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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18-26, 333-1, 353, 476, 497-8, 744에 위치한다. 오수중계 펌프장 건립으로 울산문화재연구원이 2001년 조사하여(백천 유적), 논(水田)을 확인하였다. 이후 울산 상업고등학교 이설(굴화리 장검 유적Ⅰ) 및 농산물 저장 시설 건립(굴화리 장검 유적Ⅱ)으로 2003·2004년 [[집자리|집자리]] 26기, [[구덩이|구덩이]] 5기, [[구|도랑(溝)]] 3기를 확인하였다.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는 부산-울산간 고속 도로 개설로 2005년 조사하여(굴화리·율리 유적), 굴화리 유적에서 집자리 24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1기를 확인하였다. 울산문화재연구원은 아파트 신축으로 2006년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여(굴화리 생기들 유적), 집자리 2기, 도랑 2기, 구덩이 2기, 경작 유구(耕作遺構) 1기를 확인하였다.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서는 하수종말 처리 시설 건립으로 2010년 조사하여(굴화리 백천들 유적), 집자리 35기, 구덩이 13기, 도랑 29기, [[굴립주건물|기둥 건물(堀立柱建物)]] 1기, 기둥 구멍군(柱穴群), 큰 도랑(流路) 1개소 등을 확인하였다. 굴화리는 태화강이 울산 시내로 접어드는 길목에 위치하며, 하천 주변에 비옥한 토지가 형성되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한다. 특히, 울산 시가지에 비해 개발이 늦어져 원 지형의 훼손이 적어 유적의 상태가 양호하다. 유적은 반경 500m 거리에 분포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18-26, 333-1, 353, 476, 497-8, 744에 위치한다. 오수중계 펌프장 건립으로 울산문화재연구원이 2001년 조사하여(백천 유적), 논(水田)을 확인하였다. 이후 울산 상업고등학교 이설(굴화리 장검 유적Ⅰ) 및 농산물 저장 시설 건립(굴화리 장검 유적Ⅱ)으로 2003·2004년 [[집자리|집자리]] 26기, [[구덩이|구덩이]] 5기, [[구|도랑(溝)]] 3기를 확인하였다.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는 부산-울산간 고속 도로 개설로 2005년 조사하여(굴화리·율리 유적), 굴화리 유적에서 집자리 24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1기를 확인하였다. 울산문화재연구원은 아파트 신축으로 2006년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여(굴화리 생기들 유적), 집자리 2기, 도랑 2기, 구덩이 2기, 경작 유구(耕作遺構) 1기를 확인하였다.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서는 하수종말 처리 시설 건립으로 2010년 조사하여(굴화리 백천들 유적), 집자리 35기, 구덩이 13기, 도랑 29기, [[굴립주건물|기둥 건물(堀立柱建物)]] 1기, 기둥 구멍군(柱穴群), 큰 도랑(流路) 1개소 등을 확인하였다. 굴화리는 태화강이 울산 시내로 접어드는 길목에 위치하며, 하천 주변에 비옥한 토지가 형성되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한다. 특히, 울산 시가지에 비해 개발이 늦어져 원 지형의 훼손이 적어 유적의 상태가 양호하다. 유적은 반경 500m 거리에 분포한다.


[[울주굴화리백천유적|백천 유적(굴화리 476)]]의 논층은 산화철과 망간의 집적 분리층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이질토의 혼입과 상면(上面)에서 배수구(排水溝)로 추정되는 도랑(上面溝)이 확인되어 경작층으로 판단하였다. 다만, 이후 자료의 증가로 도로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상면 도랑은 내부에 황갈색 세력(細礫)이 채워져 있었고, 너비는 0.2~0.3m이며, 넓은 곳은 0.4~0.8m, 깊이는 2m이다. 경작층의 유기질 점토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46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588년)로 확인되었다.
'''백천 유적(굴화리 476)'''의 논층은 산화철과 망간의 집적 분리층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이질토의 혼입과 상면(上面)에서 배수구(排水溝)로 추정되는 도랑(上面溝)이 확인되어 경작층으로 판단하였다. 다만, 이후 자료의 증가로 도로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상면 도랑은 내부에 황갈색 세력(細礫)이 채워져 있었고, 너비는 0.2~0.3m이며, 넓은 곳은 0.4~0.8m, 깊이는 2m이다. 경작층의 유기질 점토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46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588년)로 확인되었다.


