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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돋을띠무늬토기|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단계에 해당하는 [[정선아우라지유적|정선 아우라지 유적]] [[집자리|집자리]]에서 대롱옥이 나온 바 있고, 다음의 [[역삼동유형|역삼동]]·[[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 단계에도 [[무덤|무덤]]과 집자리에서 종종 출토된다. 대롱옥은 [[부여송국리유적|부여 송국리]] 및 [[진주대평리유적|진주 대평리 유적]] 등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다. 이때에는 길이 5㎝가 넘는 대형품이 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므로, 권위 혹은 사회 복합화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후의 [[덧띠토기단계|덧띠 토기(粘土帶土器) 단계]]에는 벽옥으로 만든 것도 일부 있지만, [[부여합송리유적|부여 합송리]] 및 [[당진소소리유적|당진 소소리 유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유리(琉璃)로 된 것이 많아진다. 유리로 된 대롱옥은 주로 한반도의 서쪽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한편, [[여수평여동유적|여수 평여동]] 및 [[창원덕천리유적|창원 덕천리 유적]] 등에서는 150여 점 이상의 대롱옥이 한 무덤에서 출토되기도 하여, [[장송의례|장송의례]]에 사용된 정황을 보여준다.
청동기 시대 [[돋을띠무늬토기|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단계에 해당하는 [[정선아우라지유적|정선 아우라지 유적]] [[집자리|집자리]]에서 대롱옥이 나온 바 있고, 다음의 [[역삼동유형|역삼동]]·[[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 단계에도 [[무덤|무덤]]과 집자리에서 종종 출토된다. 대롱옥은 [[부여송국리유적|부여 송국리]] 및 [[진주대평리유적|진주 대평리 유적]] 등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다. 이때에는 길이 5㎝가 넘는 대형품이 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므로, 권위 혹은 사회 복합화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후의 [[덧띠토기단계|덧띠 토기(粘土帶土器) 단계]]에는 벽옥으로 만든 것도 일부 있지만, [[부여합송리유적|부여 합송리]] 및 [[당진소소리유적|당진 소소리 유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유리(琉璃)로 된 것이 많아진다. 유리로 된 대롱옥은 주로 한반도의 서쪽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한편, [[여수평여동유적|여수 평여동]] 및 [[창원덕천리유적|창원 덕천리 유적]] 등에서는 150여 점 이상의 대롱옥이 한 무덤에서 출토되기도 하여, [[장송의례|장송의례]]에 사용된 정황을 보여준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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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부여_송국리_유적_출토_대롱옥_목걸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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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배진성. (2013). <i>(한국 선사·고대의) 옥문화 연구-청동기시대 옥의 출현과 전개</i>. 복천박물관.  https://www.riss.kr/link?id=M13448797
* 이상길. (2002). <i>세형동검문화의 제문제-장신구를 통해 본 세형동검문화기의 특징</i>. 구주고고학회 , 영남고고학회.  https://www.riss.kr/link?id=M8470507
* 李相吉. (2006). 朝鮮半島の玉作. <i>季刊考古學, 94</i>, 74-78. https://ndlsearch.ndl.go.jp/books/R000000004-I782266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8 기준 최신판


청동기 시대 대롱옥
기본 정보
동의어 관옥, 대롱구슬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정선 아우라지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 진주 대평리 유적, 부여 합송리 유적, 당진 소소리 유적, 창원 덕천리 유적
키워드 옥제품, 장신구, 벽옥, 송국리 문화, 역삼동 유형, 흔암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배진성



설명

대롱옥(管玉)은 대롱 혹은 원통형의 옥제품으로서 길이 방향으로 가운데에 구멍을 관통시킨 것을 일컫는다. 재료는 일부 흙이나 돌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광물의 한 종류인 (청)녹색의 벽옥(碧玉, Jasper)을 이용한다. 길이는 2㎝ 미만부터 10㎝ 이상의 것까지 다양하며, 곱은옥(曲玉)·구슬옥(丸玉)과 더불어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장신구이다. 대롱옥은 단독 혹은 곱은옥이나 구슬옥 등과 결합하여 주로 목걸이로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귀걸이나 그 외의 장신구로도 이용되었다. 대롱옥은 ‘원석(原石)에서 떼어내기(分割)→모양 가다듬기(調整, 整形)→자르기(裁斷)→구멍뚫기(穿孔)→연마(磨硏)’의 순서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구멍은 양쪽에서 뚫어 중간 쯤에서 관통하도록 하였다.

청동기 시대 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단계에 해당하는 정선 아우라지 유적 집자리에서 대롱옥이 나온 바 있고, 다음의 역삼동·흔암리 유형 단계에도 무덤과 집자리에서 종종 출토된다. 대롱옥은 부여 송국리진주 대평리 유적송국리 문화 단계에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다. 이때에는 길이 5㎝가 넘는 대형품이 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므로, 권위 혹은 사회 복합화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후의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단계에는 벽옥으로 만든 것도 일부 있지만, 부여 합송리당진 소소리 유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유리(琉璃)로 된 것이 많아진다. 유리로 된 대롱옥은 주로 한반도의 서쪽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한편, 여수 평여동창원 덕천리 유적 등에서는 150여 점 이상의 대롱옥이 한 무덤에서 출토되기도 하여, 장송의례에 사용된 정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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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