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800-0240: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800-0240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dkamaster 800-0240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36번째 줄: 36번째 줄:


==이미지==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군산_가도_조개더미_출토_금강식_토기.jpg
File:군산_가도_조개더미_출토_금강식_토기.jpg
File:군산_가도_조개더미_출토_암사동_III식_토기.jpg
File:군산_가도_조개더미_출토_암사동_III식_토기.jpg

2026년 1월 21일 (수) 12:04 기준 최신판


한반도 중서부 지역의 신석기 토기
기본 정보
시대 신석기 시대
지역 한반도 중서부 지역
관련 정보
유적 봉산 지탑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온천 궁산 유적, 인천 시도 조개더미, 청원 쌍청리 유적, 평양 금탄리 유적
키워드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 암사동식 토기, 금강식 토기, 금탄리식 토기, 시도식 토기, 구분계 토기, 동일계 토기, 한반도 중서부 지역의 신석기 문화, 한반도 중서부 지역의 신석기 마을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홍은경



설명

한반도 중서부 지역은 대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을 비롯하여 그 근방의 해안 지대를 포괄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토기를 대표하는 뾰족 바닥[尖底] 빗살무늬 토기 전통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중서부 지역의 토기 문화는 신석기 시대 중기에 중동부 지역과 남부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이후 범위가 점차 확대되면서 남한 전 지역은 공통적인 문화 요소를 공유하게 되었다.

중서부 지역의 토기는 ‘구분계’와 ‘동일계’의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구분계 토기는 아가리, 몸통, 바닥에 각기 다른 무늬를 시문하며, 암사동식 토기라고도 한다. 동일계 토기는 토기 전체에 동일하거나 반복적인 무늬를 장식하며, 금탄리식 토기시도식 토기, 금강식 토기가 있다. 암사동식 토기는 대체로 신석기 시대 전기에서 중기, 금탄리식과 시도식 토기는 중기에서 후기, 금강식 토기는 후기 이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분계와 동일계 모두 시문 범위가 축소되며, 무늬가 간략해지고 정연성도 약화된다. 대부분이 뾰족 바닥 토기이며 편평한 바닥 토기의 비율은 매우 낮다.

암사동식 토기는 온천 궁산 유적, 봉산 지탑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하남 미사리 유적 등에서 출토되는 빗살무늬 토기를 지표로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토기 전체를 아가리, 몸통, 바닥으로 구분하여 각기 다른 무늬를 장식한다. 토기의 바탕흙[胎土]은 지역마다 다른데, 대동강 유역에서는 활석, 한강 유역에서는 운모, 서해안과 도서 지역에서는 석립(石粒)을 주로 점토와 섞는다.

암사동식 토기는 무늬의 범위와 무늬를 새기는 방법에 따라 다시 3형식으로 세분된다. 먼저 암사동 Ⅰ식 토기는 토기 겉면을 3부위로 나누고 각기 다른 무늬를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가리 주변에는 도장을 찍듯이 무늬를 새기는 눌러찍기[押捺]·찌르기[刺突] 기법으로 점열무늬, 짧은 빗금무늬, 손톱무늬를 새긴다. 몸통에는 뾰족한 도구로 선을 그어 무늬를 만드는 새기기[沈線] 기법으로 생선뼈무늬를 시문하였으며, 바닥에는 빗금무늬[斜線文]가 바큇살처럼 새겨진 방사상무늬를 새겼다.

암사동 Ⅱ식 토기는 아가리와 몸통 사이에 찌르기 기법으로 타래무늬, 물결무늬, 반겹고리무늬를 시문하고 새기기 기법으로 생선뼈무늬, 격자무늬 등의 종속 무늬를 추가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토기 바닥에는 무늬를 생략하고 아가리에는 짧은 빗금무늬, 몸통에는 가로 생선뼈무늬를 얕게 장식한 토기 역시 암사동 Ⅱ식 토기에 포함된다.

암사동 Ⅲ식 토기는 무늬를 더 생략하여 짧은 빗금무늬를 아가리에 한정하여 장식한 토기를 의미한다. 주로 서해안의 조개더미 유적에서 동일계 토기와 공존하는 양상을 보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암사동 Ⅰ식 토기에서 종속 무늬가 추가되는 암사동 Ⅱ식 토기로 변화하고, 이후 암사동 Ⅲ식 토기로 변화한다.

