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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서부 지역의 신석기 마을[韓半島中西部地域의 新石器聚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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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20일 (화) 12:33 판 (dkamaster 800-0238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설명

한반도 중서부 지역은 대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을 비롯하여 그 해안 지대를 포괄한다. 이 지역은 일찍이 북한에서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신석기 시대 편년을 시작했으며, 궁산 문화 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중서부 지역은 한반도 내에서도 신석기 시대 마을 유적 조사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곳이다. 세부적으로는 대동강·황해도 지역과 중부 내륙 지역, 중부 서해안 지역, 충청 내륙 지역으로 구분된다.

대동강·황해도 지역은 행정구역상으로 황해도와 평안남도에 해당하며, 청천강 유역 이남부터 예성강 유역과 마식령산맥 이북에 이른다. 대동강·황해도 지역에서는 1950년 온천 궁산 유적을 시작으로 신석기 마을이 조사되기 시작하였다. 신석기 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집자리는 대부분 평면이 원형과 방형인데, 온천 궁산 유적은 원형이며 봉산 지탑리 유적·마산리 유적은 대부분 방형이다. 중기에는 원형과 방형도 남아 있지만, 정형화된 장방형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청단 소정리 유적에서 조사된 중기 집자리는 모두 장방형이며, 돌출된 복도식의 출입구 시설과 내부 공간이 분할되었던 흔적이 확인된다. 후기의 집자리 역시 중기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장방형인데, 중기보다 규모가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출입구 시설은 일부에서만 확인되는데, 전기에는 반원형으로 돌출된 구조나 내부 계단의 형태를 띤다. 후기 집자리의 출입구 시설은 길게 돌출된 복도식의 구조가 되고 평면 형태도 변화하여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대동강·황해도 지역 집자리에는 내부에 토기를 거꾸로 박아 놓은 저장 구덩이가 설치된다. 저장 구덩이는 온천 궁산 유적과 봉산 지탑리 유적․마산리 유적 등에서 확인되며, 그 외에는 중부 내륙 지역의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만 확인되는 특징적인 내부 시설이다.

중부 내륙 지역은 예성강과 마식령산맥 이남으로 임진강과 한강의 중류 지역과 상류 지역에 해당한다. 1968년 서울 암사동 유적이 조사되면서 중부 내륙 지역에 자리했던 대규모 마을의 전모가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내부 시설인 화덕 자리는 서울 암사동 유적과 연천 삼거리 유적 같은 전기의 유적에서는 모두 돌두름식[圍石式]이며, 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에서는 구덩식[竪穴式]으로 시기에 따른 구조 변화가 관찰된다. 암사동 유적과 삼거리 유적에서 확인되듯 전기 유적의 기둥 구멍은 대부분 4주식(4柱式)의 기둥 배치를 보이며, 후기 유적에서는 기둥 구멍이 확인되지 않거나 불규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입지도 당시의 생업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시기별로 달라진다. 전기의 유적은 강 주변의 충적 대지에 위치하는 반면, 후기 유적은 대부분 구릉지에 위치한다. 중부 내륙 지역에서도 북한강과 남한강 유역의 집자리 유적은 대부분 중기 이후의 유적인데, 대개 강가의 충적 대지에 위치하며, 그렇지 않다면 동굴이나 바위 그늘을 활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부 서해안 지역은 경기도와 충청남도 북부 지역의 해안과 섬 지역으로 한강 하류와 차령산맥 이북 지역, 경기만과 아산만 일대를 모두 포함한다. 큰 조수간만의 차, 넓은 갯벌, 리아스식 해안 등의 지형적 영향으로 조개류가 풍부해지는 등 생업에 유리한 지역이다. 2000년 이후 섬과 해안 지역에서 마을이 다수 조사되면서 마을 연구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세부적으로는 충청남도 북부 해안 지역과 경기도 해안 지역으로 구분된다.

신석기 시대 전기의 유적으로는 인천 운서동 유적이 대표적이다. 집자리는 대부분 평면이 방형이며, 장방형과 원형도 일부 확인된다. 한 변의 길이가 4∼6m로 중기의 집자리보다 상대적으로 크다. 구덩식 화덕 자리가 집자리의 중앙에 위치한다. 기둥 구멍은 4주식이 기본이며, 벽 가장자리에 배열하는 양상도 일부 관찰된다. 출입구 시설은 일부에서 확인되는데, 모두 돌출 구조이다. 특히 대부분의 집자리에서 내부 공간을 확장한 듯한 단 시설이 대부분 확인되는데, 이러한 구조는 다른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중부 서해안 지역의 전기 혹은 운서동 유적의 특징적인 양상으로 파악된다.

