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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갈마리 542에 위치한다. 임실 제2 농공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쪽의 고덕산(해발 625m)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가지구릉(해발 240m 내외)에 위치한다. 주변으로 해발 300m 내외의 구릉이 발달하고, 서편으로 대덕천이 남북으로 흘러 임실천으로 합류한다. 유구는 해발 240~230m의 가지구릉 정상부와 능선, 사면에 걸쳐 분포한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를 비롯하여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 문화층,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 집자리와 [[구덩이|구덩이]],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조선 시대 [[움무덤|움무덤(土壙墓)]]과 [[회곽묘|회곽묘(灰槨墓)]]가 다수 확인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785·786-24 일원에 위치한다. 전북 혁신 도시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2009~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해발 30~50m 내외의 독립된 구릉 지역에 가·나·다지구 3개 지점이 각각 자리하고, 동쪽에 위치한 황방산이 전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의 만경강 주변으로는 간척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만경강 지류인 원천이 유적 중앙에 흐르고 있어 만경강 물길을 이용하기 유리한 환경이다. 유적 주변으로는 동일 시기의 많은 유적이 위치하는데, 특히 북동쪽으로 [[완주반교리갈동유적|완주 갈동 유적]], [[완주갈산리덕동유적|완주 덕동 유적]], [[완주원장동유적|완주 원장동 유적]] 등 이 지역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 주요 유적들이 가시권 내에 분포한다.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785·786-24 일원에 위치한다. 전북 혁신 도시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2009~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해발 30~50m 내외의 독립된 구릉 지역에 가·나·다지구 3개 지점이 각각 자리하고, 동쪽에 위치한 황방산이 전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의 만경강 주변으로는 간척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만경강 지류인 원천이 유적 중앙에 흐르고 있어 만경강 물길을 이용하기 유리한 환경이다. 유적 주변으로는 동일 시기의 많은 유적이 위치하는데, 특히 북동쪽으로 [[완주반교리갈동유적|완주 갈동 유적]], [[완주갈산리덕동유적|완주 덕동 유적]], [[완주원장동유적|완주 원장동 유적]] 등 이 지역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 주요 유적들이 가시권 내에 분포한다.


유적은 중앙에 흐르는 원천을 중심으로 반경 약 350m 내에 서쪽의 가지구, 동쪽의 나지구, 남쪽의 다지구가 분포해 있다. 가지구에서는 [[집자리|집자리]] 5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57기가, 나지구에서는 움무덤 24기, 다지구에서는 기둥 건물터 3기, [[구덩이|구덩이]] 3기, [[소성유구|소성 유구(燒成遺構)]] 2기, 도랑(溝) 3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중앙에 흐르는 원천을 중심으로 반경 약 350m 내에 서쪽의 가지구, 동쪽의 나지구, 남쪽의 다지구가 분포해 있다. 가지구에서는 [[집자리|집자리]] 5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57기가, 나지구에서는 움무덤 24기, 다지구에서는 기둥 건물터 3기, [[구덩이|구덩이]] 3기, [[소성유구|소성 유구(燒成遺構)]] 2기, 도랑(溝) 3기 등이 확인되었다.

2026년 4월 14일 (화) 16:08 판


금평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완주 금평리 유적, 완주 신풍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785·786-24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소성 유구, 움무덤, 집자리, 송국리식, 간두령, 널무덤, 직장묘, 청동 거울, 쇠도끼, 한국식동검, 유리 목걸이, 점열문, 이형 청동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송종열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785·786-24 일원에 위치한다. 전북 혁신 도시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2009~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해발 30~50m 내외의 독립된 구릉 지역에 가·나·다지구 3개 지점이 각각 자리하고, 동쪽에 위치한 황방산이 전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의 만경강 주변으로는 간척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만경강 지류인 원천이 유적 중앙에 흐르고 있어 만경강 물길을 이용하기 유리한 환경이다. 유적 주변으로는 동일 시기의 많은 유적이 위치하는데, 특히 북동쪽으로 완주 갈동 유적, 완주 덕동 유적, 완주 원장동 유적 등 이 지역 초기 철기 시대 주요 유적들이 가시권 내에 분포한다.