[[울주굴화리장검유적|굴화리 장검 유적(굴화리 333-1, 744)]]의 집자리는 대부분 장방형이며, 장검 유적Ⅱ에서 일부 세장방형, 방형이 확인된다. 가장 큰 집자리는 Ⅱ-8호로 길이 6.4m, 너비 5.4m, 깊이 0.7m이고, 가장 작은 집자리는 Ⅱ-1호로 길이 2.5m, 너비 2.0m, 깊이 0.2m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벽도랑|벽 도랑(壁溝)]], [[기둥구멍|기둥 구멍]] 및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이며, 대부분 한쪽 벽면에 치우쳐 1개씩 확인되었다. Ⅱ-3·5·23호는 화덕 자리를 이단으로 파고 설치하여 특징적이다. 벽 도랑은 대부분 네 벽 모두 설치하였는데 이 가운데 11기는 집자리 외부 모서리에 설치된 배수구에 연결된 구조이다. 배수구는 무시설식, 터널 모양(暗渠式) 등의 구조이다. 기둥 구멍은 4~8주식(柱式)으로 정형하며, Ⅱ-1·9·10·18호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외에 7·9·10·16·18·23호는 집자리 내부에 인위적으로 쌓은 돌무지(積石)가 확인되었다.
'''굴화리 장검 유적(굴화리 333-1, 744)'''의 집자리는 대부분 장방형이며, 장검 유적Ⅱ에서 일부 세장방형, 방형이 확인된다. 가장 큰 집자리는 Ⅱ-8호로 길이 6.4m, 너비 5.4m, 깊이 0.7m이고, 가장 작은 집자리는 Ⅱ-1호로 길이 2.5m, 너비 2.0m, 깊이 0.2m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벽도랑|벽 도랑(壁溝)]], [[기둥구멍|기둥 구멍]] 및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이며, 대부분 한쪽 벽면에 치우쳐 1개씩 확인되었다. Ⅱ-3·5·23호는 화덕 자리를 이단으로 파고 설치하여 특징적이다. 벽 도랑은 대부분 네 벽 모두 설치하였는데 이 가운데 11기는 집자리 외부 모서리에 설치된 배수구에 연결된 구조이다. 배수구는 무시설식, 터널 모양(暗渠式) 등의 구조이다. 기둥 구멍은 4~8주식(柱式)으로 정형하며, Ⅱ-1·9·10·18호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외에 7·9·10·16·18·23호는 집자리 내부에 인위적으로 쌓은 돌무지(積石)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가 대부분이며 무늬는 [[골아가리구멍무늬|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등이 새겨져 있다. 석기류는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반달돌칼|반달 돌칼]], [[장식간돌검|장식 간 돌검(裝飾石劍)]],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ㄱ자돌칼|‘ㄱ’자 모양 돌칼(東北型石刀)]], [[갈판|갈판(碾石)]], [[간돌살촉|간 돌살촉]] 등 다양하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가 대부분이며 무늬는 [[골아가리구멍무늬|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등이 새겨져 있다. 석기류는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반달돌칼|반달 돌칼]], [[장식간돌검|장식 간 돌검(裝飾石劍)]],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ㄱ자돌칼|‘ㄱ’자 모양 돌칼(東北型石刀)]], [[갈판|갈판(碾石)]], [[간돌살촉|간 돌살촉]] 등 다양하다.


