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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리·삼곡리 유적(晋州 耳谷里·三谷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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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리·삼곡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진주 이곡리·삼곡리 유적, 진주 이곡리 선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이곡리 1201, 삼곡리 985-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기둥 건물터, 고인돌, 돌널무덤, 움무덤,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돌칼, 바리 토기, 가지무늬 토기, 홈 자루 간 돌검, 돌낫, 슴베 돌살촉, 둥근옥, 돌뚜껑움무덤, 슴베 없는 간 돌살촉, 턱 슴베 간 돌살촉, 역삼동 단계, 흔암리식 단계, 송국리 단계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송영진



설명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이곡리 1201, 삼곡리 985-3 일원에 위치한다. 진주 생물 산업 단지 조성으로 2004~2006년 2차에 걸쳐 조사하여, 집자리 8기, 구덩이 32기, 기둥 건물터(高床建物址) 12기, 고인돌 12기, 돌널무덤(石棺墓) 23기, 움무덤(土壙墓) 5기, 돌무지(積石) 1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남강 지류인 영천강이 북류하는 오른쪽 낮은 구릉과 그 사이의 선상지(扇狀地)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소형의 장방형과 방형 집자리로 구분된다. 장방형은 길이 3.3~4.3m, 너비 2.1~3.1m로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만 설치되었다. 6호의 타원형 구덩이는 도랑과 연결되어 있다.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돌칼(石刀) 등이 출토되었다. 방형은 길이 2.6~4.3m로 소형에 해당한다. 1호에서는 중앙에 화덕 자리가 확인되고, 나머지 집자리에서는 타원형 구덩이만 확인되었다.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장방형, 방형, 원형, 부정형 등 다양하며, 평지에 25기, 구릉에 7기가 확인되었다.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대형 항아리(大壺) 편, 바리 토기(鉢形土器),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 편,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편, 돌낫(石鎌), 돌칼(石刀) 편,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편 등이 확인되었다. 석기를 제작·가공하는 작업장이나 공동 작업장, 또는 폐기장으로 추정되며, 의도적으로 도랑 가까이에 설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기둥 건물터는 구릉에서 평지로 바뀌는 지점에 축조되거나 평지에 축조되었다. 가지구의 건물터는 3×2칸, 4×2칸 등으로, 무덤과 생활 유구와 공간 분리가 이루어져 위치적으로 의례를 위한 공간으로 판단된다. 라·마지구의 건물터는 1×1칸, 1×2칸, 1×3칸, 1×4칸 등 다양하다. 창고와 같은 저장 공간, 망루(望樓)와 같은 경계 시설, 주거용 가옥 등으로 추정된다. 생활 유구를 둘러싼 환호가 조사되었는데, 길이 176m, 면적 41,00㎡의 규모이다. 환호는 너비 1~2m, 깊이 0.5~0.8m로 북쪽과 남쪽에 출입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무덤은 구릉과 평지의 말단부에 위치하여 환호 마을과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대형 고인돌을 중심으로 중·소형의 고인돌이 5~6기 군집을 이루거나, 묘역을 갖춘 고인돌을 중심으로 돌널무덤과 움무덤이 배치되어 있다. 묘역은 형태에 따라 장방형 묘역식 고인돌 7기, 원형 묘역식 고인돌 5기로 구분되는데, 연접이나 중복은 보이지 않는다. 묘역은 구획석으로 경계를 돌리고 그 내부를 깬돌로 채우거나, 흙으로 성토하였다. 구획석을 여러 단 쌓아 올린 경우도 확인된다. 무덤 주체부는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축조한 경우, 강돌과 깬돌을 이용해 쌓아 올린 경우, 석재 일부만 사용한 경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축조되었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판돌을 깐 경우가 있으며, 뚜껑돌은 여러 매의 판돌을 이용하여 덮었다. 유물은 빈약한 편이지만, 16·33호 고인돌에서는 가지무늬 토기와 둥근옥(丸玉)이 출토되었다. 17호에서는 가지무늬 토기, 30호에서는 홈 자루 간 돌검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판돌을 이용한 경우, 판돌과 깬돌을 혼합한 경우, 깬돌로 축조한 경우 등으로 구분된다. 판돌을 이용한 경우에는 벽석을 ‘ㅁ’, ‘ㅂ’, ‘ㅍ’자 모양으로 조립하였다. 벽석은 바닥을 파서 판돌을 꽂아 세우고, 벽석과 무덤 구덩이(墓壙) 사이는 깬돌과 흙을 채워 충전하였다. 6호의 경우는 일부는 판돌로 축조하고 일부는 깬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이러한 돌널무덤은 대부분 유적의 남동쪽 구릉 사면 일대에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으로 축조되어 있다. 24~26호와 37호 돌널무덤은 23호 고인돌 주변에 분포하여, 고인돌과의 관계 속에서 배치된 것으로 판단된다. 깬돌이 엉성하게 나타나는 무덤의 경우는 내부에 나무널(木棺)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돌널무덤과 입지상에서는 차이가 없다. 움무덤 중 9·24·29호는 뚜껑돌이 있는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으로, ‘ㅍ’자 모양의 나무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29호에서 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2점, 턱 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磨製石鏃) 1점, 가지무늬 토기 2점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은 역삼동·흔암리식 단계와 그 이후 시기인 송국리 단계가 모두 확인되며, 집자리는 송국리 단계로 편년된다.

유적은 역삼동 흔암리식 단계에서 송국리 단계로 전환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청동기 시대 송국리 단계 마을 내 생활, 생산, 무덤 등의 공간 활용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4년~2005년 진주 이곡리 선사유적Ⅰ 2007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5년~2006년 진주 이곡리 선사유적Ⅱ 2010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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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