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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영암 장천리 유적, 장천리 고인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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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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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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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378-2 일원에 위치한다. 1984~1986년까지 3차에 걸쳐서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0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 [[고인돌|고인돌]]11기가 확인되었다. 서호면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장천리 괴음마을 앞 도로변에 집자리가 있고, 그 서남쪽 60m 지점에 고인돌군이 있다.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서쪽은 은적산, 남쪽은 그 지맥이 감싸고 있고, 북쪽은 철암산이 있다. 다만, 동북쪽으로는 엄길리 마을과 저수지가 있어 평지를 이룬다. 이곳은 원래 영암만이었던 곳으로 유적에서 바라보이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장천리에는 5개군에 52기의 고인돌이 있다. 유적은 원래는 낮은 구릉으로 각기 논과 밭으로 이용이 되었으나 경지 정리 작업 시에 평탄 작업으로 인하여 완전히 평지가 되면서 논으로만 경작되고 있다.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378-2 일원에 위치한다. 1984~1986년까지 3차에 걸쳐서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0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 [[고인돌|고인돌]] 11기가 확인되었다. 서호면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장천리 괴음마을 앞 도로변에 집자리가 있고, 그 서남쪽 60m 지점에 고인돌군이 있다.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서쪽은 은적산, 남쪽은 그 지맥이 감싸고 있고, 북쪽은 철암산이 있다. 다만, 동북쪽으로는 엄길리 마을과 저수지가 있어 평지를 이룬다. 이곳은 원래 영암만이었던 곳으로 유적에서 바라보이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장천리에는 5개군에 52기의 고인돌이 있다. 유적은 원래는 낮은 구릉으로 각기 논과 밭으로 이용이 되었으나 경지 정리 작업 시에 평탄 작업으로 인하여 완전히 평지가 되면서 논으로만 경작되고 있다.