유적은 중앙에 흐르는 원천을 중심으로 반경 약 350m 내에 서쪽의 가지구, 동쪽의 나지구, 남쪽의 다지구가 분포해 있다. 가지구에서는 집자리 5기, 움무덤(土壙墓) 57기가, 나지구에서는 움무덤 24기, 다지구에서는 기둥 건물터 3기, 구덩이 3기, 소성 유구(燒成遺構) 2기, 도랑(溝) 3기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5기이며, 평면 형태가 모두 방형이다. 1호를 제외하면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있는 전형적인 송국리식이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과 타원형 구덩이, 벽 도랑 이외에 별도의 구덩이(3호 서벽)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류의 독 모양 토기(鉢形土器), 돌살촉(石鏃), 돌끌(石鑿)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에서 확인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2380±50 BP(1호), 2410±40 BP(2호), 2310±50 BP(4호), 2440±50 BP(5호) 등이다.

움무덤은 가지구와 나지구에서 모두 81기가 확인되었다. 가지구 움무덤의 조성 범위는 약 450m에 달하는데, 움무덤의 밀집 분포에 따라 5개의 군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군집은 크기와 밀집도에서 차이를 보이며, 축조 시기는 북쪽 군집(구릉 말단부)에서 남쪽 군집(구릉 정상부)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1군은 가지구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총 11기이다. 1호는 북동 사면부에서 단독으로 확인되며 2호와 11호는 중심군에서 20~35m 정도 떨어져 있고, 3~11호가 중심을 이룬다. 무덤 구덩이(墓壙)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으로 2m 이상은 10호 뿐이다. 껴묻거리는 빈약한 편이다.

가-2군은 가-1군 남서쪽으로 약 120m 떨어져 위치하며, 총 7기이다. 유물 출토율은 높지 않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무덤에 토기류가 부장된다.

가-3군은 5개의 군집 중 중앙에 위치하고 총 19기의 움무덤이 군집하고 있어 가장 밀집도가 높다. 유물은 풍부한 편은 아니나 청동기가 증가하고 철기가 등장하는 양상을 띤다. 무덤 구덩이가 큰 경우 청동기와 철기의 부장 빈도가 높은 편이다.

가-4군은 가장 넓은 범위에 16기의 움무덤이 조성되고 대형급에 가까운 무덤이 등장한다. 8기의 움무덤에서 나무널(木棺)이 사용되었다. 무덤 구덩이의 규모와 나무널의 사용은 상관 관계를 보이지 않지만, 나무널을 사용하지 않은 움무덤에 비해 비교적 많은 양의 부장품이 확인된다. 껴묻거리는 토기류와 청동기류, 철기류 이외에 돌살촉과 유리 목걸이 등이 부장되는 다양성을 보여준다. 청동기류의 부장률은 가-3군에 비해 떨어지지만 철기류의 부장률은 증가하는 양상이다.

가-5군은 가지구가 위치한 구릉에서 가장 높은 곳에 해당한다. 총 6기의 움무덤이 확인되었으며 52호를 제외한 5기의 움무덤에서 나무널이 확인되었다. 대형의 규모와 함께 유일한 2단 무덤 구덩이 구조를 가진 움무덤이 등장한다. 다종다양한 껴묻거리와 함께 54호에서는 위세품인 간두령(竿頭鈴) 1쌍이 출토되었다.

나지구에서 확인된 24기의 움무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치하는데 11~19호는 사면을 따라 밀집된 양상을 보인다.

움무덤 사이의 중복 양상은 확인되지 않고 평균 10~15m의 간격을 두고 조성되었다. 움무덤의 장축 방향은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등고선과 직교하는 방향으로 축조되었다. 무덤 구덩이의 형태는 일부 타원형도 있으나 대부분 말각 장방형이다. 벽면은 수직이거나 수직에 가까운 사면으로 이루어졌으며, 가-57호만 2단 구덩이이고 나머지는 1단으로 축조되었다.

