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2633: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2633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2633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24번째 줄: 24번째 줄:


유적의 중심 연대는 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되지만 석기에서 찰절 기법이 확인되어 흔암리 유형 단계까지 상향될 가능성도 있다. 조일리 유적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1호 272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70년), 3호 285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30년), 6호 2750±1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년), 7호 258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0년 또는 590년), 8호 283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의 중심 연대는 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되지만 석기에서 찰절 기법이 확인되어 흔암리 유형 단계까지 상향될 가능성도 있다. 조일리 유적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1호 272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70년), 3호 285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30년), 6호 2750±1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년), 7호 258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0년 또는 590년), 8호 283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년)로 확인되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400px>
File:울산_조일리_순지리_유적(조일리_유적)_유구_배치도.jpg
</gallery>


==조사정보==
==조사정보==
37번째 줄: 42번째 줄:
| 발굴조사 || 2003년 6월 2일~2003년 8월 23일 || 울산 조일리 유적 || 2005 || 중원문화재연구원
| 발굴조사 || 2003년 6월 2일~2003년 8월 23일 || 울산 조일리 유적 || 2005 || 중원문화재연구원
|}
|}
==참고문헌==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5). <i>양산 순지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0882144
* 중원문화재연구원. (2005). <i>울산 조일리 유적</i>.  https://excavation.co.kr/bookList/view?idx=5135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5 기준 최신판


조일리·순지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울주 조일리·양산 순지리 유적, 부산-언양 간 경부 고속 도로 확장 공사 구간 내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 산91-4,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2-19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민무늬 토기, 가락바퀴, 간 돌살촉, 숫돌, 갈판, 돌도끼, 찰절 석기,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반달 돌칼, 구멍 무늬 토기, 흔암리 유형, 검단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황창한, 김도헌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 산91-4,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2-19 일원에 위치한다. 경부 고속 도로 확장 공사로 2003년 중원문화재연구원과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 조사하였다. 조일리 유적에서는 집자리 9기, 순지리 유적에서는 집자리 8기 및 통일 신라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두 유적은 행정 구역으로는 구분되지만, 인접하여 위치하는 하나의 유적이다.

조일리 유적의 집자리는 구릉의 정상부 평탄면 주변(해발 160~161m)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조일리 유적의 집자리는 장방형(1·3·9호), 방형(2·4~8호)으로 구분되며, 전체적으로 소형이다. 장방형 집자리의 규모는 10~11㎡ 내외, 방형 집자리는 6~7.6㎡로, 울산 지역의 다른 집자리와 비교하면 중·소형에 해당한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4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집자리에 설치되었으며, 이 중 5기는 배수구로 연결된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 중앙에 1개가 설치되었으며, 맨 땅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기둥 구멍은 형태 및 크기에서 정형성이 확인되지 않는다. 출입구 시설은 따로 확인되지 않았으나, 벽 도랑이 설치되지 않은 경사면 아래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 가락바퀴, 간 돌살촉, 숫돌(砥石), 갈판(碾石), 돌도끼, 3호 집자리의 화덕 자리에서 구슬(玉) 1점이 출토되었다. 석기 중 2·7호의 찰절 석기(擦切石器), 8호의 배 모양 석기(船形石器)화살촉을 제작하는 유물이다. 대체로 찰절 기법을 사용하다가 선형 석기로 제작되는 것으로 볼 때 시간성을 반영할 가능성이 크지만, 지역적으로 흔암리 유형 단계의 제작 기법이 검단리 유형 단계까지 존속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토기류에 비해 석기류의 출토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러한 출토 상황을 고려할 때 집단의 생업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수렵과 채집이 농경과 어로보다 컸다고 추정된다.

순지리 유적의 집자리는 장방형이며,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고, 1·2·4호에서는 오른쪽 짧은 벽 쪽에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모든 집자리에서 확인되며, 네 벽면을 따라 설치한 것과 일부만 설치한 것이 있다. 화덕 자리는 7호를 제외한 모든 집자리에서 확인되며, 중앙부에 1개씩 설치하였다. 집자리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불 다짐 처리하였다(2·4·8호). 집자리의 폐기는 자연적인 것과 화재로 인한 폐기로 구분되며, 5호는 바닥에서 목탄이 다수 확인되어 화재로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토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 간 토기, 돌도끼, 숫돌(砥石), 반달 돌칼, 가락바퀴, 미완성 석기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의 무늬는 구멍 무늬(孔列文)와 민무늬이다.

유적의 중심 연대는 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되지만 석기에서 찰절 기법이 확인되어 흔암리 유형 단계까지 상향될 가능성도 있다. 조일리 유적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1호 272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70년), 3호 285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30년), 6호 2750±1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년), 7호 258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0년 또는 590년), 8호 283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년)로 확인되었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3년 6월 16일~2003년 11월 5일 양산 순지리 유적 2005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시굴조사 2002년 10월 11일~2002년 12월 24일 울산 조일리 유적 2005 중원문화재연구원
시굴조사 2003년 1월 27일~2003년 2월 20일 울산 조일리 유적 2005 중원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3년 6월 2일~2003년 8월 23일 울산 조일리 유적 2005 중원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