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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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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1일 (수) 12:02 기준 최신판


신석기 시대 격지 석기
기본 정보
동의어 박편 석기, 기술 격지, 기술 박편, 격지, 박편, 성형 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지역 한반도 전 지역
관련 정보
유적 군산 가도패총, 제주 고산리 유적, 시흥 능곡동 유적, 부산 동삼동 조도 조개더미, 하남 미사리 유적, 창녕 비봉리 유적, 진주 상촌리 유적,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시흥 오이도 조개더미, 진안 진그늘 유적, 연천 학곡리 유적
키워드 신석기 시대 석기, 돌감, 석기, 몸돌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윤정국



설명

격지 석기돌감을 깨뜨려 얻은 얇고 날카로운 조각을 이용해 만든 석기이다. 자연석(원석 또는 몸돌)의 한 지점을 타격하거나 충격을 가하여 떼어낸 조각으로 제작되며,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시대까지 사냥, 채집, 식료 가공 등 다양한 생업 활동에 활용되었다. 셰일, 혼펠스 등 대체로 무른 돌감이 사용되었으며, 형태가 비대칭적이고 날카로운 면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격지 석기의 판별은 자연석에서 떨어져 나온 면인 배면과 타격 이전의 등면을 통해 확인된다. 특히 배면에 남아 있는 맞은 점, 혹, 방사상 무늬, 햇살 무늬 등을 통해 격지 석기의 제작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격지 석기는 자연석 또는 몸돌에 돌망치 및 뼈 등의 제작 도구를 직·간접적으로 부딪쳐 격지를 떼어낸 후, 전면 또는 일부 지점을 잔손질하여 날카로운 날[刃部]을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때 잔손질의 범위와 방식에 따라 긁개, 밀개, 톱니날, 자르개 등으로 구분된다. 한편 자연석에서 떼어진 격지 자체의 날카로운 자연 날을 별다른 추가 가공 없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자연 날의 실제 사용 여부는 맨눈으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배율의 현미경 등을 활용하여 날의 손상과 광택 등을 관찰해야 한다.

격지 석기는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자연석에서 떼어낸 격지에 정교한 잔손질을 가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에는 ‘갈기[磨硏]’라는 제작 기법으로 인해 격지를 사용하는 비율이 감소하였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구석기 시대처럼 정교한 잔손질을 통해 날의 만들기보다는 최소한의 손질을 통해 석기 자체의 날카로움 유지하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이는 신석기 시대의 석기 제작 기법이 구석기 시대에 비해 단순해졌음을 보여 준다.

신석기 시대 격지 석기는 시흥 오이도 유적·능곡동 유적, 연천 학곡리 유적, 서울 미사리 유적, 군산 가도 조개더미, 진주 상촌리 유적, 창녕 비봉리 유적,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제주 고산리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이렇듯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유적 대부분에서 출토되지만 그 형태가 단순하고 석기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여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격지 석기는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시대까지 내려오는 성형된 석기로서 당시 사람들의 기술 수준과 자원 이용 방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향후 신석기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변화와 기술적 발전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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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