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동 유적(富川 古康洞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부천 고강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산90(A지구), 산98(C지구)과 작동 산3(B지구) 일대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돌무지 유구, 환구, 제사 유적, 둥근 덧띠 토기, 반달 돌칼, 돌창, 골아가리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강병학 |
설명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산90(A지구), 산98(C지구)과 작동 산3(B지구) 일대에 위치한다. 1995년 여름 홍수로 유물(반달 돌칼, 돌창)이 부천시에 신고되었으며, 학술 조사의 일환으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7차례 발굴 조사하였다. 일대는 낮은 구릉지 사이로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유적은 구릉 정상부의 평탄지에 입지한다.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경인고속 도로 북쪽(A지구) 해발 68.9m의 주 능선부를 따라 집자리 11기가 조사되었으며, 남쪽(B지구) 해발 91.6m의 구릉에서 집자리 10기,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는 돌무지 유구(積石遺構), 환구(環溝)가 조사되었다. 이 외에 A·B지구에서 삼국(통일 신라)시대의 돌덧널무덤(石槨墓) 13기를 비롯하여 조선 시대 건물터, 움무덤(土壙墓) 등이 확인 되었으며, C지구 해발 50m 구릉부에서 추정 집자리와 돌무지 유구 등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구릉 정상의 평탄대지 혹은 사면에 입지하며,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는 등고선과 직교한다.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 방형, 말각 방형이며, 가장 큰 13호는 길이 19m, 너비 4m, 깊이 0.4m이다. 대부분의 면적은 20~30㎡의 범위에 속하지만 7·10·13호와 같이 60㎡가 넘는 대형도 있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일부는 점토로 다졌다. 화덕 자리가 발견된 집자리는 7·8·10·14·15·17·18·20호인데 대부분 바닥을 그대로 사용한 무시설식(無施設式)이거나 약간 굴토하여 사용한 구덩식(竪穴式)이다. 그러나 14호는 파괴가 심하지만 돌 깐 돌 두름식(石床圍石式)으로 추정되며, 18호는 벽부식(壁附式) 화덕 자리로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편만 출토되었다. 그 외 기둥 구멍은 1·2·13호에서 확인된다.
유물은 토기류의 경우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붉은 간 토기 등의 민무늬 토기가 대부분이나 둥근 덧띠 토기 편, 긴 목검은 간 토기(黑陶長頸壺) 편과 손 잡이(把手)가 출토된 경우(7·10·15·16·17·18·20호)도 있다. 석기는 물고기 모양(魚形) 및 배 모양(舟形)의 반달 돌칼, 달도끼(環狀石斧), 별도끼(星形石斧), 가락바퀴, 간 돌도끼,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통 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통슴베 돌창(一段莖式石槍), 돌끌(石鑿), 슴베 간 돌살촉(一段·二段莖式磨製石鏃), 슴베 없는 간 돌살촉(三角灣入石鏃) 등과 옥으로 만든 장신구, 흙으로 만든 그물추(漁網錘) 등 매우 다양한데, 그 중 9기의 집자리(1·5·6·7·9·10·11·13·15호)에서 반달 돌칼이 출토되었다.
돌무지 유구는 해발 91.6m의 B지구 정상부에 위치한다. 중심에 돌무지 시설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단면 반달 모양의 도랑(溝)이 돌아간다. 돌무지는 남북 6m, 동서 6m의 방형으로 중심부와 가장자리의 높이는 약 0.4~0.5m의 차이를 두고 중심부가 다소 볼록한 형태이다. 하부 토층의 양상과 토층에서 출토되는 민무늬 토기 편으로 보아 돌무지 유구는 원 지형 위에 쌓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성토(盛土)한 것으로 판단된다.
환구는 돌무지 유구를 중심으로 산사면을 따라 일정하게 도랑이 원형으로 돌아가며, 지름은 약 30m 내외이다. 북쪽으로는 소규모의 휘어진 도랑이 두 겹으로 돌아가고 있다. 도랑의 서쪽 일부는 끊어져 있어서 출입구 시설로 추정된다. 돌무지 유구의 중심에서부터 환구까지의 거리는 약 10m 내외로 정형성을 보이고 있으며, 작은 도랑을 제외한 도랑의 총 길이는 약 63m이다. 전체적인 도랑의 단면은 ‘U’자 모양으로 깊이는 약 0.8~1m이다. 돌무지 유구에서는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고 환구에서는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둥근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豆形土器), 고리 모양 손잡이(環狀把手) 편 등이 출토되었다.
고강동 유적의 집자리는 전체적으로 한강 유역에 나타나는 청동기 및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와 공통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주목할 것은 돌무지 유구와 환구이다. 이 유구는 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입지적 특성과 굽다리 토기가 출토되며 도랑의 바닥면에 붙탄 흙(燒土)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제사 유적(祭祀遺蹟)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산 정상부에 취락 공동의 제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공장소가 위치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사면을 따라 집자리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원형 도랑 윗층인 흑갈색 부식토에서 수습된 목탄의 연대는 1750±80 BP(보정 연대 기원후 110~450년)이고 집자리 10호 는 269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30~790년), 12호 2910±70 BP(보정 연대 기원전 1310~900년), 13호 2830±60 BP, 2680±80 BP, 286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10~890, 920~790, 1120~930년), 14호 284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30~900년)로 도출되었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1996년 07월 10일~1996년 09월 19일 |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 1996 | 한양대학교박물관,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
| 발굴조사 | 1997년 08월 19일~1997년 11월 04일 |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제2차 발굴조사보고서 | 1998 | 한양대학교박물관,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
| 발굴조사 | 1998년 09월 19일~1998년 11월 21일 |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제3차 발굴조사보고서 | 1999 | 한양대학교박물관,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
| 발굴조사 | 1999년 08월 05일~1999년 10월 27일 |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제4차 발굴조사보고서 | 2000 | 한양대학교박물관,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
| 발굴조사 | 2002년 05월 26일~2002년 08월 22일 |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제5차 발굴조사보고서 | 2002 |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
| 발굴조사 | 2003년 11월 12일~2004년 03월 20일 |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제6차 발굴조사보고서 | 2004 |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
| 발굴조사 | 2004년 11월 17일~2005년 05월 20일 |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제7차 발굴조사보고서 | 2005 |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