[[울주굴화리율리유적|굴화리·율리 유적(굴화리 497-8)]]의 집자리 중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은 10기로 장방형 8기, 세장방형 2기이다. 집자리는 대부분 평탄면에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되었고, 4기는 경사면에 조성되었다. 내부 시설은 장검 유적과 동일하게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ㄱ’, ‘ㄷ’, ‘ㅁ’자 모양 등으로 확인되며, Ⅱ-1~3·5·8~10·12~14호 집자리는 벽 기둥 구멍이 5~15개가 확인되었다. 배수구는 내부 벽 도랑과 연결된 구조이다. 기둥 구멍은 4~8주식이며, 4주식이 가장 많고, 없는 집자리도 4기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구덩식 10기, 평지식 2기가 확인되었다. 화덕의 위치는 중앙에 설치한 것 2기, 나머지는 모두 한쪽 벽에 치우쳐 1개씩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중 토기류는 [[손잡이달린항아리|손잡이 달린 항아리(把手附土器)]], 바리 토기,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등이며, 무늬는 바리 토기에 짧은 빗금무늬, 짧은 빗금+구멍무늬, 구멍무늬 등이다. 석기류는 반달 돌칼, 간 돌도끼, 간 돌살촉, [[숫돌|숫돌(砥石)]], 미완성 석기, [[가락바퀴|가락바퀴]]가 출토되었고, 토제품은 [[그물추|그물추]] 등이 확인되었다.
'''굴화리·율리 유적(굴화리 497-8)'''의 집자리 중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은 10기로 장방형 8기, 세장방형 2기이다. 집자리는 대부분 평탄면에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되었고, 4기는 경사면에 조성되었다. 내부 시설은 장검 유적과 동일하게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ㄱ’, ‘ㄷ’, ‘ㅁ’자 모양 등으로 확인되며, Ⅱ-1~3·5·8~10·12~14호 집자리는 벽 기둥 구멍이 5~15개가 확인되었다. 배수구는 내부 벽 도랑과 연결된 구조이다. 기둥 구멍은 4~8주식이며, 4주식이 가장 많고, 없는 집자리도 4기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구덩식 10기, 평지식 2기가 확인되었다. 화덕의 위치는 중앙에 설치한 것 2기, 나머지는 모두 한쪽 벽에 치우쳐 1개씩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중 토기류는 [[손잡이달린항아리|손잡이 달린 항아리(把手附土器)]], 바리 토기,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등이며, 무늬는 바리 토기에 짧은 빗금무늬, 짧은 빗금+구멍무늬, 구멍무늬 등이다. 석기류는 반달 돌칼, 간 돌도끼, 간 돌살촉, [[숫돌|숫돌(砥石)]], 미완성 석기, [[가락바퀴|가락바퀴]]가 출토되었고, 토제품은 [[그물추|그물추]] 등이 확인되었다.