무덤의 규모는 소형(0.5~1.5㎡), 중형(1.6~3.1㎡), 대형(3.5㎡이상)으로 구분된다. 가-1군은 대부분 소형에 속하고 가-2군 역시 소형의 빈도가 높은 편이다. 가-3군은 소형과 중형이 고루 조성되었으며, 가-4군은 중형의 빈도가 높아지면서 대형이 등장한다. 가-5군은 대형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나지구는 소형과 중형이 집중되어 있으며, 무덤 구덩이의 상대적인 크기 차이가 적은 편이다.

움무덤 내부에서는 나무널이나 깬돌 시설(割石施設) 또는 정지층(整地層)이 확인된다. 움무덤은 나무널의 유무에 따라 널무덤(木棺墓)직장묘(直葬墓)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25기의 널무덤에서 사용한 나무널은 토층 양상과 충전토의 형태 등으로 볼 때 모두 판재로 제작하였다. 구덩이의 규모에 따른 나무널의 사용 비율은 소형〈중형〈대형으로 나타났으며 구덩이가 커질수록 나무널의 사용 비율이 증가한다. 내부 시설 가운데 유일하게 깬돌이 사용된 가-2호는 바닥면에 소형 깬돌이 불규칙하게 깔려 있으며, 두침으로 추정되는 원형의 깬돌 열이 확인된다. 바닥면을 되메우기한 정지층은 전체 움무덤의 30% 정도이며 나무널의 유무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정지층은 구덩이에서 파낸 기반토와 같은 성분이며 색조도 기반토와 유사하나 일부 회색계열인 것도 있다. 일부 움무덤에서는 ‘U’자 모양의 퇴적토가 확인되었는데, 구덩이의 상면에 나무판 뚜껑(木蓋)을 시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의 부장 위치는 관의 유무, 정지층의 유무, 목개의 유무 등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직장묘는 널무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물이 빈약한 편으로 전체 직장묘 가운데 47%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 기형을 알 수 없는 소량의 토기 편이 확인된 유구를 제외하면 부장율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구덩이의 하단부에 긴 목 검은 간 토기(黑陶長頸壺)덧띠 토기(粘土帶土器) 1점이 부장된 예가 가장 많지만, 가-13·15호에서와 같이 긴 목 검은 간 토기와 덧띠 토기 2점이 세트로 부장되기도 한다.

널무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유물이 부장되었으며, 직장묘와 달리 토기 1점만 부장된 예는 드물고, 토기류도 많게는 6점까지 출토되었다. 유물은 나무널 내부와 나무널 상면, 충전토 내부에 주로 부장되고 일부 충전토 상면이나 정지층, 봉토 내부에 부장되었다. 토기류는 부장 위치가 다양하며 청동 거울은 주로 나무널 내, 쇠도끼는 충전토 내에 부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유물은 덧띠 토기·긴 목 검은 간 토기·굽다리 바리(臺附鉢)·쇠뿔 손잡이 긴 목 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원통모양 토기(圓筒形土器) 등 토기류 80점, 간두령·잔무늬 거울(細文鏡)·한국식동검(韓國式銅劍)·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청동 꺾창(銅戈)·청동 도끼(銅斧)·청동 지우개(銅鉈)·청동 끌(銅鑿) 등 청동기류 30점, 쇠도끼·고리 자루 손칼(環頭刀子)·쇠손칼(鐵刀子)·쇠지우개(鐵鉈)·쇠끌(鐵鑿)·쇠화살촉(鐵鏃) 등 철기류 16점을 비롯하여 유리 목걸이·돌살촉(石鏃)·자갈돌 등 옥석류 6점과 흔적만 남은 칠기 2점이 확인되었다. 특히 가-42호 움무덤에서 출토된 유리 목걸이는 유리환(琉璃環) 2점, 구슬옥(丸玉) 87점, 대롱옥(管玉) 19점과 벽옥제 대롱옥 3점 등 총 111점으로, 이러한 목걸이 구성은 이 시기 유적에서 최초로 확인되었다.