금탄리식 토기는 평양 금탄리 유적 출토 토기를 대표로 하며, 문화층에 따라 2형식으로 세분된다. 먼저 금탄리 Ⅰ식 토기는 삼각집선무늬나 가로 생선뼈무늬와 같은 무늬 2∼3종을 아가리에서 바닥까지 교대로 배치하되, 무늬와 무늬 사이에 가로 줄무늬[多齒橫線文]를 여러 줄 넣어 문양대(文樣帶)를 구분하는 것이 특징이다. 직선적인 포탄 형태에서 벗어나 배가 부르고 안쪽으로 오므라지는 형태[內彎]도 등장하는데, 바탕흙에는 활석이 포함되어 있다. 대동강과 황해도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지만, 한강 유역, 서해안 일대, 강원 영동 지역 등에서도 소량 확인된다. 지금은 중기(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토기의 등장 시기와 존속 시기 등에 이견이 있어 앞으로도 연구가 필요하다.

금탄리 Ⅱ식 토기는 금탄리 Ⅰ식 토기와는 달리 단일한 무늬로 토기 전면을 장식하며, 바닥에는 무늬를 새기지 않기도 한다. 대형 토기에는 주로 가로 생선뼈무늬가 장식된다. 배가 부르면서 안쪽으로 오므라드는 형태이며 둥근 바닥이 많아진다. 바탕흙에는 활석이 아니라 모래 빚음을 추가하였다. 금탄리 Ⅱ식 토기가 유행하면서 짧은 빗금무늬나 줄무늬를 연이어 문양대를 구성하고 이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한 띠대문 토기도 유행한다. 또 민무늬 토기의 비율이 증가하며, 민무늬 토기가 중소형 토기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금탄리 Ⅰ식 토기보다 금탄리 Ⅱ식 토기가 더 늦은 시기의 것임은 분명하지만, 이질감이 있어 두 양식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형성 과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시도식 토기는 인천 시도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토기를 표지로 하며, 주로 서해안 일대에서 확인되는 동일계 토기이다. 아가리에서부터 몸통까지 가로 생선뼈무늬, 격자무늬, 빗금띠무늬 계통의 무늬를 장식한다. 바닥이나 몸통 아래쪽에는 무늬가 생략된 사례가 많고, 가로 생선뼈무늬 또한 얕게 그어 장식한 것이 많다. 서해안식 토기라고도 한다.

금강식 토기는 청원(현재의 청주시) 쌍청리 유적 출토 토기를 지표로 한다. 바닥이 둥글고 짧게 직립하거나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지는 모양[外反口緣]으로, 무늬는 아가리에서부터 몸통의 최대 너비까지만 새겨진다. 끝이 넓고 미세한 요철이 있는 무늬 새기개[施文具]를 연이어 눌러 특징적이고 전형적인 마름모무늬를 표현한다. 낙동강 수계, 서해안 일대와 동해안에서도 확인되지만, 처음에는 금강 수계에서 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금강식 토기로 명명하였다. 분포 범위를 고려하여 쌍청리식 토기라고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나 마름모무늬 토기를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여기에 금강식 토기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었지만, 금강 수계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금강식 토기로 부른다. 금강식 토기의 기원이나 계보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데, 마름모무늬는 남부 내륙 지역과의 교류에 영향을 받은 결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는 1950년 온천 궁산 유적에서 발굴 조사가 처음으로 이루어진 후, 이 지역의 신석기 시대 문화를 ‘궁산 문화’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봉산 지탑리 유적, 평양 금탄리 유적, 남경 유적에서의 조사 성과를 반영하여 총 5기의 편년 체제를 완성하였다. 아직 북한 자료와 편년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으며, 연구자에 따라 편년에는 세부적 차이도 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중서부 지역 토기의 변화 양상에 대해서는 남북 연구자가 대체로 일치하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남한에서는 일반적으로 토기 무늬의 종류와 배치가 변화한 양상에 주목하여 유적 간 교차 편년을 실시하고 방사성 탄소 연대를 고려하며 중서부 지역 신석기 시대 편년을 연구하고 있다.

이미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