움무덤은 길이 1.75m, 너비 1.07m, 깊이 0.4m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출토 유물은 무덤 내 서쪽 벽 중간 지점에서 붉은 간 토기 1점과 간 돌살촉 1점, 무덤 바닥의 중앙부에서 동쪽으로 치우쳐 손잡이가 남쪽을 향한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움무덤은 길이 1.75m, 너비 1.07m, 깊이 0.4m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출토 유물은 무덤 내 서쪽 벽 중간 지점에서 붉은 간 토기 1점과 간 돌살촉 1점, 무덤 바닥의 중앙부에서 동쪽으로 치우쳐 손잡이가 남쪽을 향한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울주굴화리생기들유적|굴화리 생기들 유적(굴화리 353)]]의 집자리는 나지구에서 확인되었으며, 현대 건물에 의해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이다. 형태는 방형으로, 내부 시설은 2호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고, 1호는 화재로 폐기되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붉은 간 토기,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무늬는 깊은 바리 토기에서 구멍무늬+낟알무늬+‘X’자 무늬가 새겨진 복합무늬이다. 석기류는 [[간돌창|간 돌창(石槍)]], ‘ㄱ’자 모양 돌칼, 간 돌살촉, [[갈돌|갈돌(碾石)]],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굴화리 생기들 유적(굴화리 353)'''의 집자리는 나지구에서 확인되었으며, 현대 건물에 의해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이다. 형태는 방형으로, 내부 시설은 2호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고, 1호는 화재로 폐기되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붉은 간 토기,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무늬는 깊은 바리 토기에서 구멍무늬+낟알무늬+‘X’자 무늬가 새겨진 복합무늬이다. 석기류는 [[간돌창|간 돌창(石槍)]], ‘ㄱ’자 모양 돌칼, 간 돌살촉, [[갈돌|갈돌(碾石)]],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논의 형태는 바둑판식이다. 확인된 면은 34면으로 소구획되었으며,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논 한 면의 면적은 약 3.3㎡이다. 경작층은 자연적으로 골짜기가 메워진 이후 형성되었는데 높은 지형에 경사지고 너비가 좁은 곳을 개간하여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외에 울산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논 유구는 [[울주서부리남천유적|울산 서부리 남천]], [[울주대안리.발리유적|발리]], [[울산무거동옥현유적|무거동 옥현 유적]] 등이 있다.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을 통해 유적은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된다.
논의 형태는 바둑판식이다. 확인된 면은 34면으로 소구획되었으며,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논 한 면의 면적은 약 3.3㎡이다. 경작층은 자연적으로 골짜기가 메워진 이후 형성되었는데 높은 지형에 경사지고 너비가 좁은 곳을 개간하여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외에 울산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논 유구는 [[울주서부리남천유적|울산 서부리 남천]], [[울주대안리.발리유적|발리]], [[울산무거동옥현유적|무거동 옥현 유적]] 등이 있다.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을 통해 유적은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된다.


[[울주굴화리백천들유적|굴화리 백천들 유적(굴화리 18-26)]]의 집자리는 세장방형 1기를 제외하면 모두 방형, 장방형이다. 10호는 길이 6.7m, 너비 3.8m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은 다른 유적과 같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4~8주식이며, 30호는 10주식이다. 화덕 자리는 31기에서 확인되었으며, 평지식 7기, 구덩식 24기이다. 10호는 2개가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중앙에서 한쪽 짧은 벽에 치우쳐 1개씩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31기에서 확인되며, 대부분 네벽을 따라 설치되었고 8·21호는 두 벽면에만 설치되었다. 배수구는 벽 도랑이 설치된 집자리 대부분에서 확인되며, 터널식의 구조가 많다. 특히 1호의 배수구 터널 부분은 편평한 모양의 돌 2매를 세우고 뚜껑돌(蓋石)을 덮은 암거식(暗渠式) 구조이다. 13호는 집자리 주변에 타원형의 도랑을 설치한 [[연암동식집자리|연암동식 집자리]]다. 다른 집자리는 방형·장방형으로, 하나의 화덕 자리가 설치된 검단리식 집자리다.
'''굴화리 백천들 유적(굴화리 18-26)'''의 집자리는 세장방형 1기를 제외하면 모두 방형, 장방형이다. 10호는 길이 6.7m, 너비 3.8m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은 다른 유적과 같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4~8주식이며, 30호는 10주식이다. 화덕 자리는 31기에서 확인되었으며, 평지식 7기, 구덩식 24기이다. 10호는 2개가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중앙에서 한쪽 짧은 벽에 치우쳐 1개씩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31기에서 확인되며, 대부분 네벽을 따라 설치되었고 8·21호는 두 벽면에만 설치되었다. 배수구는 벽 도랑이 설치된 집자리 대부분에서 확인되며, 터널식의 구조가 많다. 특히 1호의 배수구 터널 부분은 편평한 모양의 돌 2매를 세우고 뚜껑돌(蓋石)을 덮은 암거식(暗渠式) 구조이다. 13호는 집자리 주변에 타원형의 도랑을 설치한 [[연암동식집자리|연암동식 집자리]]다. 다른 집자리는 방형·장방형으로, 하나의 화덕 자리가 설치된 검단리식 집자리다.