집자리는 대부분 파괴된 상태로 평면 형태, 크기를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평면 형태는 원형 2기와 타원형 4기이며 대부분 지름 4.3~5.1m, 깊이 0.15~0.32m에 면적은 11.8~20.3㎡이다. 가장 큰 8호는 평면 타원형으로 긴 지름 5.2m, 짧은 지름 4.7m, 깊이 0.27m이다. 바닥 중앙부에는 타원형 구덩이와 그 양쪽 내부에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바닥 처리는 진흙을 0.02~0.03m 정도 깔았으며 일부는 바닥을 다져서 사용하였으나, 출입 시설이나 [[화덕자리|화덕 자리]]는 확인되지 않는다.
집자리는 대부분 파괴된 상태로 평면 형태, 크기를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평면 형태는 원형 2기와 타원형 4기이며 대부분 지름 4.3~5.1m, 깊이 0.15~0.32m에 면적은 11.8~20.3㎡이다. 가장 큰 8호는 평면 타원형으로 긴 지름 5.2m, 짧은 지름 4.7m, 깊이 0.27m이다. 바닥 중앙부에는 타원형 구덩이와 그 양쪽 내부에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바닥 처리는 진흙을 0.02~0.03m 정도 깔았으며 일부는 바닥을 다져서 사용하였으나, 출입 시설이나 [[화덕자리|화덕 자리]]는 확인되지 않는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진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토기]]와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장경호|긴 목 항아리(長頸壺)]],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삼각돌칼|삼각 돌칼]], [[간돌살촉|간 돌살촉]], [[가락바퀴|가락바퀴]], [[돌끌|돌끌(石鑿)]], [[턱자귀|턱자귀(有段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는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2열로 배치되어 있는데, 집자리와 인접해 있어 관련이 있는 시설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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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리 괴음마을 고인돌 B군은 괴음마을 전방 300m 지점에 11기가 타원형으로 무리지어 있는데, 이 중 도로에 접하는 4기만 발굴 조사하였고, 나머지는 그대로 보존하였다. 고인돌 아래 [[무덤방|무덤방(墓室)]]은 [[돌널형무덤방|돌널형(石棺形)]]으로 1·4호에서 확인된다. 1호 [[덮개돌|덮개돌(上石)]]은 응회암질 역암이며 길이 3.7m, 너비 2.8m, 두께 0.8m이다. 하부 구조는 3매의 [[받침돌|받침돌(支石)]]이 있고, 무덤방의 주변은 깬돌(割石)로 무질서하게 돌을 쌓았으며 [[뚜껑돌|뚜껑돌(蓋石)]]은 길이 1.35m, 너비 0.9m의 판돌(板石) 1매를 이용하였다. 무덤방은 길이 1.8m, 너비 0.44m, 깊이 0.3m로, 긴 벽은 4~5매의 판돌을 세우고 짧은 벽은 판돌 1매로 축조하였다. 바닥은 큰 판돌을 깔고 그 사이를 잔자갈로 채워 깔았다. 4호 덮개돌은 길이 1.7m, 너비 1.1m, 두께 0.3m이고, 하부 구조는 1매의 뚜껑돌과 돌널로 추정되는 무덤방이 있다. 무덤방은 추정되는 크기가 길이 1.55m, 너비 0.6m이며, 바닥은 잔자갈을 섞어 넣은 진흙층을 깔았다. 유물은 1호에서 [[숫돌|숫돌(砥石)]], 꼭지형 기부에 정부(頂部)가 ‘+’자 모양인 돌로 만든 [[칼자루끝장식|칼자루 끝 장식(石製 劍把頭飾)]], [[세형동검|세형동검]] 편 등이 출토되었고, 3호에서는 홈자귀(有溝石斧)가 출토되었다.
장천리 괴음마을 고인돌 B군은 괴음마을 전방 300m 지점에 11기가 타원형으로 무리지어 있는데, 이 중 도로에 접하는 4기만 발굴 조사하였고, 나머지는 그대로 보존하였다. 고인돌 아래 [[무덤방|무덤방(墓室)]]은 돌널형(石棺形)으로 1·4호에서 확인된다. 1호 [[덮개돌|덮개돌(上石)]]은 응회암질 역암이며 길이 3.7m, 너비 2.8m, 두께 0.8m이다. 하부 구조는 3매의 [[받침돌|받침돌(支石)]]이 있고, 무덤방의 주변은 깬돌(割石)로 무질서하게 돌을 쌓았으며 [[뚜껑돌|뚜껑돌(蓋石)]]은 길이 1.35m, 너비 0.9m의 판돌(板石) 1매를 이용하였다. 무덤방은 길이 1.8m, 너비 0.44m, 깊이 0.3m로, 긴 벽은 4~5매의 판돌을 세우고 짧은 벽은 판돌 1매로 축조하였다. 바닥은 큰 판돌을 깔고 그 사이를 잔자갈로 채워 깔았다. 4호 덮개돌은 길이 1.7m, 너비 1.1m, 두께 0.3m이고, 하부 구조는 1매의 뚜껑돌과 돌널로 추정되는 무덤방이 있다. 무덤방은 추정되는 크기가 길이 1.55m, 너비 0.6m이며, 바닥은 잔자갈을 섞어 넣은 진흙층을 깔았다. 유물은 1호에서 [[숫돌|숫돌(砥石)]], 꼭지형 기부에 정부(頂部)가 ‘+’자 모양인 돌로 만든 [[칼자루끝장식|칼자루 끝 장식(石製 劍把頭飾)]], [[세형동검|세형동검]] 편 등이 출토되었고, 3호에서는 홈자귀(有溝石斧)가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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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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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굴조사 || 1984년 5월 4일~1984년 6월 1일 || 영암 청용리·장천리 지석묘군 || 1984 || 목포대학교박물관
|-
| 발굴조사 || 1986년 5월 3일~1986년 6월 24일 || 영암 장천리 주거지 || 1986 || 목포대학교박물관
|-
| 발굴조사 || 1985년 11월 15일~1985년 12월 14일 || 영암 장천리 주거지 Ⅰ· || 1986 || 목포대학교박물관
|}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1984). <i>영암 청용리·장천리 지석묘군</i>. https://www.riss.kr/link?id=M13148362
* 목포대학교박물관. (1986). <i>영암 장천리 주거지 Ⅰ·Ⅱ</i>. https://www.riss.kr/link?id=M5544155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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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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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5 기준 최신판


