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0273: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0273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편집 요약 없음
 
15번째 줄: 15번째 줄:


==설명==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갈마리 542에 위치한다. 임실 제2 농공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쪽의 고덕산(해발 625m)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가지구릉(해발 240m 내외)에 위치한다. 주변으로 해발 300m 내외의 구릉이 발달하고, 서편으로 대덕천이 남북으로 흘러 임실천으로 합류한다. 유구는 해발 240~230m의 가지구릉 정상부와 능선, 사면에 걸쳐 분포한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를 비롯하여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 문화층,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 집자리와 [[구덩이|구덩이]],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조선 시대 [[움무덤|움무덤(土壙墓)]]과 [[회곽묘|회곽묘(灰槨墓)]]가 다수 확인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46-110 일원에 위치한다. 완주 테크노밸리 산업 단지 진입 도로 개설에 앞서 2014~2015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하여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움무덤(土壙墓)]],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 [[집자리|집자리]]와 도랑(溝), 고려~조선 시대 움무덤, [[회곽묘|회곽묘(灰郭墓)]], [[구덩이|구덩이]], 도랑이 확인되었다. 유적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완주둔산리서당유적|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이 위치한다.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46-110 일원에 위치한다. 완주 테크노밸리 산업 단지 진입 도로 개설에 앞서 2014~2015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하여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움무덤(土壙墓)]],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 [[집자리|집자리]]와 도랑(溝), 고려~조선 시대 움무덤, [[회곽묘|회곽묘(灰郭墓)]], [[구덩이|구덩이]], 도랑이 확인되었다. 유적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완주둔산리서당유적|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이 위치한다.


움무덤은 5기로 해발 28~37m 내외의 구릉 서사면 말단부에 조성되었다. 움무덤은 각각 독립적으로 분포하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형태는 장방형, 원형이고, 길이 1.3~2.3m, 너비 0.48~0.96m이다. 장단비는 대체로 2에서 3사이이고, 잔존 깊이는 0.1~0.94m 정도이다. 토층에서 [[나무널|나무널(木棺)]] 흔적(1·5호), 통나무널 흔적(2·4호)이 확인된다. 청동 유물은 5호에서 [[세형동검|세형동검]] 1점만 출토되고, 토기는 [[검은간긴목항아리|검은 간 긴 목 항아리(黑陶長頸壺)]](1호),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2·3호)가 각각 한 점씩 출토되며, 4호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청동기와 토기의 형태는 인근에 위치하는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과 거의 동일하므로, 시기는 기원전 3세기 초~2세기 후엽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전라북도 지역 초기 철기 시대 문화가 황방산 일대의 원천천 유역으로 중심지를 이동하여 전라북도 각지로 확산되는 시기에 해당한다. 수계리 청등 유적은 인근의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과 마찬가지로 유물을 개별 무덤에 하나씩 껴묻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리고 [[철기|철기]]가 출토되지 않고, [[청동거울|청동제 거울]]이나 [[옥기|옥제 장신구]] 등이 출토되지 않았다. 움무덤의 껴묻거리 수는 1점 내지 2점으로, 이 무덤을 조성한 집단들의 사회적 위계가 전주나 완주 지역의 중심지 집단들보다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움무덤은 5기로 해발 28~37m 내외의 구릉 서사면 말단부에 조성되었다. 움무덤은 각각 독립적으로 분포하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형태는 장방형, 원형이고, 길이 1.3~2.3m, 너비 0.48~0.96m이다. 장단비는 대체로 2에서 3사이이고, 잔존 깊이는 0.1~0.94m 정도이다. 토층에서 [[나무널|나무널(木棺)]] 흔적(1·5호), 통나무널 흔적(2·4호)이 확인된다. 청동 유물은 5호에서 [[세형동검|세형동검]] 1점만 출토되고, 토기는 [[검은간긴목항아리|검은 간 긴 목 항아리(黑陶長頸壺)]](1호),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2·3호)가 각각 한 점씩 출토되며, 4호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청동기와 토기의 형태는 인근에 위치하는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과 거의 동일하므로, 시기는 기원전 3세기 초~2세기 후엽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전라북도 지역 초기 철기 시대 문화가 황방산 일대의 원천천 유역으로 중심지를 이동하여 전라북도 각지로 확산되는 시기에 해당한다. 수계리 청등 유적은 인근의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과 마찬가지로 유물을 개별 무덤에 하나씩 껴묻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리고 [[철기|철기]]가 출토되지 않고, [[청동거울|청동제 거울]]이나 [[옥기|옥제 장신구]] 등이 출토되지 않았다. 움무덤의 껴묻거리 수는 1점 내지 2점으로, 이 무덤을 조성한 집단들의 사회적 위계가 전주나 완주 지역의 중심지 집단들보다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2026년 4월 14일 (화) 16:01 기준 최신판


구암리 청등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완주 구암리 청등 유적, 완주 수계리 청등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46-11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구덩이, 움무덤, 집자리, 회곽묘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천선행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46-110 일원에 위치한다. 완주 테크노밸리 산업 단지 진입 도로 개설에 앞서 2014~2015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구석기 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하여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土壙墓), 원삼국 시대 집자리와 도랑(溝), 고려~조선 시대 움무덤, 회곽묘(灰郭墓), 구덩이, 도랑이 확인되었다. 유적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이 위치한다.

움무덤은 5기로 해발 28~37m 내외의 구릉 서사면 말단부에 조성되었다. 움무덤은 각각 독립적으로 분포하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형태는 장방형, 원형이고, 길이 1.3~2.3m, 너비 0.48~0.96m이다. 장단비는 대체로 2에서 3사이이고, 잔존 깊이는 0.1~0.94m 정도이다. 토층에서 나무널(木棺) 흔적(1·5호), 통나무널 흔적(2·4호)이 확인된다. 청동 유물은 5호에서 세형동검 1점만 출토되고, 토기는 검은 간 긴 목 항아리(黑陶長頸壺)(1호), 덧띠 토기(粘土帶土器)(2·3호)가 각각 한 점씩 출토되며, 4호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청동기와 토기의 형태는 인근에 위치하는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과 거의 동일하므로, 시기는 기원전 3세기 초~2세기 후엽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전라북도 지역 초기 철기 시대 문화가 황방산 일대의 원천천 유역으로 중심지를 이동하여 전라북도 각지로 확산되는 시기에 해당한다. 수계리 청등 유적은 인근의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과 마찬가지로 유물을 개별 무덤에 하나씩 껴묻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리고 철기가 출토되지 않고, 청동제 거울이나 옥제 장신구 등이 출토되지 않았다. 움무덤의 껴묻거리 수는 1점 내지 2점으로, 이 무덤을 조성한 집단들의 사회적 위계가 전주나 완주 지역의 중심지 집단들보다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