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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토기 가마[新石器時代土器窯]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13:09 판 (dkamaster 800-0215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신석기 시대 토기 가마
기본 정보
동의어 토기요
시대 신석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키워드 돌더미 유구, 야외 화덕 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배성혁



설명

토기 가마는 ‘흙으로 만든 토기에 강한 화력을 가해 새로운 물질인 세라믹으로 변화시키는 시설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0,0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토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가마의 역사도 이와 함께 시작되었다. 신석기 시대에는 다양한 무늬를 새기거나 안료를 칠하여 토기를 아름답게 꾸몄다. 땅을 약간 파서 만든 구덩이에 돌이나 나무를 깔고 그 위에 흙으로 만든 토기를 놓은 후 600~900℃의 강한 불로 구우면 토기가 완성된다. 토기가 구워지고 식는 과정에서 공기에 노출되면 표면에서 산화(酸化) 작용이 일어나는데, 그 결과 토기는 대부분 연한 붉은색이나 황갈색을 띤다.

신석기 시대에는 토기를 야외에서 제작했는데, 야외에서 토기를 굽던 시설을 ‘한뎃가마[露天窯]’라고도 부른다. 유적에는 강한 불을 피운 흔적이 있는 크고 작은 구덩이와 돌무더기, 야외 화덕 자리 등이 남아 있는데, 이 공간들은 먹거리의 훈연과 조리, 섬유 가공 등에 다용도로 사용되었다. 그중에서도 화재의 위험성을 덜도록 마을과 분리된 곳에 있고 구조상 높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반복적인 소성 실험으로 적합성이 검증된 곳을 토기 가마로 볼 수 있다. 가마인지 화덕 자리인지 논란이 있지만, 신석기 시대 토기 가마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50여 기가 조사되었다. 대부분 마을 유적에서 여러 기가 확인된다.

가마는 형태나 소성 기술 면에서 보면, 크게 신석기 시대 중기 이전과 후기로 구분한다. 중기 이전의 가마는 타원형이나 원형이며, 개방식 소성법이 적용되었다. 지름은 2~6m, 깊이는 0.2m 정도인 큰 구덩이 안에 돌과 목탄이 많이 채워진 상태로 확인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양양 오산리 유적·지경리 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하남 미사리 유적, 강릉 초당동 유적·하시동 유적, 김천 송죽리 유적, 진안 진그늘 유적이 있다. 후기 가마는 타원형, 장방형, 부정형, 도랑형[溝狀形] 등 형태가 다양하다.

후기에도 순창 원촌리 유적이나 합천 봉계리 유적 등에서는 이전의 전통을 이어가는 한편, 한반도 남부 내륙 지역의 김천 지좌리 유적진주 평거동 유적 3-1지구에서는 한 단계 발전한 가마가 발견된다. 가마는 길이 3.8~8.9m, 너비 1.2~1.7m, 깊이 0.3~0.65m인 도랑형이며, 마지막 단계에 풀이나 잔가지를 이용하는 초보적인 덮개식[被覆式] 소성법을 적용한다. 내부에 목탄만 가득 찬 상태로 발견된다. 좁고 길쭉한 도랑형 가마는 구조적으로 불 조절이 용이하여 열 손실을 방지하고 연료를 절감할 수 있으며, 소성 시간도 단축되어 전체적으로 경비 절감 효과가 높다.

한편, 북한 대동강 유역에서 확인된 후기의 평양 표대 유적의 가마는 매우 발전적인 형태를 보인다. 1호 가마는 깊은 구덩이를 파고 돌을 쌓아 방형 소성실과 원형 연소실을 간벽(間壁)으로 분리한 구조이다. 간벽 아래쪽에는 아궁이를 내고 널돌[板石]로 막았으며, 소성실의 천장은 풀과 진흙을 섞어 덮었다. 2호 가마는 깊은 구덩이 위쪽을 따라 돌을 쌓아 둘렀으며, 위가 좁은 플라스크 모양으로 중국 양사오(仰韶) 문화의 반포(半坡) 유적에서 확인된 만두 모양의 구덩식[竪穴式] 가마 계통일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 전기에는 초본 식물류를 사용한 덮개식 소성법을 사용하다가, 후기에는 볏짚 위에 점토를 발라 일회성 천정을 만들어 굽는 중국 윈난성(雲南省) 솽반나(雙版納) 지역의 가마와 유사한 소성 방식으로 발전한다. 이 전통은 초기 철기 시대까지 이어진다. 오늘날 평요(平窯)와 같이 완전히 밀폐하는 고정식 가마는 원삼국 시대에 들어서야 사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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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