장천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영암 장천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378-2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송국리식 토기, 깊은 바리 토기, 긴 목 항아리, 홈자귀, 삼각 돌칼, 간 돌살촉, 가락바퀴, 돌끌, 턱자귀, 숫돌, 세형동검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규정, 정영희



설명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378-2 일원에 위치한다. 1984~1986년까지 3차에 걸쳐서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 10기, 기둥 건물터, 고인돌 11기가 확인되었다. 서호면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장천리 괴음마을 앞 도로변에 집자리가 있고, 그 서남쪽 60m 지점에 고인돌군이 있다.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서쪽은 은적산, 남쪽은 그 지맥이 감싸고 있고, 북쪽은 철암산이 있다. 다만, 동북쪽으로는 엄길리 마을과 저수지가 있어 평지를 이룬다. 이곳은 원래 영암만이었던 곳으로 유적에서 바라보이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장천리에는 5개군에 52기의 고인돌이 있다. 유적은 원래는 낮은 구릉으로 각기 논과 밭으로 이용이 되었으나 경지 정리 작업 시에 평탄 작업으로 인하여 완전히 평지가 되면서 논으로만 경작되고 있다.

집자리는 대부분 파괴된 상태로 평면 형태, 크기를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평면 형태는 원형 2기와 타원형 4기이며 대부분 지름 4.3~5.1m, 깊이 0.15~0.32m에 면적은 11.8~20.3㎡이다. 가장 큰 8호는 평면 타원형으로 긴 지름 5.2m, 짧은 지름 4.7m, 깊이 0.27m이다. 바닥 중앙부에는 타원형 구덩이와 그 양쪽 내부에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이다. 바닥 처리는 진흙을 0.02~0.03m 정도 깔았으며 일부는 바닥을 다져서 사용하였으나, 출입 시설이나 화덕 자리는 확인되지 않는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진 송국리식 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긴 목 항아리(長頸壺), 홈자귀(有溝石斧), 삼각 돌칼, 간 돌살촉, 가락바퀴, 돌끌(石鑿), 턱자귀(有段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기둥 건물터는 기둥 구멍이 2열로 배치되어 있는데, 집자리와 인접해 있어 관련이 있는 시설로 추정된다.

장천리 괴음마을 고인돌 B군은 괴음마을 전방 300m 지점에 11기가 타원형으로 무리지어 있는데, 이 중 도로에 접하는 4기만 발굴 조사하였고, 나머지는 그대로 보존하였다. 고인돌 아래 무덤방(墓室)은 돌널형(石棺形)으로 1·4호에서 확인된다. 1호 덮개돌(上石)은 응회암질 역암이며 길이 3.7m, 너비 2.8m, 두께 0.8m이다. 하부 구조는 3매의 받침돌(支石)이 있고, 무덤방의 주변은 깬돌(割石)로 무질서하게 돌을 쌓았으며 뚜껑돌(蓋石)은 길이 1.35m, 너비 0.9m의 판돌(板石) 1매를 이용하였다. 무덤방은 길이 1.8m, 너비 0.44m, 깊이 0.3m로, 긴 벽은 4~5매의 판돌을 세우고 짧은 벽은 판돌 1매로 축조하였다. 바닥은 큰 판돌을 깔고 그 사이를 잔자갈로 채워 깔았다. 4호 덮개돌은 길이 1.7m, 너비 1.1m, 두께 0.3m이고, 하부 구조는 1매의 뚜껑돌과 돌널로 추정되는 무덤방이 있다. 무덤방은 추정되는 크기가 길이 1.55m, 너비 0.6m이며, 바닥은 잔자갈을 섞어 넣은 진흙층을 깔았다. 유물은 1호에서 숫돌(砥石), 꼭지형 기부에 정부(頂部)가 ‘+’자 모양인 돌로 만든 칼자루 끝 장식(石製 劍把頭飾), 세형동검 편 등이 출토되었고, 3호에서는 홈자귀(有溝石斧)가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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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84년 5월 4일~1984년 6월 1일 영암 청용리·장천리 지석묘군 1984 목포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1986년 5월 3일~1986년 6월 24일 영암 장천리 주거지 1986 목포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1985년 11월 15일~1985년 12월 14일 영암 장천리 주거지 Ⅰ· 1986 목포대학교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