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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산164 일원 | | 소재지=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산164 일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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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덮개돌|덮개돌(上石)]]과 하부 구조가 모두 남아 있는 것 1기와 덮개돌만 남아 있는 것 2기,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것 2기이다. 1호 고인돌은 군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깝다. 덮개돌과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북서-남동이다. | 고인돌은 [[덮개돌|덮개돌(上石)]]과 하부 구조가 모두 남아 있는 것 1기와 덮개돌만 남아 있는 것 2기,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것 2기이다. 1호 고인돌은 군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깝다. 덮개돌과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북서-남동이다. | ||
[[무덤방|무덤방(墓室)]]과 받침돌(支石) 사이에는 깬돌(割石)을 깔아 받침돌과 함께 덮개돌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였다. 무덤방은 | [[무덤방|무덤방(墓室)]]과 [[받침돌|받침돌(支石)]] 사이에는 깬돌(割石)을 깔아 받침돌과 함께 덮개돌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였다. 무덤방은 돌덧널형(石槨形)이며, 바닥에는 작은 깬돌(割石)을 촘촘하게 깔았다. 2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평면 형태가 부정형이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북서-남동이다. 2-1호 고인돌은 무덤방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바닥석 일부만 남아 있다. 무덤방은 돌덧널형으로 추정되며, 장축 방향은 남-북인데, 주변이 심하게 교란되었다. 3호 고인돌은 덮개돌만 남아 있는데, 이동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이다. 4호 고인돌의 무덤방은 돌덧널형이며, 장축 방향은 북서-남동이다. 바닥은 양 짧은 벽 쪽에만 작은 깬돌을 촘촘하게 깔았다. | ||
2-1호 고인돌 주변에서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수습되었다. 4호 고인돌 바닥 중앙에서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 위치로 보아 시신을 안치한 후 피장자의 허리 쪽에 부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1호와 3호 덮개돌 아래에서는 | 2-1호 고인돌 주변에서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수습되었다. 4호 고인돌 바닥 중앙에서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 위치로 보아 시신을 안치한 후 피장자의 허리 쪽에 부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1호와 3호 덮개돌 아래에서는 상평통보(常平通寶)가 수습되었다. | ||
복산리 고인돌군은 무덤방이 모두 돌덧널형이며, 통자루 간 돌검이 부장되었다는 점에서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고인돌 아래에서 상평통보가 확인되어 고인돌이 후대에도 | 복산리 고인돌군은 무덤방이 모두 돌덧널형이며, 통자루 간 돌검이 부장되었다는 점에서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고인돌 아래에서 상평통보가 확인되어 고인돌이 후대에도 거석 숭배나 신앙과 관련한 상징물이었음을 보여준다. | ||
==조사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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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6년~2007년 || 여수 마산·화동유적 || 2009 || 마한문화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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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마한문화연구원. (2009). <i>여수 마산·화동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16447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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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0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여수 복산리 마산 고인돌군, 여수 복산리 마산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산164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자루 간 돌검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오세미 |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산164 일원에 위치한다. 현천-마산 간 도로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06~2007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5기의 고인돌(다군)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마산 마을에서 덕곡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있으며, 이 일대는 해발 183~215m 정도이다.
고인돌은 덮개돌(上石)과 하부 구조가 모두 남아 있는 것 1기와 덮개돌만 남아 있는 것 2기,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것 2기이다. 1호 고인돌은 군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깝다. 덮개돌과 매장 주체부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북서-남동이다.
무덤방(墓室)과 받침돌(支石) 사이에는 깬돌(割石)을 깔아 받침돌과 함께 덮개돌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였다. 무덤방은 돌덧널형(石槨形)이며, 바닥에는 작은 깬돌(割石)을 촘촘하게 깔았다. 2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평면 형태가 부정형이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북서-남동이다. 2-1호 고인돌은 무덤방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바닥석 일부만 남아 있다. 무덤방은 돌덧널형으로 추정되며, 장축 방향은 남-북인데, 주변이 심하게 교란되었다. 3호 고인돌은 덮개돌만 남아 있는데, 이동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이다. 4호 고인돌의 무덤방은 돌덧널형이며, 장축 방향은 북서-남동이다. 바닥은 양 짧은 벽 쪽에만 작은 깬돌을 촘촘하게 깔았다.
2-1호 고인돌 주변에서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수습되었다. 4호 고인돌 바닥 중앙에서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 위치로 보아 시신을 안치한 후 피장자의 허리 쪽에 부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1호와 3호 덮개돌 아래에서는 상평통보(常平通寶)가 수습되었다.
복산리 고인돌군은 무덤방이 모두 돌덧널형이며, 통자루 간 돌검이 부장되었다는 점에서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고인돌 아래에서 상평통보가 확인되어 고인돌이 후대에도 거석 숭배나 신앙과 관련한 상징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06년~2007년 | 여수 마산·화동유적 | 2009 | 마한문화연구원 |
참고문헌
- 마한문화연구원. (2009). 여수 마산·화동유적. https://www.riss.kr/link?id=M11644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