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평동 양지 고인돌군[麗水 美坪洞陽地支石墓群]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여수 미평동 양지 고인돌군, 여수 미평동 양지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미평동 723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집자리, 토기 가마, 돌방무덤, 자루 간 돌검, 민무늬 토기, 손칼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조진선 |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미평동 723 일원에 위치한다. 여수시에서 개발하는 택지 개발 지구에 포함되어 1993~1994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 주변에서 원삼국 시대 집자리와 토기 가마(窯址), 삼국 시대 돌방무덤(石室墓)이 함께 조사되었다. 유적이 입지하는 미평동은 해발 300m 내외의 산지 사이에 형성된 해발 50m 정도의 분지성 곡간 평지에 있다. 고인돌은 해발 75m 정도의 경사면에 위치하는데 마을이 들어서고 밭으로 경작되는 지역이지만 지형상 산기슭에 해당된다. 고인돌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경사면에 5기가 있었는데 2호와 4호만 제자리에 가까울 뿐 나머지는 모두 이동되었다.
덮개돌(上石)은 무게 1~7톤 정도의 소형이며 평면 장방형을 띠는 것이 많다. 받침돌(支石)과 묘역 시설(墓域施設)의 존재 여부는 하부 시설(下部施設)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2호와 4호로 보아 받침돌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며 묘역 시설도 거의 없거나 땅 위에 한두 겹으로 깐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돌(蓋石)의 존재 여부도 알 수 없다.
가장 잘 남아 있는 4호 고인돌도 덮개돌이 남서쪽으로 밀려 있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크기는 길이 2.1m, 너비 1.37m, 두께 0.89m이고, 무게는 4톤이다. 돌덧널(石槨)은 덮개돌의 북쪽 들린 면 아래에서 확인되었는데 편평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지만 일부만 남아 있다. 크기는 추정 길이 1.5m, 너비 0.38m, 잔존 깊이 0.17m이다. 바닥은 자연석을 전면에 깔았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서북서-동남동이다. 무덤방 중앙의 북벽 쪽에서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칼끝을 서쪽으로 향한 채 출토되었다. 2호는 이미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민무늬 토기 편과 함께 손칼(刀子), 두드림무늬 토기(打捺文土器) 편이 수습되어 삼국 시대 돌방계(石室系) 무덤으로 전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인돌은 곡성 연화리, 광주 매월동 동산 고인돌에서도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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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1993년 3월 | 여수 미평동 양지 유적 | 1988 | 전남대학교박물관 |
| 발굴조사 | 1993년 12월 30일~1994년 2월 2일 | 여수 미평동 양지 유적 | 1988 | 전남대학교박물관 |
참고문헌
- 전남대학교박물관. (1998). 여수 미평동 양지 유적. https://www.riss.kr/link?id=M71611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