도랑은 도랑끼리 겹쳐지거나 일부는 집자리 배수구와 연결된 것도 있어 집자리의 배수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확인된 도랑 가운데는 [[환구|환구(環溝)]]도 확인되어 ‘연암동식 둘레 도랑(蓮岩洞式周溝)’으로 불린다.
도랑은 도랑끼리 겹쳐지거나 일부는 집자리 배수구와 연결된 것도 있어 집자리의 배수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확인된 도랑 가운데는 [[환구|환구(環溝)]]도 확인되어 ‘연암동식 둘레 도랑(蓮岩洞式周溝)’으로 불린다.

2026년 4월 28일 (화) 09:56 기준 최신판


굴화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울주 굴화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18-26, 333-1, 353, 476, 497-8, 744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움무덤, 화덕 자리, 바리 토기, 조갯날 돌도끼, 반달 돌칼, 돌대팻날, 돌끌, 달도끼, 갈판, 간 돌살촉, 손잡이 달린 항아리, 붉은 간 토기, 가락바퀴, 그물추, 홈 자루 간 돌검, 흔암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정대봉, 김도헌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18-26, 333-1, 353, 476, 497-8, 744에 위치한다. 오수중계 펌프장 건립으로 울산문화재연구원이 2001년 조사하여(백천 유적), 논(水田)을 확인하였다. 이후 울산 상업고등학교 이설(굴화리 장검 유적Ⅰ) 및 농산물 저장 시설 건립(굴화리 장검 유적Ⅱ)으로 2003·2004년 집자리 26기, 구덩이 5기, 도랑(溝) 3기를 확인하였다.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는 부산-울산간 고속 도로 개설로 2005년 조사하여(굴화리·율리 유적), 굴화리 유적에서 집자리 24기, 움무덤(土壙墓) 1기를 확인하였다. 울산문화재연구원은 아파트 신축으로 2006년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여(굴화리 생기들 유적), 집자리 2기, 도랑 2기, 구덩이 2기, 경작 유구(耕作遺構) 1기를 확인하였다.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서는 하수종말 처리 시설 건립으로 2010년 조사하여(굴화리 백천들 유적), 집자리 35기, 구덩이 13기, 도랑 29기, 기둥 건물(堀立柱建物) 1기, 기둥 구멍군(柱穴群), 큰 도랑(流路) 1개소 등을 확인하였다. 굴화리는 태화강이 울산 시내로 접어드는 길목에 위치하며, 하천 주변에 비옥한 토지가 형성되어 청동기 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한다. 특히, 울산 시가지에 비해 개발이 늦어져 원 지형의 훼손이 적어 유적의 상태가 양호하다. 유적은 반경 500m 거리에 분포한다.

백천 유적(굴화리 476)의 논층은 산화철과 망간의 집적 분리층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이질토의 혼입과 상면(上面)에서 배수구(排水溝)로 추정되는 도랑(上面溝)이 확인되어 경작층으로 판단하였다. 다만, 이후 자료의 증가로 도로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상면 도랑은 내부에 황갈색 세력(細礫)이 채워져 있었고, 너비는 0.2~0.3m이며, 넓은 곳은 0.4~0.8m, 깊이는 2m이다. 경작층의 유기질 점토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46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588년)로 확인되었다.

