에서 12점이 출토되었다.

거친무늬 거울(粗文鏡)은 뒷면에 번개무늬(雷文), 햇살무늬(太陽文), 별무늬(星文), 나뭇잎 무늬(葉脈文) 등이 베풀어져있으며, 특이한 형태의 무늬가 있거나 무늬가 아예 없는 것도 있다. 거친무늬 거울을 주조한 돌 거푸집(鎔范)이 랴오둥과 한반도에서는 다수 확인되었다.

번개무늬의 거친무늬 거울은 랴오시·랴오둥 지역에서는 차오양(朝陽) 스얼타이잉쯔(十二臺營子), 번시(本溪) 량자춘(梁家村), 닝청(寧城) 샤오헤이스거우(小黑石溝), 젠핑(建平) 다라한거우(大拉罕溝), 젠핑 파오서우잉쯔(炮手營子), 선양(瀋陽) 정자와쯔(鄭家窪子) 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한반도에서는 평양 신성동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번개무늬는 차오양 스얼타이잉쯔 유적 출토품에 보이는 ‘ᄀ’자 모양에서 선양 정자와쯔 유적 출토품에 보이는 ‘Z’자 모양으로 변화된다. 기원전 9~8세기부터 기원전 4~3세기까지 유행하였다.

햇살무늬의 거친무늬 거울은 랴오시를 제외한 랴오둥과 지린 지역과 한반도에서 주로 확인된다. 지린 지역에서는 퉁화(通化) 샤오두링(小都岭)과 둥펑(東豊) 다자산(大架山) 유적 등에서 돌 거푸집, 화뎬(樺甸) 시황산툰(西荒山屯) 유적에서 청동 거울이 출토되었다. 연해주의 이즈베스톱카 유적(Памятник Известовка)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전주 여의동 유적 등에서 청동 거울이 출토되었다. 랴오둥 지역과 연해주 출토품은 주연부(周緣部) 단면 형태가 삼각형이거나 말각 사다리꼴이지만 한반도 출토품은 반원형이어서 서로 다르다. 기원전 4~3세기에 등장해서 기원전 3~2세기까지 주로 사용되었지만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에서는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고운무늬 거울이 유행하면서 좀 더 빨리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별무늬의 거친무늬 거울은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권에서만 확인된다. 예산 동서리, 부여 연화리, 대전 괴정동, 전주 여의동, 부여 구봉리, 고흥 소록도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맹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거푸집에는 별무늬 거울의 주형이 새겨져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주로 유행하였다.

이밖에 나뭇잎무늬가 있거나 민무늬 거울(無文鏡)도 있다. 나뭇잎무늬 거울은 랴오둥 지역인 지안(集安) 우다오링거우먼(五道嶺溝門)과 단둥(丹東) 자오자바오(趙家堡)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기원전 3~2세기에 주로 유행하였다.

선후 관계를 보면 거친무늬 거울로 번개무늬가 가장 먼저 등장했고, 나머지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지만 한반도보다는 랴오둥 지역에서 늦게까지 사용되었다. 평연(平緣)·방연(方緣)의 번개무늬 거울은 랴오시 지역과 첸산산맥(千山山脈) 서쪽의 랴오둥 지역에만 분포하며, 삼각연(三角緣)의 거친무늬 거울은 랴오둥 지역과 한반도 서북부에 주로 분포한다. 반구연(半球緣)의 거친무늬 거울은 한반도에서 주로 확인되는 등 거친무늬 거울은 뒷면의 무늬와 주연부 형태에 따라 분포 지역과 시기가 다르다.

고운무늬 거울(精文鏡)은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권에서 유행한 청동 거울로 그 거푸집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傳)논산 고운무늬 거울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로 보아, 흙 거푸집을 사용해서 주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傳)영암의 미완성 거푸집과 실험 작업을 통해서 질이 좋은 활석제 거푸집을 활용하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고운무늬 거울의 변천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예산 동서리와 부여 구봉리 유적 출토품을 가장 이른 시기로 보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고운무늬 거울은 거울면의 형태가 다양해서 볼록 거울(凸面鏡), 평면 거울(平面鏡), 오목 거울(凹面鏡)로 구분된다. 뒷면에는 중앙에서 위쪽으로 약간 치우쳐 꼭지가 2개 달려있으며, 아래쪽에 하나 더 추가되어 3개인 것도 있다. 주연부는 모두 횡단면 반원형이며 문양은 대부분 햇살무늬이다. 고운무늬 거울은 지름이 8~22㎝인데 8~11㎝는 소형, 12~15㎝는 중소형, 15~18㎝는 중대형, 19~22㎝는 대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산 동서리 유적과 부여 구봉리 유적에서 거친무늬 거울과 고운무늬 거울이 함께 출토되어서 고운무늬 거울은 기원전 3세기 전엽에 이미 등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해서 기원전 2세기까지 이어지며, 기원전 1세기에는 한경이 들어오면서 쇠퇴한다.

고운무늬 거울은 일본 열도에서도 12점이 출토되었다. 북부 규슈와 그와 인접한 야마구치현(山口縣)에서 9점이 출토되었으며, 긴키 지역에서 2점, 주부 지역에서 1점이 확인되었다. 일본 열도에서 출토된 고운무늬 거울은 모두 오목 거울이다. 크기와 문양 구성이 한반도 출토품과 같기 때문에 대부분 한반도에서 제작된 것을 수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꼭지 거울은 당시 지배자와 관련된 유물로 정치체의 성장을 반영하는데, 그 분포 양상을 토대로 기원전 4세기 이전에는 랴오시 지역에서 정치체의 성장을 상정할 수 있다. 그리고 기원전 4~3세기에는 랴오둥과 한반도 중서부에서도 정치체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운무늬 거울은 일본 열도로도 파급되었기 때문에 당시 한일 관계는 물론 일본 야요이 시대(彌生時代)의 청동기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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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