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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리 유적(長城 三台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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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장성 삼태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삼태리 산152-4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움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간 돌검, 간 돌살촉, 돌칼, 돌도끼, 돌끌, 숫돌, 갈판, 가락바퀴, 골아가리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문국



설명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삼태리 산152-43 일원에 위치한다. 광주 진곡 산업 단지 진입 도로 개설 공사 구간 내에 포함된 장성 삼태리 유물 산포지 1에 대한 조사로 2013년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해발 40~50m 내외의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에 입지한다. 동쪽으로 영산강의 본류가 흐르고, 서쪽으로는 영산강의 지류인 풍영정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불태산과 주변으로 넓은 충적지가 펼쳐져있다. 조사 결과, 집자리 11기, 고인돌 1기, 움무덤 1기, 구덩이 5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형태 방형 8기, 원형 3기로 모두 집자리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을 갖춘 송국리식이며 면적은 6~18㎡이다. 야트막한 구릉 정상과 사면에 위치하고, 2~4기씩 군집한다.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 벽 도랑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토기류 23점, 석기류 39점이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민무늬 토기 편만 확인되어 전체적인 기형을 파악하기 어렵다. 석기는 간 돌검, 간 돌살촉, 돌칼(石刀),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숫돌(砥石), 갈판(碾石),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구릉 정상 해발 52.8m에 단독으로 위치한다. 덮개돌(上石) 평면 형태는 부정형이고, 장축 방향은 북동-남서이다. 무덤방(墓室)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으로 장축 방향은 동-서이며, 관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고인돌은 이동된 것으로 보이며, 축조 방식을 살펴보면 장방형으로 무덤 구덩이를 넓게 굴착한 후 무덤방을 마련하고 그 위에 작은 석재와 흙으로 채운 후, 상석에 버금가는 크기의 판판한 덮개돌 1매로 덮었다. 출토 유물은 무덤방 내부에서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민무늬 토기,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움무덤은 구릉 동쪽 사면에서 1기가 확인되었으며, 장축은 등고선과 평행하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으로 길이 1.57m, 너비 0.71m, 깊이 0.36m이다. 무덤방 내부에는 양 끝 벽 쪽에 인접해 깬돌이 놓여 있는데 북쪽 짧은 벽은 장방형의 석재를 길게 바닥면에 의도적으로 놓고 그 주위에 깬돌로 채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살촉 2점이 확인되었다.

삼태리 유적의 송국리식 집자리는 구릉의 가장 높은 지점에 1호 고인돌을 중심으로 동심원상에 분포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고인돌과 집자리와의 관계는 고인돌에서 골아가리 토기가 출토된 사실로 볼 때, 집자리 보다는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송국리식 집자리 집단이 들어오기 전에 고인돌이 덮개돌이 덮인 상태였으므로 이를 중심에 두고 바깥쪽으로 집자리들을 축조하였다. 1·5호 집자리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460±40 BP, 2410±40 BP, 2500±40 BP 등으로 보정 연대 기원전 6~4세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13년 8월 12일~2013년 10월 22일 장성 삼태리 유적 2016 호남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