굴화리 장검 유적(굴화리 333-1, 744)의 집자리는 대부분 장방형이며, 장검 유적Ⅱ에서 일부 세장방형, 방형이 확인된다. 가장 큰 집자리는 Ⅱ-8호로 길이 6.4m, 너비 5.4m, 깊이 0.7m이고, 가장 작은 집자리는 Ⅱ-1호로 길이 2.5m, 너비 2.0m, 깊이 0.2m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 및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竪穴式)이며, 대부분 한쪽 벽면에 치우쳐 1개씩 확인되었다. Ⅱ-3·5·23호는 화덕 자리를 이단으로 파고 설치하여 특징적이다. 벽 도랑은 대부분 네 벽 모두 설치하였는데 이 가운데 11기는 집자리 외부 모서리에 설치된 배수구에 연결된 구조이다. 배수구는 무시설식, 터널 모양(暗渠式) 등의 구조이다. 기둥 구멍은 4~8주식(柱式)으로 정형하며, Ⅱ-1·9·10·18호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외에 7·9·10·16·18·23호는 집자리 내부에 인위적으로 쌓은 돌무지(積石)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 토기(鉢形土器)가 대부분이며 무늬는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구멍무늬(孔列文),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등이 새겨져 있다. 석기류는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반달 돌칼, 장식 간 돌검(裝飾石劍),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石鑿), 달도끼(環狀石斧), ‘ㄱ’자 모양 돌칼(東北型石刀), 갈판(碾石), 간 돌살촉 등 다양하다.

굴화리·율리 유적(굴화리 497-8)의 집자리 중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은 10기로 장방형 8기, 세장방형 2기이다. 집자리는 대부분 평탄면에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되었고, 4기는 경사면에 조성되었다. 내부 시설은 장검 유적과 동일하게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ㄱ’, ‘ㄷ’, ‘ㅁ’자 모양 등으로 확인되며, Ⅱ-1~3·5·8~10·12~14호 집자리는 벽 기둥 구멍이 5~15개가 확인되었다. 배수구는 내부 벽 도랑과 연결된 구조이다. 기둥 구멍은 4~8주식이며, 4주식이 가장 많고, 없는 집자리도 4기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구덩식 10기, 평지식 2기가 확인되었다. 화덕의 위치는 중앙에 설치한 것 2기, 나머지는 모두 한쪽 벽에 치우쳐 1개씩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중 토기류는 손잡이 달린 항아리(把手附土器),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등이며, 무늬는 바리 토기에 짧은 빗금무늬, 짧은 빗금+구멍무늬, 구멍무늬 등이다. 석기류는 반달 돌칼, 간 돌도끼, 간 돌살촉, 숫돌(砥石), 미완성 석기, 가락바퀴가 출토되었고, 토제품은 그물추 등이 확인되었다.

움무덤은 길이 1.75m, 너비 1.07m, 깊이 0.4m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출토 유물은 무덤 내 서쪽 벽 중간 지점에서 붉은 간 토기 1점과 간 돌살촉 1점, 무덤 바닥의 중앙부에서 동쪽으로 치우쳐 손잡이가 남쪽을 향한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굴화리 생기들 유적(굴화리 353)의 집자리는 나지구에서 확인되었으며, 현대 건물에 의해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이다. 형태는 방형으로, 내부 시설은 2호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고, 1호는 화재로 폐기되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무늬는 깊은 바리 토기에서 구멍무늬+낟알무늬+‘X’자 무늬가 새겨진 복합무늬이다. 석기류는 간 돌창(石槍), ‘ㄱ’자 모양 돌칼, 간 돌살촉, 갈돌(碾石),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논의 형태는 바둑판식이다. 확인된 면은 34면으로 소구획되었으며,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논 한 면의 면적은 약 3.3㎡이다. 경작층은 자연적으로 골짜기가 메워진 이후 형성되었는데 높은 지형에 경사지고 너비가 좁은 곳을 개간하여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외에 울산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논 유구는 울산 서부리 남천, 발리, 무거동 옥현 유적 등이 있다.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을 통해 유적은 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된다.