신석기 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집자리는 방형에 4주식 기둥이 설치되거나 4주식에 보조 기둥이 배치된 구조를 띠며, 화덕 자리는 집자리의 중앙에 구덩식으로 설치되어 있다. 규모도 한 변의 길이가 3~5m 내외로 대부분 중소형에 해당한다. 앞 시기에는 방형이 주류였던 것과 달리 중기 이후의 집자리는 방형, 원형, 장방형 등 다양한 형태를 띠며, 규모는 지름 3~5m 내외의 중소형과 한 변의 길이가 6~9m 내외인 중대형이 혼재된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과 돌두름식이 모두 확인되나, 구덩식과 돌두름식이 동시에 확인되는 일부 집자리에서는 구덩식이 돌두름식보다 선행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중부 서해안 지역의 화덕자리는 구덩식에서 돌두름식으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충청 내륙 지역(금강 유역)은 금강을 중심으로 충청남도, 충청북도와 전라북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며, 대개 차령산맥 이남에서 노령산맥 이북에 해당한다. 1990년대 이후에 옥천 대천리 유적을 비롯하여 대전 관평동 유적, 보령 관창리 유적, 홍성 상정리 유적·송월리 유적, 공주 신관동 유적, 계룡 용동리 유적, 청원(현재의 청주) 영하리 유적에서 집자리가 조사되었다. 이 지역의 신석기 시대 집자리는 대부분 중기에 해당하며, 집자리의 구조와 입지, 내부 공간 활용에서 많은 공통점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집자리는 ‘대천리식 집자리’로 불리는데, 평면은 대부분 장방형이며, 장축 길이가 7~10m로 다른 지역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 집자리의 방향이 등고선과 나란하게 조성되며, 대부분 구릉 지역의 정상부에 단독으로 존재한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이며, 생활 공간의 중앙에 위치한다. 돌출된 출입구 시설이 있으며, 내부 공간을 분할하는 특징이 있다. 구릉상에 1기나 2기만이 존재한다.

전기에 해당하는 대동강·황해도 지역의 마을 유적 중 봉산 마산리 유적은 집자리의 규모나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은 방형 집자리로 구성되어 있고, 배치상의 정형성 없이 집자리가 2∼3기씩 모여 있다. 기본적으로 2∼3기를 단위로 하는 소군집의 병렬 배치 구조가 전체 마을을 관통하며, 모여 있는 2∼3기의 집자리가 생산과 소비를 공유하는 하나의 단위(세대)를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배치는 서울 암사동 유적이나 양양 지경리 유적, 진주 상촌리 유적 등에서도 확인된다.

중부 내륙 지역의 서울 암사동 유적은 한강의 충적 대지에 조성된 대규모 마을 유적으로 30여 기의 집자리를 비롯하여 야외 화덕 시설, 구덩이, 토기 가마로 추정되는 시설 등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2∼3기씩 모여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길게 늘어선 열상(列狀) 배치를 띠기도 한다. 또한 암사동 유적은 주거 공간과 토기 생산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즉, 주거 공간은 충적 대지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으며, 토기 생산 공간은 그 남동쪽의 일정한 범위에서만 확인되어, 유구 성격별로 분리하여 공간을 배치하였다. 중부 서해안 지역의 인천 운서동 유적의 마을 구조는 열상 배치로 판단하거나 집자리의 출입구 시설과 지형적 여건을 고려하여 총 9개의 군집으로 파악한 연구가 있는데 열상 배치를 기본으로 구성된 마을 유적으로 보인다.

중서부 지역의 신석기 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유적 중에서는 마을 구조를 유추해 낼 수 있는 유적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중기 마을 유적 중에서 가장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 지역은 충청 내륙 지역과 중부 서해안 지역이다. 중부 서해안 지역 중 경기 해안 지역에서는 인천 삼목도 유적, 안산 신길동 유적, 시흥 능곡동 유적 등 20여 기 이상의 대규모 마을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반면 충남 해안 지역에서는 서산 기지리 유적, 당진 우두리 유적, 아산 장재리 유적·성내리 유적·백암리 점배골 유적 등 3∼5기의 소규모 마을 유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두 지역의 마을 규모에서 뚜렷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대규모 마을을 이루는 유적에서는 열상 배치나 대군집 형태의 집자리 배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안산 신길동 유적과 인천 삼목도 유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의 시흥 능곡동 유적과 용인 농서리 유적에서는 기본적으로 열상 배치만 했다. 즉, 중부 서해안 지역의 마을 구조는 경기 해안 지역에서는 열상 배치하거나 대군집의 형태를 유지하는 대규모 마을이었으나, 충남 북부 해안 지역에서는 3∼5기의 소군집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후기에 해당하는 중서부 지역의 유적 중 마을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은 많지 않다. 대동강·황해도 지역의 평양 표대 유적·남경 유적·금탄리 유적, 중부 서해안 지역의 인천 을왕동 유적·중산동 유적·운북동 유적 정도에서 마을 구조를 유추할 수 있다. 대동강·황해도 지역의 평양 표대 유적·남경 유적·금탄리 유적은 규모가 작은 집자리와 큰 집자리가 공존하지만, 배치에서는 뚜렷한 특징을 확인하기 어렵다. 중서부 지역의 말기의 마을은 2∼3기의 집자리가 소군집을 이루거나 1∼2기가 산재한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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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구자진, 배성혁. (2009). 한국의 신석기시대 집자리. 예맥.
  • 구자진. (2010). 한국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와 마을 연구. (박사 학위 논문). 숭실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2885018
  • 소상영. (2013) 한반도 중서부 지방 신석기 시대 생계 주거 체계 연구. (박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3237817
  • 임상택. (2006). 한국 중서부지역 빗살무늬토기문화 연구: 문화변동과정을 중심으로. (박사 학위 논문). 서울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0318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