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리 유적(和順 白巖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화순 백암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백암리 355-3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돌무지널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세형동검, 청동꺾창, 검은 간 토기, 돌살촉, 고운무늬 거울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조진선 |
설명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백암리 355-3 일원에 위치한다. 2003년에 세형동검(細形銅劍)과 청동 꺾창(銅戈)이 발견매장문화재로 신고됨에 따라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긴급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1기와 송국리식 집자리 1기를 확인하였다. 백암리 일대는 구릉이 발달한 지역인데, 유적은 국사봉(해발 286.2m)에서 흘러내린 저평한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구릉 정상부는 해발 68m 정도이며, 평탄대지를 이루고 있다. 남서쪽으로 3.5㎞ 정도 떨어져 화순 대곡리 유적이 있다. 백암리와 대곡리 일대는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천 유역으로 하천을 따라 너비 1㎞ 내외의 충적 평지가 펼쳐져 있다.
돌무지널무덤은 남동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구릉 능선에서 북서쪽 사면으로 약간 내려온 지점에 위치해서 주변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민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심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에 극히 일부만 남아 있다. 무덤의 장축 방향은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북으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무덤 구덩이는 기반토인 황갈색 사질 마사토를 파고 만들었지만 대부분 파괴되었다. 남아 있는 규모는 길이 0.5m, 너비 0.4m, 깊이 1.46m이다. 무덤은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민묘 이장으로 생긴 구덩이 안에서 돌들이 많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 돌무지널무덤으로 추정된다. 세형동검과 청동 꺾창이 발견 매장 문화재로 신고되었으며, 긴급 발굴 조사에서 세형동검, 고운무늬 거울(精文鏡), 대롱옥(管玉), 돌살촉(石鏃), 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 등이 수습되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유물로는 세형동검 2점, 청동 꺾창 1점, 고운무늬 거울 1점이 있는데 이중 청동 꺾창 1점만 완형이고 나머지는 파편들이다.
집자리는 돌무지널무덤 주변에 대한 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의 평탄면에 자리하는데, 돌무지널무덤에서 남동쪽으로 30m 정도 떨어져 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고,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柱孔)이 설치되어 있는 송국리식이다. 집자리는 동일한 평면 형태를 개축하여 두 차례에 걸쳐 사용되었다. 아래층 집자리의 중앙에 있는 타원형 구덩이에서 홈자귀(有孔有溝石斧)와 숫돌(砥石)이 출토되었으며, 바닥면에서는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윗층 집자리는 아래층 집자리 바닥면에 0.07m 정도 황갈색 사질 점토를 다져 사용하였는데, 역시 송국리식 집자리로 추정된다. 집자리 퇴적토에서 약간의 숯과 석기를 제작하면서 떼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격지(剝片) 등이 다량으로 확인되었다. 돌 살촉, 찰절구(擦切具), 숫돌, 천하석제 둥근옥(丸玉)과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출토 되었다.
백암리 돌무지널무덤은 극히 일부만 남아 있지만 이 무덤에서 수습된 청동 꺾창이 국보 傳 영암 거푸집 일괄 유물에 있는 청동 꺾창 거푸집(鑄型)에서 생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傳 영암 거푸집 일괄은 원래 알려진 것처럼 영암에서 출토되었거나 적어도 영암과 화순을 포함하는 영산강 유역에서 출토되었을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이 유적에서 출토된 나머지 청동 유물들은 현재 남아 있는 傳 영암 거푸집 일괄과는 관련이 없다.
백암리 돌무지널무덤에서는 철기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철기가 유입되어 확산되는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백암리 유적은 기원전 2세기에 조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집자리 역시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편이 출토되어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