굴화리 백천들 유적(굴화리 18-26)의 집자리는 세장방형 1기를 제외하면 모두 방형, 장방형이다. 10호는 길이 6.7m, 너비 3.8m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은 다른 유적과 같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4~8주식이며, 30호는 10주식이다. 화덕 자리는 31기에서 확인되었으며, 평지식 7기, 구덩식 24기이다. 10호는 2개가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중앙에서 한쪽 짧은 벽에 치우쳐 1개씩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31기에서 확인되며, 대부분 네벽을 따라 설치되었고 8·21호는 두 벽면에만 설치되었다. 배수구는 벽 도랑이 설치된 집자리 대부분에서 확인되며, 터널식의 구조가 많다. 특히 1호의 배수구 터널 부분은 편평한 모양의 돌 2매를 세우고 뚜껑돌(蓋石)을 덮은 암거식(暗渠式) 구조이다. 13호는 집자리 주변에 타원형의 도랑을 설치한 연암동식 집자리다. 다른 집자리는 방형·장방형으로, 하나의 화덕 자리가 설치된 검단리식 집자리다.

도랑은 도랑끼리 겹쳐지거나 일부는 집자리 배수구와 연결된 것도 있어 집자리의 배수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확인된 도랑 가운데는 환구(環溝)도 확인되어 ‘연암동식 둘레 도랑(蓮岩洞式周溝)’으로 불린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깊은 바리 토기가 주를 이루며, 일부 토기에는 손잡이 달린 토기도 확인된다. 무늬는 구멍무늬 또는 낟알무늬의 단순무늬가 많고, 일부 골아가리무늬+구멍무늬+낟알무늬 또는 구멍무늬 +‘X자’ 모양 무늬, 짧은 빗금무늬 등의 복합무늬도 확인된다. 석기류는 간 돌살촉, 돌대팻날, 반달도끼, 조갯날 돌도끼, 간 돌검, 원판 모양 석기(圓板形石器) 등이 확인되었으며, 그 외 그물추, 가락바퀴 등도 출토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세장방형 집자리인 32호에서 겹아가리 구멍무늬, 짧은 빗금 무늬가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어 흔암리 유형 단계에 해당한다. 그 외 대부분은 검단리 유형 단계로 판단된다.

유적의 시기는 일부 집자리는 흔암리 유형 단계에 해당하며, 중심 연대는 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한다. 움무덤(율리 유적)은 홈 자루 간 돌검이 출토되어 흔암리 단계에 해당한다. 굴화리 백천들 유적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10호 284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30~900년), 34호 284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00~890년), 273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80~800년)로 확인되었다. 굴화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전시기에 해당하는 대표 유적으로, 다양한 집자리와 토기, 석기 외에 생산 유적(논)이 확인되어 취락·생업 연구에 결정적 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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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1년 4월 18일~2001년 6월 11일 울산 백천 유적 2002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3년 8월 25일~2003년 10월 7일 울산굴화리장검유적Ⅰ 2005 울산문화재연구원
시굴조사 2003년 1월 20일~2003년 2월 6일 울산굴화리장검유적Ⅰ 2005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5년 4월 1일~2005년 7월 26일 울산 굴화리·율리유적 2006 중앙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4년 5월 9일~2004 10월 25일 울산굴화리장검유적Ⅱ 2006 울산문화재연구원
시굴조사 2004년 2월 16일~2004년 3월 6일 울산굴화리장검유적Ⅱ 2006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6년 4월 7일~2006년 7월 20일 울산굴화리생기들유적 2008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10년 4월 15일~2010년 7월 12일 울주 굴화리 백천들유적 2012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참고문헌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2). 울산 백천 유적.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5). 울산굴화리장검유적Ⅰ.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6). 울산굴화리장검유적Ⅱ.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8). 울산굴화리생기들유적.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12). 울주 굴화리 백천들유적.
  • 중앙문화재연구원. (2006). 울산 굴화리·율리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