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춘 유형(尹家村類型)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윤가촌 유형(尹家村類型)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지역 | 랴오둥반도 남부 지역 |
| 관련 정보 | |
| 유적 | 인자춘 유적, 쉬자거우 유적, 허우위안타이 유적 |
| 키워드 | 세형동검 문화, 움무덤, 돌무지널무덤, 독무덤, 중위안 문화, 인자춘식 토기, 인자춘식 동검, 부형 토기, 주조 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후석 |
설명
인자춘 유형은 중국 랴오둥반도 남부 지역에서 유행했던 초기 철기 시대의 지역 문화 개념이다. 대표 유적인 다롄 인자춘 유적을 기준으로 설정하였으며, 세형동검 문화의 하위 유형으로 볼 수 있다. 토착적인 청동 단검 문화를 바탕으로 여러 계통의 중위안 문화 요소들이 일부 복합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인자춘 유형의 유적은 다롄 일대를 중심으로 랴오둥반도의 남해안과 도서 지역에 분포한다. 북한 서부 지역과 중국 산둥 지역에 관련 유적이나 유물이 확인되어 이들 지역과도 밀접하게 교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여러 성격의 유구가 확인되는 다롄 인자춘 유적을 비롯하여 이른 시기의 창하이 쉬자거우 유적, 늦은 시기의 푸란뎬 허우위안타이 유적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무덤은 움무덤(土壙墓),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독무덤(甕棺墓)이 있다. 보고서에서 돌무덤(石墓)이나 돌덧널무덤(石槨墓)으로 보고된 돌무지널무덤은 나무널(木棺)의 주변이나 위에 돌무지(積石)나 채움돌(充塡石)이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무덤의 대부분은 주축 방향이 동서이고, 머리 방향은 동쪽이다. 껴묻거리는 머리쪽과 상반신에 주로 부장되어 있다. 이러한 다롄 인자춘 유적 1기(28M3)와 2기(64M12, H11)의 출토 유물 돌무지널무덤의 구조는 랴오시 지역의 둥다장쯔 유형(東大杖子類型) 무덤이나 랴오중 지역의 정자와쯔 유형(鄭家窪子類型) 무덤에서 더 이른 시기의 것이 확인되고 있어 이를 통해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독무덤은 인자춘 4호 무덤(63M4), 3호 무덤(28M3) 등이 확인된다. 특히 3호 무덤은 연나라 계통의 합구식(合口式)이지만, 무문 토기 대호(大壺)와 한식(漢式) 단경호(短頸壺)가 함께 사용되어 토착 문화와 중위안 문화의 복합 양상을 보여준다.
인자춘 유형의 유물에는 토기류와 무기와 공구 등의 청동기가 있다. 토기류는 토착 기종을 바탕으로 일부 연국 계통의 기종이 조합을 이루는 점이 특징이다. 이전 단계부터 사용되던 이중 구연 발과 새로운 기종인 관(罐), 장경호, 대호, 두형 토기(豆形土器)가 확인된다. 특히 둥근 봉상파수(棒狀把手)가 달린 대호는 ‘인자춘식 토기’로 부르기도 하며, 북한 서부지역으로 전해져서 ‘명사리식 토기’로 변천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두형 토기는 대개 홀수 부장되며, 원형이나 장방형의 구멍이 뚫린 것이 특징이다. 부호가 새겨진 연나라 계통의 두형 토기도 출토되었는데, 연나라의 중심지인 옌샤두(燕下都) 출토품과 비슷하여 연대 추정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청동 무기에는 토착계의 세형동검이 주로 확인되며, 랴오닝식 동과(遼寧式銅戈)나 랴오닝식 동모(遼寧式銅鉾)는 확인되지 않는 대신 중위안계(中原系)의 유병식 동검(有柄式銅劍)이나 동과, 동모 등이 함께 출토되는 예가 확인된다. 세형동검은 양쪽 날이 전체적으로 곧고, 검몸 아래쪽의 날이 약간 오목하게 처리되어 있는 점이 특징으로 ‘인자춘식 동검’으로 불리기도 한다. 랴오시 지역에서 등장하여 랴오둥반도로 전해졌다. 유병식 동검은 산둥이나 중위안 지역의 출토품과 같은 형식도 보이지만, 납작한 단면의 검병은 랴오둥 현지 장인이 본 떠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공구에는 이전 단계의 선형 동부(扇形銅斧)를 대신하여 장방형 동부(長方形銅斧)가 확인된다.
인자춘 유형의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4세기대 후반과 기원전 3세기대 전반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일부 토기와 직인형의 세형동검이 랴오시 지역이나 랴오둥반도 북부지역에서 전국 후기 이전부터 확인된다는 점에서 기원전 4세기대가 설득력이 있다. 소멸 시기는 진한 교체기의 중위안 계통 청동 무기나 서한 초기 토기류가 확인되어 기원전 200년경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자춘 유형은 같은 시기 랴오둥 지역의 다른 지역 문화에 비해 중위안 계통의 문화 요소는 적지 않게 확인되어 과거에는 연의 요동군에 포함되는 지역의 문화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토착 계통의 무기류와 토기류가 지속되는 한편, 연나라 중심지와 제작 기법이 다른 부형 토기(釜形土器)와 주조 철기가 확인되는 점에 주목하여 이에 소속되지 않은 집단이나 고조선과 관련되는 지역 문화로 이해하는 견해가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