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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리 유적(北倉 大坪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13:15 판 (dkamaster 600-0641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대평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북창 대평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평안남도 북창군 대평리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돌 두름식 화덕 자리, 돌널무덤, 고인돌, 팽이 토기, 미송리식 토기, 침촌형 제4유형, 비취 구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평안남도 북창군 대평리에 위치한다. 1967년 사회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대평리는 북창읍에서 2㎞ 거리의 대동강 기슭으로 대동강이 서쪽으로 꺾이는 지점에서 양촌강이 합류한다. 유적은 대동강에 의해 형성된 삼각주(三角洲)에 입지하는데, 동쪽은 1지점, 서쪽은 2지점으로 부른다. 1지점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10기, 돌널무덤(石棺墓) 8기, 고인돌 2기가 확인되었고, 2지점에는 철기 시대의 집자리와 문화층이 있다.

집자리는 중복 관계에 있는 내부 시설에서 화덕 자리가 1기 있는 것(1·5·9·102·105호)과 2기 있는 것(2·3·101·103호)으로 나누어 시기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집자리 2·3·9호는 차례로 축조되어 있는데, 9호에는 화덕 자리가 1기, 나머지는 2기가 있다. 5호는 남북을 장축으로 하는 평면 장방형으로 길이 8m, 너비 4.85m, 깊이 0.3m이다. 서벽 일부에 반원형의 작은 돌출부가 있고 내부에는 벽 가까이 작은 기둥 구멍이 1~2기 있다. 중앙에서 약간 북서편으로 치우친 곳에 돌 두름식(圍石式) 화덕 자리가 1기 있다. 2호도 남북 방향으로 장축을 두었고 평면 형태도 장방형으로 길이 10m, 너비 5.3m, 깊이 0.1m이다. 내부 바닥에 주춧돌(礎石)을 4개씩 3열 배치하고, 중앙에 큰 화덕과 그로부터 북쪽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작은 화덕을 설치하였는데 모두 돌 두름식이다. 103호는 길이 8.5m 너비 5m, 깊이 0.4m로 주춧돌이 없으며 바닥 중심선과 그 양 벽면에 1줄씩 3열의 기둥 구멍이 있다. 화덕은 큰 것이 중앙 가까이에 있고 작은 것은 북벽 가까이에 있는데 돌 두름식이며 작은 것은 바닥에 강돌을 깔았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출토량이 적은데 밑굽 지름이 2~3㎝로 겹아가리(二重口緣)에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가 있는 전형적인 팽이 토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짧은 빗금무늬가 없이 꼭지 손잡이 달린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미송리식 토기가 출토되고 목 달린 큰 항아리가 없는 점 등이 전형적인 팽이 토기 집자리와는 다르다. 석기류는 갈판(碾石),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물고기 모양(魚形) 반달 돌칼, 돌도끼, 돌끌(石鑿), 돌낫(石鎌),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달도끼(環狀石斧), 숫돌(砥石), 돌돈(石貨), 돌창끝(石槍), 가락바퀴, 그물추, 돌탄환(石球) 등 다양하다.

돌널무덤은 모두 짜임새가 같으나 바닥 시설에서 차이가 있다.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뚜껑돌(蓋石)을 덮고 긴 벽은 큰 판돌, 짧은 벽은 작은 판돌을 세워 축조하였다. 바닥에는 자갈을 깐 것, 판돌을 깐 것, 판돌을 깔고 그 위에 자갈을 편 것 등이 있다. 1호는 길이 1.17m, 너비 0.5m 크기로 바닥은 0.2m 두께로 잔자갈을 깔았고, 4호는 길이 1.85, 너비 0.65m, 깊이 0.8m로 바닥에 판돌을 깔았다. 7호는 가장 큰 뚜껑돌(蓋石)을 가졌고 돌널의 긴 변도 1.9m의 판돌을 이용하였는데 바닥에는 판돌을 깔고 그 위에 잔자갈을 깔았다. 모두 머리를 동쪽으로 두었다. 껴묻거리는 피 홈(血溝)이 있는 간 돌검, 간 돌살촉, 미송리식 토기, 천하석(天河石)으로 만든 곱은옥(曲玉), 대롱옥(管玉) 등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층위 관계로 볼 때 화덕이 1기인 102·105호 등의 집자리와 같은 시기에 쓰던 무덤이다.

고인돌은 모두 변형 고인돌인 침촌형 제4유형이며, 5호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길이 1.8m, 너비 1.8m이다. 뚜껑돌 아래에 판돌로 받침돌(支石)과 막음돌(閉塞石)을 세워 무덤방(墓室)을 만들고 바닥은 강돌로 깔아 축조하였다. 돌널 주변에 방형의 묘역 시설(墓域施設)을 확인하였다. 북쪽 받침돌 윗부분 양쪽 가장자리에 반원형으로 떼어낸 부분이 있다. 이러한 홈자리는 연탄 신흥리(두무리), 오덕리 고인돌에서도 볼 수 있다. 껴묻거리로는 미송리식 토기와 비취 구슬(翡翠玉)이 나왔다. 3호의 무덤방은 길이 1.8m, 너비 1.8m, 깊이 0.2~0.3m로 큰 강돌을 두겹으로 쌓아 만든 돌덧널형(石槨形)이며, 그 위에 길이 4.8m, 너비 4.3m, 두께 0.15m의 뚜껑돌을 덮었다. 출토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고인돌의 축조면은 집자리 어깨선을 기준으로 당시에 지상에 무덤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층위 관계로 보아 돌널무덤 보다는 늦은 시기의 무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