한국식 동검은 가-22·47·53호, 나-4·23호에서 각각 1점씩 모두 5점이 출토되었다. 가-22호 출토 동검은 완형이지만 연마를 하지 않은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나머지 4점은 결실된 상태로 전체적인 양상은 알 수 없다. 출토 양상을 살펴보면, 가-22호 동검은 봉부가 위를 향해 세워진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나머지는 봉부가 머리 쪽을 향해 있다. 가-47호 동검은 무덤 구덩이의 상단부 바닥면에서, 가-53호 동검은 구덩이의 좌측 하단부 충전토 상면에서 출토되었다. 나-4호와 나-23호 동검은 구덩이의 좌측 가운데 부분에서 확인되었다. 검신의 결실로 규모가 확실치는 않으나 나-23호 동검의 길이는 최대 31.2㎝로 추산되며 연마가 되지 않은 가-22호 동검은 길이 25.4㎝이다. 봉부는 대부분 단봉형이며 하단부는 가-22호 동검은 외만 장방형, 나머지는 역제형을 이룬다. 절대는 대부분 절형이나 나-4·23호 동검은 제2절대에 연미형(燕尾形)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검날은 결입부부터 봉부까지 연마된 것과 하단부를 포함한 전체가 연마된 것으로 구분된다.

간두령은 가-54호에서 쌍으로 출토되었으며, 출토 위치와 고고학적 맥락이 명확한 자료이다. 간두령은 상부에 표현된 양각 점열문이 특징적인데, 이러한 문양은 기존 간두령에서 보이지 않는 속성이다. 양각 점열문은 검파형 청동기(劍把形銅器)방패 모양 청동기(防牌形銅器), 뚜껑 모양 동기(圓蓋形銅器) 등 이른 단계의 이형 청동기(異形靑銅器)에서 사용된 문양이다. 가-55호 출토 동경도 이제까지 확인된 동경 가운데 유일하게 양각 점열문이 시문되어 있어 이들 유물의 연관성이 주목된다.

청동 거울은 유구 내에서 8점, 지표에서 2점이 확인되었다. 완형은 4점으로 가-35호에서는 구덩이의 중간 벽에 세워진 상태로, 가-43호와 가-55호는 널 내부 바닥에서, 나-23호는 구덩이의 중간에서 출토되었다. 나머지 6점은 편으로 출토되었다. 모두 오목경으로 추정되며, 배면에는 동심원문·대향삼각문(對向三角文)·사격자문·시송문(한자)·능삼문(綾杉文)·충전문(充塡文) 등이 세밀하게 새겨져 있다. 10점 가운데 4점(가-2·35·43호, 나-1호)은 2개의 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크기는 지름 14.5~20.6㎝ 내외이다. 이에 반해 3개의 고리를 가진 2점(가-55호, 나-33호)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데, 각각 지름 9.6㎝, 12.6㎝ 내외이다.

움무덤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2230±30 BP(35호), 2340±40 BP(41호) 등으로 산출되었다.

금평리 유적은 반경 1.5㎞ 안에 반교리 갈동, 장동(원장동), 갈산리 덕동 등의 유적들이 분포하는 가운데 중심에 있는 무덤 유적으로서 대규모 군집 움무덤과 초기 철기 시대 위계의 상징성을 복원할 수 있는 유적이다. 이러한 대규모 무덤군의 조성은 당시 사회 분화 및 계층화 뿐만 아니라 이 지역 마한 사회의 형성을 위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금평리 유적은 서남해안 지역 최초의 초기 철기 시대 대규모 움무덤 유적으로 학술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주변 일대에 분포하는 이 시기 유적과의 관련성 및 만경강 수로 교통로를 통한 교류 양상까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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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